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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Dec 17. 2022

방글라데시에서의 개고기 논쟁

언젠가 한국 오면 속이고 개고기를 먹여 볼까?

나와 방글라데시 거래처의 인연은 5개월로 매우 짧다

하지만 짧은 인연 치고 거래는 속도감 있게 진행이 되었다. 사실 나는 이 거래처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따로 있다. 사장 E보다 직원 Robin이 참 마음에 든다.


Robin은 방글라데시 사람 답지 않게 예의가 있고, 길거리에 침을 뱉지 않으며 영어 구사 능력이 좋다.

반면 사장 E는 전형적인 무슬림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매우 희한한 조합으로 출장을 다니고 있다. 무교인 나와 정통 무슬림 그리고 방글라데시 사람 답지 않게 훈남이고 똑똑한 Robin 이렇게 셋이 뭉쳤다.


나는 Robin과 함께라면 어디든 간다.

그래서 다카에서 6시간 떨어진 지방까지 가는 험난한 길도 버틸 수 있었다.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깔깔대고 웃는 Robin은 한국에 관심이 많다.


Robin : 한국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어?

Sorita : 다 먹어. 너넨 돼지고기 안 먹잖아? 우린 너네가 먹는 거에 돼지고기까지 먹는다고 보면 돼


그때 사장 E가 끼어들었다.


E : 한국 사람들 개고기 먹는다는 거 알아. 개고기도 포함시켜야 하지? 하하하

Sorita : 아 그래. 개고기도 포함시키자

E :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한국 사람들이 방글라데시에 왔었다? 그때 그 사람들이 길거리 개들을 전부 잡아먹은 거야! 그래서 한동안 길에 개가 없었어!

Sorita :?????


순간 비아냥거리는 거 같아서 성질이 확 났다.

출장 오기 전부터 사장 E에 대해서 몇 가지 참고 있던 게 있었던 나는 지금 아주 작은 불씨 하나에도 화라락 불타 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길거리 개를 한국 사람들이 먹어치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방글라데시 개들은 대부분 피부병에 걸렸고 말라비틀어져서 굳이 따지자면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E한테 이 말까지 하려다가 꾹 참았다.


Sorita : 한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긴 하지만 전부 먹는 건 아냐. Robin이나 나같이 젊은 층은 거의 먹지 않고 중년층 이상이 개고기를 보신용으로 먹어. 개고기 식당이 흔하지 않아서 먹고 싶으면 찾아다녀야 해. E야! 너도 먹고 싶다면 한국에 와! 내가 꼭 데리고 갈게


그 순간 E는 발끈하며 대꾸했다.


E : 나 그렇게 나이 들지 않았어!

Sorita : 아.... 그려 알겠어

E : 나 원래 이렇게 흰머리 없었는데 지난 3년 사이에 흰머리가 갑자기 생긴 거야

Sorita : 알았어. 근데 E 너 몇 살이야?


E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생각 이상으로 정말 젊었다. 나는 외국 사람들 상대로 일을 하지만 아직도 외국인들 나이를 맞추는 게 너무 어렵다. E는 56세로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젊었다. 나는 E가 최소 65세 이상은 되는 줄 알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길거리에 수시로 침을 뱉고, 바나나 먹고 나서 창문 밖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며 무엇보다 걸어 다니면서 큰 소리로 방귀를 까?


실제 E 방귀는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못 말린다.

정말 같이 다니기 창피해서 떨어져 걷거나 E랑 일행이 아닌 척 테이블 너머로 앉는다. 그럼 또 E는 큰 소리로 나를 손짓하며 부른다. 솔직히 너무 창피하다. 난 그냥 Robin만 좋다.


아무튼 방글라데시에서 이런저런 고충과 스트레스가 많다.


오늘은 방글라데시에서의 이틀째 날이다. (고작 이틀 지났지만 체감상 7일은 체류한 듯하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 방글라데시의 한 시골에도 호텔은 있다.

나는 **에서 (지명은 밝히지 않겠다) 가장 좋은 호텔에 묵었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정말 오래된 시골집 냄새가 내 코를 훅 쑤시고 들어왔다. 파리와 모기들은 덤이었다.


방이 정말 크다. 하지만 침구와 책상 그리고 에어컨은 너무 오래됐다. 침대는 그냥 바닥에 얇은 이불 하나 깔고 자는 듯했다


뜨거운 물 쓰려면 20분 전에 불을 켜라고 쓰여 있더라. 화장실에 모기도 많았다. 3마리 있었는데 전부 못 잡았다


어렸을 때 관사에서 살았는데 엄마가 난방비를 아끼려고 샤워하기 10분 전에 보일러를 켜 주셨다.

