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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가은 Aug 18. 2019

당신은 또 어느 별에서 오셨나요

‘우리집’을 지켜줄 놀라운 사람들을 만나다


안녕하세요. 영화를 만드는 윤가은입니다. 

2019년 8월 22일 개봉할 영화 <우리집>의 제작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2화에서는 <우리집>의 대단한 배우들을 만나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 여정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부디 즐거운 감상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새로운 배우를 만나는 일은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 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어려워하는 작업이다. 사실 이번 캐스팅에서 가장 충격으로 다가왔던 건 어린 친구들의 삶의 조건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것이었다. 전작을 찍은 지 단 3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말이다!

                        

 + 한창 배우 미팅을 진행하던 중, 꾼 엔터테인먼트 현관에 붙어있던 공고들. ‘우리도 이런 영화들 사이에서 오디션을 본단 말이야?’하며 다같이 신나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분명 정숙해달라고 했는데 우리 방이 제일 시끄러웠던 것 같다)


어린이들의 취미와 취향은 물론, 현실적인 고민과 목표, 장래희망 등, 모든 것들이 불과 3년 만에 크게 달라져있었다. 좋아하는 연예인도 아주 다양해졌고, 쉬는 시간에 하는 놀이도 처음 듣는 종류의 것들이 많았다. 특히 저학년 친구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학업도, 친구 문제도 아닌 ‘미세 먼지’였다. 방과후에도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아이들이 유일하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은 학교 쉬는 시간 밖에 없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아예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 몇몇 친구들은 아주 진중한 얼굴로 매년 악화되는 환경 문제를 자기 일처럼 걱정하기도 했다. 


꿈이 뭐냐는 질문엔 많은 친구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답했다. 때론 자신들이 좋아하는 채널을 열정적으로 추천해주기도 했는데, 평소 유튜브를 꽤 많이 보는 편이었지만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영상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열광하는 지 절로 알게 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공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캐스팅 기간 내내 밤마다 BTS와 블랙핑크와 워너원과 레드벨벳 등 여러 아이돌의 공연무대를 열심히 감상했고, ’캐리언니’, ’허팝’, ‘도티’ 등 초통령 유튜버들의 채널을 돌려보았다. 때론 ‘신비아파트’ 몇 편에 하얗게 질려 밤을 지새거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슬라임 ASMR 영상에 취해 잠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하고 또 공부해도, 아이들이 열광하는 세계는 끝이 없었다. 


+ 매일 밤, 그 날 만난 배우들에 대해 연출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옆의 황슬기 감독은 <우리들>의 조감독과 <우리집>의 스크립터로 큰 도움을 주셨고, 현재 장편 작품을 준비중인 유능한 감독님. 매일 그녀를 괴롭히며 질문을 해대고 현답을 얻었다)


사실 이번 영화는 특히 나이대가 완전히 다른 친구들을 캐스팅해야 했기 때문에 유독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다. 각각 12살 하나와 10살 유미, 7살 유진의 캐스팅을 위해, 5-6세의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전학년에 걸친 여자 어린이들을 모두 만나야 했다. 또 틈틈이 하나의 오빠인 찬 역을 소화할 남자 청소년들과 (시나리오상 있었지만 삭제된) 하나의 남자친구 태민역의 남자 어린이들까지 모두 만나봐야 했다. 무척 빡빡한 스케줄이었지만 어린 배우들과 만나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일상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 한 편으론 이 시기가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재미있기도 했다. 


+ 최종 그룹오디션때의 (좌) 김시아 배우와 (우) 김나연 배우. 

+ 즉흥극 도중 감정에 몰입한 유미가 울음을 터뜨렸는데, 하나가 그런 유미의 감정을 받아 연기를 이어나갔다. 둘 다 캐릭터를 깨지 않은 채 감정에 집중해 즉흥극을 완성했는데, 생전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깊이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캐스팅은 <우리들>때의 과정을 조금 더 심화시켜 진행했는데, 1차로는 20-30분 정도 편안하게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고, 2차부터는 5-6명의 아이들을 한데 묶어 그룹오디션 형태로 연극놀이수업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을 따로 만나 1시간 가까이 심층 미팅(겸 산책?)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하나 역에 김나연 배우, 유미 역에 김시아 배우, 유진 역에 주예림 배우, 그리고 찬 역에 안지호 배우가 <우리집>과 함께 하게 되었다. 




2. 이토록 다양한, 이토록 깊이있는 아이들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함께 하는 프러덕션은 나도 처음이라 초반엔 내가 제일 헤맸다. 물론 어린 배우들끼리 서로 어울리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캐스팅 당시 김나연 배우는 6학년, 김시아 배우는 4학년, 주예림 배우는 1학년으로 모두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중학교 2학년인 안지호 배우는 사촌 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대화는 곧 잘 나누었다. 

