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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주 Aug 09. 2024

자신만의 무대

태도의 디테일

송종희 감독이 분장을 처음 시작했던 건 스물다섯 살 때였어요. 자신이 '꼭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나서기로 했죠. 그러던 중 만난 게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작업실이었어요. '작업실'이라고 해봤자 다섯 평 남짓, 사방이 화장품과 염색약, 헤어스프레이 등으로 빼곡하게 즐비했던 그 작은 방이 그에겐 '하나의 커다란 세계'처럼 보였다고 해요. 구석에 놓인 작은 소파에 앉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손이 친구의 얼굴 위로 쓱쓱 지나가는 걸 보면서 생각했죠. '자기 일을 가진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저 떳떳한 기세를 나도 갖고 싶다'고. '자신의 일'이라는 건 곧 '자신만의 세계'라는 것을, 스물다섯에 깨달은 거죠.

송종희 분장감독 '커리업' 인터뷰


22살 때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대학생 시절,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육체적 노동뿐이었다. 1년간 호주 전국을 돌아다니며 외국인 노동자(줄여서 외노자)처럼 살았다. 포도 따고, 장미 가시 다듬고, 식당 서빙 하고, 호텔 하우스키퍼 하고. 다음 날이면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고용에 대한 불안정성과 내가 아니어도 누구로든 바뀔 수 있는 대체 가능성 때문에 일을 하고 있지만 매일 불안했다. 1년 그렇게 외노자처럼 살아보니 결론이 하나 생겼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전문가가 돼야겠다.”


크든 작든, 화려하든 화려하지 않든, 누구나 자신이 제일 반짝이는 무대,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20대에는 내무대가 어디인지 몰라 그 무대를 찾느냐 애썼고, 30대인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프로다운 무대를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지금 무대를 더 큰 무대로 확장해 나갈 수 있는지 고민한다. 나의 무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지만 고민할 수 있는 무대가 있음에 감사하다. 내 일에 대해서만큼은 떳떳한 기세를 가지는 직업인이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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