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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음식인문학]남은 송편이 떡볶이도 와플도 된다

한국일보 오피니언 섹션에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 인문학>이란 타이틀로
매달 칼럼을 연재합니다.

음식 속에 담긴 인문학적 이야기를
맛있는 요리와 함께 가볍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21번째 칼럼의 주제는 '송편'입니다.
즐겁게 읽어 주세요 :) 


송편 강정 ⓒ이주현

요즘은 떡을 직접 만드는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송편만은 다르다. 아직도 추석 즈음이면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는 풍경이 종종 목격된다. 별 다른 도구 없이 두 손으로 빚다보니 여러 얘기가 돌았다. 처녀가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좋은 신랑을 만나고, 시집을 갔다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어린아이조차도 고사리 손으로 토닥토닥 송편 빚기에 몰두했다.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연륜이 녹아든 손 위에서 쌍둥이 같은 송편들이 척척 나왔다. 그야말로 송편은 예쁜 모양이 관건이었다.


양손으로 토닥토닥 빚은 작은 달

송편은 그 모양이 꼭 반달을 닮았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달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달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시간을 예측했고 농사의 중대한 방향을 결정지었기 때문. 이렇듯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준 달과 하늘에게 감사의 의미로 달 모양을 닮은 송편을 빚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반달일까. 이야기는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 일화에서 시작된다. 656년 의자왕은 간밤에 흉흉한 꿈을 꿨다. 불길한 도깨비불이 나와 '백제가 망한다'라고 외쳤다. 잠에서 깬 뒤 도깨비불이 사라진 자리의 땅을 파봤다. 그랬더니 '백제는 둥근 달이고 신라는 반달이다'라고 쓰인 거북이 등껍질이 나왔다. 이에 무당은 백제는 달이 찼으니 이제 기울 것이고 반대로 신라는 앞으로 더 융성할 것이라 해석했다. 의자왕은 분노하여 그 자리에서 무당을 죽여버렸다. 그러나 결국 무당의 말이 맞았다. 시간이 흐른 뒤 백제는 멸망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은 반달이 보름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징한다고 여겼다. 그 때부터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빚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송편 속에 그득한 콩, 밤, 깨에도 숨겨진 의미가 있다. 이들은 땅에 촘촘하게 뿌린 씨를 나타낸다. 빈틈없이 찬 송편의 속처럼 이듬해에도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던 것. 작은 송편 한 알에는 농민들의 땀과 정성, 감사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마도 송편은 손 위에서 빚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빛나는 달이 아닐까.


송편 강정 ⓒ이주현

사계절 내내 즐겨 먹었던 송편

과거 우리 민족은 여러 종류의 송편을 크고 작은 기념일마다 챙겨 먹었다. '노비송편'이란 조선시대 농사철 시작을 기념하는 중화절(음력 2월 1일)에 먹었던 송편이다. 한 해의 농사를 잘 부탁하는 당부의 의미로 노비들에게 나이수대로 나눠주곤 했다.


'오색송편'은 오행, 오덕, 오미의 뜻을 담아 만물의 조화를 추구했다. 이름대로 5가지 색을 물들여 어여쁘게 빚었다. 아이가 서당에서 어려운 책을 한 권씩 마칠 때마다 축하와 격려의 의미로도 송편을 마련했다. 책례시에 감사의 의미로 주변에 돌리던 '통과의례송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추석 때 먹는 송편이 바로 '오려송편'이다. '오려'는 '올벼'의 옛말로 제철보다 일찍 여문 벼를 뜻한다. 송편은 달 외에도 볍씨의 모양과 똑 닮았다. 추석에 풍년을 기원하며 볍씨를 닮은 송편을 먹었던 것.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사계절 내내 송편을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주로 추석에 먹고 남은 송편이 냉동실에 들어가 사계절 내내 바깥출입을 기다린다. 아무리 촉촉하게 데우더라도 처음의 맛과 식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 이럴 땐 한 번 더 조리과정을 거쳐 이색적인 송편 요리로 즐겨보는 건 어떨까.


가장 인기 있는 송편 요리는 역시 떡볶이다. 거부하기 어려운 매콤달콤한 양념 덕분일까, 아니면 기름진 명절 음식을 먹은 뒤 칼칼한 음식이 끌리는 현상일까. 취향에 따라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은 양념을 준비한다. 여기에 가래떡 대신에 송편을 넣으면 속이 든든한 떡볶이로 즐길 수 있다.


최신 문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바삭한 식감을 극대화해주는 와플기계이다. 와플 기계가 없다고 실망하지 말자. 후라이팬에서 납작하게 눌러구워도 꽤나 바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 여기에 꿀, 조청, 흑설탕, 시나몬가루 등 취향에 따라 토핑을 올려주면 달콤한 디저트로 변신한다.


'단짠'의 맛을 살린 송편강정도 있다. 간장, 다진 마늘, 통깨, 올리고당, 참기름, 물을 섞은 양념장을 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힌다. 농도가 걸쭉해지면 송편을 넣고 양념을 코팅하듯 입힌다. 다진 견과류를 듬뿍 뿌려서 마무리하면 색다른 맛의 송편강정이 완성된다.


추석이 지나면 차갑게 식을 송편 걱정은 이제 잊어버리자. 딱딱해진 송편에 새 숨결을 불어넣을 방법은 다양하다. 과거에는 책 한 권만 떼어도 축하와 감사의 의미로 송편을 먹었다는데, 우리도 크고 작은 축하할 일을 만들어 사계절 내내 송편요리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한국일보 사이트에서 칼럼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9.14 발행)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1310120003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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