                     

+ 2018년 6월 7일의 쉬는 시간. 더 친해질 구석이 없을까 해서 내가 막내 머리를 묶어 주자고 제안했는데, 언니들이 세상 진지한 얼굴로 머리묶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리허설의 초반엔 금새 한 덩어리로 착 붙어 어울리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아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가만 보니, 한 명 한 명의 배우들 간의 세대 차이가 분명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도, 즐겨하는 놀이도, 관계를 맺을 때의 태도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도, 모든 것이 조금씩 때론 아주 많이 달랐다. 마치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다른 종족의 대표들이 서로 다른 몸짓과 언어로 말하는 느낌이었달까. 촬영까지 두 달이나 남았지만 점점 애가 탔다. 왜 재빨리 안 친해지는 걸까? 서로 잘 맞지 않는 걸까? 나는 전전긍긍하며 어색한 장난을 쳤다가 더 어색해지기도 하고, 모두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대화 주제를 고르려다 누구도 관심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기도 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이들이 과연 진짜 한 팀이 될 수 있을까 종일 고민하며, 사실 별 다른 일도 없었는데, 나 혼자 온갖 불안과 걱정을 끌어안고 허둥지둥댔다.


그런데 배우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어린이’라 하더라도, 서로가 나이도, 생각도, 언어도, 모든 것이 다르다는 걸, 그래서 서로 배려하고 배워가면서 천천히 물들어야 한다는 걸, 모두가 처음부터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아무리 좌충우돌 해도, 배우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은 리허설 내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천천히 친해졌고, 이따금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은근슬쩍 드러냈다. 그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호들갑만 떨던 나를 자신들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 2018년 7월 6일의 쉬는 시간. 언니들이 묶어준다고 했던가 막내가 묶어 달라고 했던가. 머리를 꼼지락 거리는 내내 수다가 멈추지 않았다. 묘하게 닮은 삼총사. 


지금 생각하면 왜 모두 아는 걸 나만 몰랐는지 창피해도 너무 창피하다. 결국 모두가 다른 환경에서 자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람들인데 관계맺음에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성인 개개인의 다양성은 지나칠  정도로 존중하려 애쓰면서, 정작 배우들은 ‘어린이’란 한 덩어리의 집단으로 묶어놓고 내 맘대로 이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어린 배우들과 작업하는 게 처음도 아닌데, 매번 이렇게 나 자신의 엄청난 구멍을 발견하고야 만다. 하여튼 어른들은 정신 좀 차려야 한다. 쪽팔려 죽겠다. 그리고 우리 배우들은 이런 나의 부끄러운 실수를 부디 기억에서 지워주셨기를. (ㅠㅠ) 




3. 하나와 유미와 유진이가 함께 만드는 집


리허설은 총 두 달여 동안 일주일에 2-3회 정도 진행했다. 첫 주엔 배우이자 어린이연극놀이전문가인 박영 선생님을 모셔 특별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우리들> 때도 큰 도움을 받아 이번엔 좀 더 심화하기로 했다. 1회차엔 박영 선생님과 어린이 배우들, 그리고 나와 연출부까지 모두 한데 어울려 자신을 소개하고 게임과 연극놀이로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고, 2회차엔 어린이로서 갖는 고민들과 배우로서의 정체성 문제 등까지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진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 박영 선생님의 워크샵. 배우로서의 바람과 작업에 대한 기대를 적는 시간. 놀랍게도 배우들은 <우리집> 작업이 즐거운 시간과 행복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마음으로 적어냈다. 완성도 있는 멋진 작품이 나오면 좋겠다고, 극장에 많이 걸리고 관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정도만 생각한 내 마음이 한 없이 작아지는 순간.  


사실 감독인 내게는 이번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전작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작업이었다. <우리들>이 실제 배우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며 열린 구조로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면, <우리집>은 극중 인물의 성향과 취향이 전면에 드러나는 캐릭터 중심의 완결된 이야기였다. 즉, 전작처럼 완전히 처음하는 배우들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완전히 열어놓은 채 만드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정해진 캐릭터와 이야기의 골격을 배우들과 함께 소화하고 수정하면서 믿어질 만한 것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전작보다 배우들의 대사량이나 감정적 부담은 훨씬 줄었지만, 보다 자연스럽게 수정되어야 할 디테일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이 <우리집>의 가장 큰 숙제였다. 


