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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리 Sep 12. 2019

명절엔 꼭 시댁과 처댁에서 하룻밤씩 자고 와야 할까?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

재작년 설이었나, 형은 결혼할 사람이라며 명절마다 여자 친구와 집에 함께 오기 시작했다. 


평소엔 집에도 잘 오지 않던 형이 어떤 여성과, 명절이라며 소고기를 잔뜩 사들고 와서는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가끔은 하룻밤 자기도 했다. 그리고는 그 여성의 집으로 출발했고 아마 똑같이 소고기를 잔뜩 들고, 아마 똑같이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가끔씩 자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게 이상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불편했다. 물론 결혼 생각이 아직 없던 내겐 먼 나라 이야기였을 수도 있고, 그냥 불편한 게 싫은 나의 프로불편러 기질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노력이 곧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이고, 잘하면 진짜 가족처럼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절엔 꼭 시댁과 처댁(혹은 처가와 시가)에서 하룻밤씩 자고 와야 하는 걸까?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나이가 가장 많았던 상사는 당연한 것이라고 했고, 그게 예의라고 했다. 젊은 직원들은 그것이 예의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똑같은 질문을 받은 친한 친구들은, 불편해도 어쩌겠냐는 반응과 아무렴 어떠냐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정말 결혼을 하면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가족이면 응당 자주 교류를 해야 서로 정도 들고 뭐, 그런 게 가족인 걸까.






그러면 왜 명절마다 찾아뵈어야 하는 걸까?


그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생각했었다. 먼저, 둘이 결혼을 하여 별 다른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시켜 드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랑하는 배우자를 존재하게 했고, 또 배우자가 나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사랑해 온 그 '가족'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는 기회라고.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위해서 굳이 시댁과 처댁에서 서로가 불편한 하룻밤을 보내야만 하는지는 여전히 궁금했다.






그러던 내가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을 맞았다.


우리는 서로의 부모님을 결혼 준비 때부터 지금까지 몇 번씩 뵈었다. 역시나 단번에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보다.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를 보고 깜짝 놀라는 와이프나, 먼저 안부 전화 한 번 드리지 못하는 나나, 여전히 불편한 것이 많은 신혼부부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라는 것이, 직장 상사에게 느끼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내 딸에게 잘하는지, 내 아들에게 잘하는지. 애지중지 기른 자식이 다른 집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님은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알고 나니 '불편하다'보다는, '어렵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명절 연휴 앞뒤로 시댁과 처댁에서 점심식사만 함께하고, 잠은 각자 부모님 댁에서 자기로 했다. 


어렵기 때문에 더 자주 만나고 노력하면 좋겠지만 그것 때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평생 함께 할 시간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지워주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려움에 지레 겁먹고 무조건 피하지는 않기로 했다.





(주의 : 다음 명절에 장모님 옆에서 전을 부치고 있을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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