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옳은 줄로 알았던 10살 무렵, 아마 담임이었던 그가 자주 하던 말이다. 일기는 '나'가 '나에게' 쓰는 것이고, 나 혼자만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선생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는'을 쓰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했었다. 물론, 그게 지금까지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던 시절. 그때의 우리는 국민학생으로 입학해 초등학생으로 졸업하는 세대였다.
학교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용케 폐교되지 않고 버틴 곳이었다. 잊을만하면 친한 친구가 부모님을 따라 도시로 전학을 가고, 또 새로운 친구들이 전학을 왔는데 왜 이런 시골까지 이사를 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전학을 오고 갈 때마다, 동갑내기 친구의 수는 50명을 왔다 갔다 했는데, 당시 한 개 반의 기준 인원도 50명이었던 모양이다. 언제는 49명이 한 반에서 복작복작 수업을 받고, 또 언제는 51명이 두 개 반으로 나뉘어 허전한 마음으로 수업을 받곤 했었다.
국민학교 2학년이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어떤 선생님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우리에게 일기 숙제를 내준 것을 보면 담임이었을 테다. 그는 아침에 우리의 일기장을 걷어 검사를 하고, 하교할 때 다시 나눠주었다. 그리고 매번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일기를 쓸 때, '나는'으로 시작하지 말거라."
시골 아이들의 일상은 거의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학교 가고 축구하고, 점심 먹고 축구하고, 저녁 먹고 자는 것. 적어도 이 동네에 PC방이 생기기 전까진 그랬다. 이런 똑같은 일상을 일기장에 적는 것도 지루하고 재미없는데, 왜 그렇게 '나는'으로 시작하지 말라는 건지. 하긴, 그렇게 비슷비슷한 내용과 매번 '나는'으로 시작하는 50명 아이들의 일기장을 매일 읽고 검사하는 선생님도 힘들었을 일이다.
아무튼, 나는 '나는'을 쓰고 싶었다.
그 이유는 별 것 없었다. 선생님은 일기가 '나'가 '나에게' 쓰는 것이고, 나 혼자만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으로 문장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매일 같이 내 일기장을 읽고 돌려주길 반복했다. 그러면 그건 '나에게'만 쓰는 게 아니라 '선생님에게'또 쓰는 것이 아닐까. 예의 바르던 그때의 나는 사실 존댓말로 쓰고 싶은 마음이었다.
선생님도 읽으니까, "저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났어요."
아니다. '나에게' 쓰는 거니까, "나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니다. '나는'으로 시작하면 안 되니까,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의 날씨 = 맑음'
그렇게 일기 쓰기가 어려웠어도, 항상 자신 있게 적었던 것은 날씨였다. 그것은 아마 그 시절의 친구들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그 시절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날씨가 어떻든 '오늘도 맑음'이었던 이유는,
그때 그 시절의 내가 티 없이 맑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브런치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아직도 나는 '나는'이라는 말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 없는 나는, '나는'으로 문장을 시작하면 안 되는 것인지 여전히 궁금하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영향을 끼치는 그때 그 시절의 선생님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글을 쓸 수 있게 하니, 적어도 요즘은 고마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