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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함께 찾아오는 자유, 진달래 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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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푸드칼럼니스트이자 요리연구가로
활동하는 이주현입니다!

이번 봄부터
<로타리 코리아> 매거진에
"한식 인문학"을 주제로
3회동안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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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함께 찾아오는 자유

‘진달래 화전(花煎)'


화전(花煎)은 ‘지진 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기름에 지져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조리법 때문에 “꽃 지지미” 또는 “꽃 부꾸미”라는 어여쁜 애칭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봄이 오면 삼짇날에 화전놀이를 했다. 여성들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화전놀이는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특별한 공식 행사였다. 아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화사하게 옷을 차려입고 진달래꽃이 만발한 뒷산에 하나 둘씩 모였다. 붉은 진달래꽃 무더기는 마치 산기슭에서 불타오르듯 개화했다. 그 안에서 아녀자들은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고 흥이 올라 화전가를 불렀다. 한 쪽에서 노래를 부르면 다른 한 쪽에서는 답가를 들려줬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며 만물이 태동하는 계절에 귀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자니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화전놀이를 화류(花柳)놀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녀자들의 화전놀이는 마냥 행복하면서도 다소 경쟁적이기도 했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은 바로 음식이었다. 화전놀이를 갈 때면 집집마다 음식을 싸가곤 했다. 그런데 이 때 어느 집에서 어떤 음식을 해왔는지를 두고 은근한 경쟁이 펼쳐졌다. 상류층 아녀자들은 화전놀이를 갈 때면 며칠 전부터 집에 상주하던 노비와 함께 음식 준비에 열을 올렸다. 당일 날이 되면 음식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자랑도 하고 동시에 시샘도 받았다. 봄의 정취를 즐기는 가운데 은근한 신경전도 펼쳐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화전놀이를 갈 때면 며느리들이 절대 시어머니와 동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 년 중 손에 꼽는 자유의 날인데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건 달가워하지 않았나보다. 아마도 화전놀이를 가서 며느리들끼리 시집살이 고충도 토로하고 하소연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그렇다면 삼엄한 궁궐에서도 과연 화전놀이를 즐길 수 있었을까.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방법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창덕궁에는 금단의 정원이었던 ‘옥류천가’가 있었다. 지금은 개방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던 장소였다. 봄이 오면 중전은 상궁들과 함께 비밀스러운 옥류천가로 향했다. 그 곳에서 진달래 화전을 부치면서 계절이 주는 풍류를 은밀하게 즐겼다. 예쁘게 만들어진 화전은 임금님께도 선물로 드렸다고 하니 아마도 화전놀이가 암묵적인 비공식 행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조선왕조 궁중연회식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궁중 화전의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화전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가 나열되어 있는데 “반죽에 사용되는 찹쌀의 양은 5홉, 화전을 지지는 참기름은 무려 6홉이 필요하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참기름의 양이다. 반죽에 들어가는 찹쌀가루는 5홉이 필요한데, 튀기는 용도인 참기름은 그것보다 1홉이 더 많은 6홉이 필요하다고 나왔다. 이를 보면 참기름은 지짐용 기름이 아니라 튀김용 기름의 용도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가 먹는 방식처럼 찹쌀반죽을 기름에 지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찹쌀 반죽이 참기름을 흠뻑 머금을 수 있도록 튀겨낸 것이다.



새하얀 찹쌀 반죽을 바삭바삭하게 튀겨낸 화전에 달콤한 꿀까지 듬뿍 뿌려 먹었으니 그 맛이 얼마나 좋았을까. 궁중에서도 봄이 오면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나 꼭 화전을 챙겨 먹어야 할 정도로 별미였던 것이다.


튀기는 기름뿐만 아니라 화전을 빚는 방식에서도 궁중 조리법과 민가 조리법에는 차이가 있었다. 일반 가정에서 만드는 화전은 우리가 어릴 때 먹었던 화전과 거의 흡사하다. 찹쌀을 소금에 넣고 곱게 빻아 반죽을 만든다. 이 반죽을 밤알만큼씩 떼어 둥글납작하게 빚는다. 정성스럽게 성형한 반죽을 철판 위에서 지지면서 진달래 꽃잎을 얹어 익힌다. 마지막으로 꿀을 담그거나 설탕을 뿌려 달콤하게 마무리한다. 지금은 화전을 직접 만드는 가정이 많지 않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할머니 집에 가면 마당에서 진달래 꽃잎을 똑똑 따와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화전을 부쳐주셨다. 작고 동그랗게 반죽을 성형하던 기억이 손끝에 생생한 감각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궁궐에서 먹던 화전을 어땠을까. 왕실의 수라를 담당하던 소주방에서 만들던 방식은 다음과 같다. 고운 찹쌀가루를 되직하게 반죽하여 약 5mm 두께로 얇게 밀어낸다. 그 위에 꽃잎을 촘촘히 얹어 꾹 누른다. 지름 5cm인 화전통으로 찍어내어 동그란 모양의 반죽을 만든다. 이것을 참기름에 푹 잠길 정도로 지져낸다. 왕실에서 만들던 화전 반죽은 하나씩 모양을 잡는 게 아니라 화전통으로 찍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민가에서 만들던 화전이 크기가 제각각이여서 정다운 느낌이라면, 왕실의 화전은 좀 더 균일한 모양으로 정갈하게 만들어내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진달래 화전 외에도 계절마다 다양한 화전을 즐겼다. 여름에는 장미꽃을 얹은 장미화전, 가을에는 황국화와 감국잎을 얹은 국화전 등이 만들어 먹었다. 그럼에도 삼짇날 화전놀이에서 먹는 진달래 화전이 유독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화전놀이는 여성들의 외출이 쉽지 않던 시절 유일하게 허락된 공식 집단 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성들이 화사하게 꾸미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챙겨서 봄의 정취를 만끽하던 날이었다. 그렇기에 진달래 화전은 ‘여성의 풍류’를 상징하는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날씨가 따듯해질수록 과거 아낙네들의 마음이 더 생생하게 와 닿는다. 아름다운 절경 속에서 달콤하고 바삭한 진달래 화전을 누리던 이 계절, 우리도 마음속의 빗장을 풀고 자유를 만끽해야 할 시간이다.


* 소개글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와 르코르동블루 출신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음식과 인문학을 융합한 특별한 시각을 펼치고 있다. 한국일보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인문학’을 비롯해 방송 촬영, 대학 강의, 심사 등을 통해 그녀의 전문성과 열정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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