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년 전 여름, 인도. 페이스북에서 대학생 세계여행 수기 공모 포스터를 보았다. 여행을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고, 입상만 한다면 말라가는 통장잔고를 채워줄 기회였다. 제대로 글을 써본 적도 없는데도 그랬다. 그 뒤로 여행 틈틈이 글을 썼다. 하지만 초고를 완성하고도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했는데, 매일 같은 흥정에 몇 걸음 못가 마주치는 구걸을 냉정하게 뿌리치는 일이 배낭여행자에게 꽤나 고달픈 일이라 '글쓰기'에 집중을 못한다는 것이 그나마 찾은 변명거리였다. 길에서 만나 한동안 동행하던 친구에게 '글쓰기'를 한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내게도오로지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생겼다.
버스는 한참을 달려 어두워지기 시작한 마을에 정차했다. 여행 반년이면 내공이 쌓일 법도 한데 여전히 어둑하고 낯선 곳에선 심장이 조용히 두근거린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물감 퍼져나가듯 흩어졌고, 가장 사람이 많은 행렬 멀찌감치에서 몇 번 와본 적 있는 동네인 양 무심하게 따라 걸었다. 숙소를 찾는 여행객에게 다가오는 호객과 구걸을 줄이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랄까. 행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 드문드문 해질 때쯤, 향 태우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힌 건물의 문을 열자 향 냄새가 더욱 강해졌고,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절에 갔던 추억과 함께 방을 둘러보기도 전에 집에 온 듯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안내받은 방에 짐을 풀고 정돈된 침대 위에 몸을 뉘웠다. 배낭의 무게와 낯선 곳의 긴장이 주는 노곤함에 금세 깊은 잠에 들었다.
꿈조차 꾸지 않은 밤으로 전날의 피로를 씻어내고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았다. 승려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어디에서나 향 냄새가 났고, 아침부터 곳곳에서 승려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 조용함과 분위기에 발소리까지 줄이며 밖으로 나섰다. 전날의 어둑함과 낯섦은 쨍한 햇빛에 사라지고, 여행객과 주민들이 어우러져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북적대는 거리를 지나 조용한 카페에 들어섰다. '글쓰기'에 좋은 곳. 그렇게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고 점심엔 식사를 하며 어제 쓴 글을 오늘 고쳐 썼고, 저녁엔 향 냄새를 맡으며 잠에 들었다.
5 년 전 여름,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한 그 시간이 자주 생각난다. 늘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안에 있는 어떤 이야기들을 쓰고 싶었다. 글을 쓰려고만 하면 취업 준비, 직장 스트레스, 퇴사 준비가 반복됨에 어느새 읽기조차 멀어진 내가 안타까웠다. 그저 한 두줄 생각나는 걸 적으면 될 것을. 너무 잘하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닐까, 달릴 댓글이나 전혀 달리지 않을 댓글이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닐까. 그런 내게 어김없이 찾아온 백수 생활. 이번에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반복된 백수와 직장의 굴레에서 이제는 그 전만큼 백수라는 게 부끄럽지 않은 것처럼, 조금 뻔뻔하게 글을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