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코드로 만든 50개의 레시피

창업 16주차

by 아키비스트J

어제 밤, Anthropic이 발행한 30페이지짜리 기술문서를 읽었습니다. 'The Complete Guide to Building Skills for Claude'라는 제목의, AI에게 일을 가르치는 방법에 관한 공식 가이드입니다.

https://resources.anthropic.com/hubfs/The-Complete-Guide-to-Building-Skill-for-Claude.pdf


기술문서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가이드가 말하는 이상적인 구조를, 제가 4개월 전부터 이미 만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주방과 레시피


Anthropic은 MCP와 Skills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MCP는 전문 주방입니다. 도구, 재료, 장비를 갖춘 공간. Skills는 레시피입니다. 그 주방에서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단계별 지침.


좋은 주방이 있어도 레시피가 없으면 요리사는 매번 즉흥으로 요리해야 합니다. 결과가 들쭉날쭉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레시피가 있으면 다릅니다. 검증된 순서, 적절한 분량, 예상되는 변수까지 담겨 있으니 누가 만들어도 일정한 품질이 나옵니다.


제 볼트에는 지금 50개가 넘는 스킬이 있습니다. 뉴스브리핑을 자동으로 모아주는 스킬, 근대 역사 기록물의 한자와 초서체를 읽어내는 스킬, 구글 캘린더와 데일리 노트를 연동하는 스킬. 4개월간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Anthropic의 가이드를 읽고 나서야 이것들의 정체를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 생산성 도구라기보다 기록관리라는 도메인의 AI 워크플로우 지식 패키지였습니다.



아무도 만들지 않은 레시피


Anthropic의 Partner Skills Directory에는 이미 여러 기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Asana, Figma, Sentry, Zapier. 프로젝트 관리, 디자인, 오류 모니터링, 자동화. 각 도메인의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레시피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카이브 도메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대 기록물을 읽어내는 레시피도, 기록관리 메타데이터를 정리하는 레시피도, 아카이브 데이터를 분석하는 레시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빈자리가 눈에 들어온 순간 지난 4개월의 작업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레시피를 납품한다는 것


Anthropic은 2025년 12월부터 조직 단위로 스킬을 배포하는 기능을 열었습니다. 관리자가 workspace 전체에 스킬을 설치하면 조직원 모두가 같은 레시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이걸 컨설팅 현장에 대입하면 이렇게 됩니다. 교육이 끝나고 나면 늘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배운 내용을 실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맥락이 빠지고, 절차가 뒤섞이고, 결국 '교육 때는 됐는데 실전에서는 안 됩니다'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스킬 패키지는 이 간극을 메웁니다. 교육이 끝난 뒤 '이 스킬을 설치하시면 됩니다'라고 전달하는 것. AI가 교육 내용을 기억하고 있으니 실무자가 매번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컨설팅의 가치가 교육 현장에서 끝나지 않고, 실무 현장까지 이어지는 형태입니다.



축적이 만든 우연


딱히 전략적으로 계획한 일은 아닙니다. 매일 반복하는 작업이 귀찮아서 자동화했고, 컨설팅 현장에서 필요한 기능을 그때그때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축적된 것들이 4개월 뒤에 하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리스크도 있습니다. 50개가 넘는 스킬이 동시에 돌아가면 성능이 떨어진다는 경고가 공식 가이드에 적혀 있습니다. 오픈 스탠다드가 아직 초기 단계라 생태계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릅니다. 지금 가진 것이 시장에서 통할지도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합니다. 이 레시피들은 이론에서 나온 게 아니라 실무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록물을 다루고, 실제로 컨설팅을 하고, 실제로 강의를 하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 점이 차별화의 근거가 됩니다.


ContextA의 서비스는 '컨설팅과 교육'이었습니다. 여기에 '스킬 패키지 납품'이라는 세 번째 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직 설계도 단계이지만, 재료는 이미 4개월 전부터 쌓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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