결국 감독이 만든 이야기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최선의 빠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 이 작품 이후로도 하고 싶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화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게는 기대보단 걱정이 앞서는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낯설고 두려워도 직접 가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집>의 하나처럼, 일단 하나 하나 해보자고, 그렇게 헤매고 부딪히며 직접 길을 찾아보자고 매일 매일 다짐하는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 2018년 7월 7일, 잠시 외출한 하나네 가족. (좌) 엄마 수진역의 최정인 배우님과 아빠 민호역의 이주원 배우님.  (우) 김나연, 안지호 배우.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리허설 도중에 나와서 그런지 너무나 극중 인물들처럼 앉아 있어 나도 모르게 찰칵. (실제로 모두 친해요. 싸우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 왜 슬픈 미소를.....)


우선 극중 캐릭터들의 성향이 본래 내가 그렸던 전형에서 조금씩 바뀌었다. 사실 그 누구보다 하나가 많이 바뀌었다. 시나리오에서 하나는 한층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부모의 싸움에 적극 개입하는 아이였는데, 나연배우가 하나가 되면서 한층 차분하고 신중한 태도로 부모를 지켜보며 고민하는 하나로 변해갔다. 김나연 배우 자체가 그런 에너지를 갖고 있기도 했지만, 어린이 배우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실제 그런 환경을 마주하고 버티는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에 대해 내가 더 섬세하게 다가가지 못한 측면도 많았다. 특히 부모 역을 맡으신 배우님들과 즉흥극을 할 때 나연배우가 상황에 몰입해 절로 드러내는 미묘한 감정선들이 무척 놀라웠다. 누구보다 내가 그런 나연배우의 연기에 설득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구체화하는 하나를 믿고 지지하며 시나리오를 거듭 수정해갔다.



+ 배우들은 캐릭터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매주 숙제를 해왔다. 나연은 매주 새로운 요리를 해본 뒤 직접 레시피를 작성해왔고, 시아와 예림은 직접 상자를 꾸미고 만들어 왔다.아주 작은 요소들까지 마음을 쓰며 정성을 쏟은 배우들. 갈수록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게 되어 결국 강제로 숙제를 중단하게 되었고, 예림이가 제일 슬퍼했다.


세 친구가 함께 하는 씬들도 크고 작은 디테일들이 계속 수정되었다. 우선 하나가 직접 만들어온 요리책과 유미와 유진이 꾸미고 만든 다양한 상자들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매주 가졌는데, 이런 작업을 할 때 생기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 다양하고도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누구를 위해 요리를 했는지, 그 때의 기분은 어땠는지, 무엇을 담으려고 상자를 만들었는지, 상자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등등, 어린이들의 취미 활동이 갖는 의미와 목표를 알아보고 그 때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하나의 요리와 유미의 만들기가 시나리오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었고, 그런 각각의 취미와 취향이 두 캐릭터, 그리고 전체 이야기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찾으려 노력했다.     



+ 리허설이 한달 반 이상 진행된 무렵의 우리들. 관계도 편해지고 공간도 익숙해졌다. 역시 모든 일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위) 나연인 과연 편해진 걸까, 멘붕인 걸까? 발바닥은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래) 예림인 과연 편해진..... 예림아.... 예림아, 자니....? 


한편, 하나, 유미, 유진이 함께 하며 생겨난 디테일들이 시나리오상의 작위적인 대사나 행동들을 한결 부드럽게 바꿔주기도 했다. 배우들이 리허설을 점차 편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시나리오상에는 유미가 하나언니에게 존댓말을 썼지만 시아배우의 강력한 의견을 반영해 반말로 바뀌었고 (얼마나 다행인가! 애초에 존댓말이 말이 되나? 참 나), 조금이라도 어색하거나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이나 대사는 나연배우가 꾸준히 지적해주었다(실제 내가 하는 건 이상하지만 어린이들이 영화에서 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의 괴상한 믿음을 언제쯤 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이 있어 해달라고 땡깡을 부리며 부탁하면, 최대한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으로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소화하려고 애쓰는 예림배우가 언니들과 함께 손잡고 있었다. 


그렇게 새로 만난 <우리집>의 대단한 배우들의 열정적인 피드백을 열심히 소화하며, 나는 리허설 내내 다시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쳐 나갔다. 하나와 유미와 유진이 함께 집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나 역시 배우들의 힘을 빌려 ‘우리집’을 차근 차근 완성해갔다. 그렇게 촬영 직전, 시나리오 가까스로 완성되었다.  .....아니 정말 완성한 줄 알았다. 이제는 정말로 더이상의 수정은 없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촬영장에 첫 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 영화 <우리집> 제작기 3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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