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현행화에 대한 짧은 생각
우리는 모두 기록을 하며 살아갑니다.
아카이브를 둘러싼 모든 문제의 시작점임과 동시에,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문자, 이미지, 부호, 데이터로 이루어진 정보를 발자국처럼 남겨온 개인과 집단의 본능적 행위가 바로 기록하기입니다.
기록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기록학 교과서 <기록관리의 세계>(한울, 2023)에 따르면 학문적 관점에서 기록은 활동의 증거입니다. 조직활동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뒷받침하는 권위 있는 정보원이며,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보존함으로써 인류의 지식을 풍요롭게 하고, 모든 영역의 인간 활동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담겨 있기 때문에 기록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기록은 집단기억, 설명책임성, 사회적 정의와 같은 힘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힘을 갖고 있는 기록은 한편 매우 쉽게 매일 소박하게 쓰이는 그런 단어이기도 합니다.
가장 대중적이라고 믿을만한 사전인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기록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1.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2. 운동 경기 따위에서 세운 성적이나 결과를 수치로 나타냄. 특히, 그 성적이나 결과의 가장 높은 수준을 이른다.
네이버 국어사전, '기록' 검색 결과
기록관리 연구나 업무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위 두 가지가 보편타당하게 이해 가능한 설명입니다. 1번의 의미처럼 기록은 우리 생활에 밀접한 행위 중 하나입니다. 네이버 사전 시소러스가 말해주는 기록의 유의어는 설명책임성, 조직의 투명성, 책임성과 같은 개념어보다는 마크, 기입, 노트, 글, 메모, 문서, 서류와 같이 기록물의 하위 개념 또는 기록하는 행위에 관한 단어입니다. 2번의 의미로 기록은 누군가의 노력의 결과로서 수치화되어 정량적 평가를 통해 네임 밸류를 높이기에 적절하겠습니다.
물론 기록의 보편적 관념을 논하는 것과 단어 자체의 뜻을 파악하는 의미 찾기는 목적이 다릅니다. 다만 우리 모두가 잠을 자고 밥을 먹듯 자연스레 기록을 하면서, 과연 조직적, 사회적 관점에서의 중요성만이 기록의 존재가치를 평가하는 데 적합한 것일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기록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잘 관리된 기록을 통해 행위를 증거하고 사회문화적 가치를 후대에 남기는 것은 역사적으로 기록이 갖는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입니다. 작금의 몇몇 이슈에서도 알 수 있듯 기록관리 영역에는 아직도 숙제가 많지만, 전반적으로는 지난 25년 간 공공기록을 개방함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정부와 감시하고 독려하는 시민사회로 향해 가고 있다고 우리는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록학에서의 ‘기록의 개념’과, 보편적 시각에서의 ‘기록의 의미’는 왜 차이가 날까요? ‘기록의 사원’ 속 아키비스트야 기록의 선별, 평가, 폐기, 접근통제에 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서 기록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그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데 전문성을 발휘할 것입니다. 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관리자 관점이 아니라 생산자 관점에서 기록에 접근합니다. 어떤 내용을 어떤 구조에 담을지 고민하며, 어떤 목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기록할지 결정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든 새로운 구성원 영입 공고에 낼 이력서를 쓰든 말입니다.
*랜달 C. 지머슨, <기록의 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6)에서 인용. 지머슨은 아카이브즈를 기록의 사원이라 표현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기록학은 법률 제정과 제도를 통해 위로부터 시작된 학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록학 전문가의 실천적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지만 기실 기록학 이론이 수입, 정착, 현지화, 적응되어 가는 와중에 오로지 ‘조직적, 사회적, 거시적 관점'에서 기록관리’의 중요성에만 집착해 온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자문(自問) 해 봅니다.
이 글은 작가가 게재한 <기록과 사회> 2024년 5월 22일 자 뉴스레터를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