보일러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나는 찬물로 씻어야 했다. 이 스위치를 보니 갑자기 옛날 생각나면서 엄마가 보고 싶었다.


이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보내자마자 엄마는 지금 당장 스위치를 눌러서 물을 데우라고 하셨다.

어차피 내 돈 아니니까 씻기 1시간 전에 미리 불을 켜놨다. 출장 가서도 엄마 말은 들어야 한다.


나는 금연실만 묵는데 이 방은 흡연도 가능한 곳이었다. 빈티지 성냥이다. 누가 쓰던 성냥도 그대로 넣어놨다


너무 피곤해서 눕고 싶었지만 침대가 너무 꿉꿉했다.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억울하게 방글라데시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침대 이불도 이상하다. 돈을 내고 이런 곳에서 묵어야 한다니 너무 황당했다. 저녁 미팅이 잡혀서 레스토랑으로 내려왔다


방글라데시 음식은 나름대로 먹을만하다.

의외로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고 외국 음식도 잘 먹는 편이다.


밥도 무지하게 많이 준다. 계란 볶음밥도 먹을만하다


저녁 미팅을 마치고 돌아와서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을 사용하기 20분 전에 불을 넣으라고 했는데 막상 샤워기를 트니까 너무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이 찬물로 바뀌더라. 그럼 만약 2명이 묵으면 뒤에 사람은 찬물로 씻어야 하는 건가?


침대에 눕는 것도 고역이었다.

호텔 창문을 열면 모기떼들이 들어와서 문을 다 닫고 있으니 방이 너무 꿉꿉했다. 침대에 누우니 축축함이 피부에 닿았다. 할 수만 있다면 공중 부양해서 자고 싶더라. 진짜 나 너무 억울하게 감옥살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서러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등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호텔에서 신문도 넣어 주더라. 진짜 감옥 같았다. 뷰는 나름 멋지다


내가 이틀간 일을 했던 책상이다. 마치 감옥소에서 반성하는 의자 같다. 방에 습기가 많아서 벽지도 다 일어났다


다음날 미팅을 위해 호텔 앞에서 픽업 차량을 기다리는데 차가 안 온다.

방글라데시 역시 시간 약속 더럽게 안 지킨다. 원래 외국인들하고 일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데 나는 매번 화가 난다.


나름 고급 호텔이다. 오른쪽 사진은 아침 식사 한 장소인데 한 30년 전에는 여기도 훌륭한 레스토랑이었을 것 같다


호텔에서 차로 2시간 이동하여 한 카페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나는 정말 중요한 미팅이 있다.


역시나 미팅 인원 대부분이 시간 약속을 안 지켜서 바깥이나 구경했다


1시간 미팅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했다.


오렌지 카페라는 곳인데 카페에서 밥도 주더라


카레랑 닭고기다. 나 나름 이런 것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유흥업소 조명이 달려 있어서 음식이 화려하게 찍혔네


먼지 들어가지 말라고 콜라 위에 레몬으로 뚜껑을 달아준 걸까?


음식은 순차적으로 굉장히 많이 나왔다.


요구르트다. 여긴 꼭 식후 요구르트를 먹더라. 혹시나 배탈 날까 봐 조금만 먹었는데 아직까지 괜찮은 것을 보니 믿고 먹어도 되나 보다


내가 거래처로 모시고 싶은 분 중 한 분은 건물주였다.

내가 비록 방글라데시로 출장을 다니지만 내가 만나는 분들은 전부 상류층이다. 어쩌면 내가 제일 가난할 수도 있다.


건물주님의 빌딩 1층에 가전제품을 판다. 삼성은 방글라데시에서 굉장히 유명하다


건물주님께 내 제품에 대한 홍보를 마친 후 다음 회사로 향했다.

지독한 교통 체증 속에서 네비까지 없는 차를 타다 보니 기사가 길을 엄청 헤맸다. 도착하니 이미 밤이라 빨리 회의 마치고 호텔로 가고 싶었는데 이 와중에도 독실한 무슬림 E는 기도를 하겠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양탄자 깔고 알라신께 기도를 드리는 거래처 사장과 E다


E는 너무 정통 무슬림이라 하루에 5번은 꼭 기도를 한다.


회의를 마치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아르헨티나를 정말 좋아한다. 길거리에 아르헨티나 국기가 방글라데시 국기보다 훨씬 많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저녁을 먹으면 또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길에서 바나나를 사 먹었다.


방글라데시 바나나는 정말 맛있다. 너무 배고파서 한입에 6개 다 털어 먹었네


그날 밤도 나는 20분 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 밑에서 샤워를 순식간에 마치고 꿉꿉한 침대 속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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