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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리 Aug 21. 2019

아니, 승진했으니 지사로 가라니요

이번에는 어느 성실한 직원의 이야기이다.

그전에 몇 가지 알아두어야 할 내용들이 있다.



이 기관의 직급 체계는 5개이다.

전임-선임-책임-부위원-위원. 무기계약직인 전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선임으로 입사한다. 이렇게 매년 들어오는 선임들이 켜켜이 쌓여있어 승진 정체 현상이 심하다. 빨리 때려치운 내가 그들의 승진 속도에 도움이 되었길.


서울에 본사를 두고 대전에 지사가 하나 있다. 

행간에는 본사에 보이거나 사고를 치면 대전으로 간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러기엔 큰 도시였고 어느 직원들은 서울보다 대전을 더 좋아했다. 그냥 그런 소문이 있을 뿐이었다. 


단지, 서울러들은 서울에 있기를 바랐고, 어떤 직원들은 대전에 가길 바랬다.






개원 초기부터 성실하게 일해 온 선임이 있었다. 6년 전에 입사해서 100여 명의 후배들이 들어왔지만 다 같은 선임으로 일하고 있다. 연봉이라고 해봐야 매년 물가상승률 정도를 반영하여 올랐을 테니, 높은 최저시급을 반영한 요즘 신입 선임들의 초봉보다 높기는 할까.


그는 말랐지만 다부진 체구와 얇고 각진 금속테 안경에 짧은 스포츠머리가 다소 딱딱한 인상을 주었다. 카라티에 면바지를 입고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 마치 '내가 바로 네가 상상했던 그 30대 후반 공공기관 직원의 전형이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첫 출근하여 괜히 하는 것 없이 긴장하 앉아 있던 내게, 그는 나지막한 칸막이 위로 고개를 살짝 내밀더니 '축하해요'라는 말을 건네었었다.


그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는 데 어색한 사람이었다. 그저 조금 잦아진 아재 개그 빈도와 스마트폰에 도배된 듯한 어린 딸 사진을 보여주는 것을 보며 그와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간혹 같이 점심을 먹으, 회사에서는 가끔 아부를 떨기도 해야 하고, 또 가끔은 할 말은 해야 한다며 나름 조언을 해주던 그 선임.


나보다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탓하는 말처럼 들렸다.






항상 어딘가 얼굴에 그늘이 있던 그가, 어느 날 밝은 표정으로 출근했다. 드디어 서울에 집을 구했다고. 빚쟁이가 되었지만, 진짜 서울러가 되어 아내와 어린 딸아이에게 조금 면이 선다는 그의 말을 듣고 짠한 마음과 함께 축하를 해주었다. 그런 그에게 또 한 번 축하할 소식이 이번엔 공문과 함께 날아들었다. 얼마 전 있었던 승진 심사 결과 발표 공문이고, 거기엔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6년 만에 승진이었다. 서울에서 내 이름으로 된 집을 마련하고 이제 승진까지 했으니, 성실하게 일해 온 자가 받는 포상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대전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곤 아예 대전으로 내려갔다.






행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그가 본사에 보여서 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반대로 대전에서 꼭 한 명이 서울로 올라와야만 한다면, 그 빈자리에 누굴 앉힐까. 제일 군소리 없이 갈 만한 사람을 찾지 않았을까.  역시 그를 둘러싼 소문일 뿐이었지만, 그가 대전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었을테다.


그는 아내와 아기가 있는 서울에 자기 집을 두고, 대전에서 혼자 월세 살이를 시작했다.  조짐도 없이 갑자기 발령을 받 부랴부랴 구한 원룸 방이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기차로 서울과 대전을 오고 갔다. 그렇게 가족과는 멀어지고 쓸데없는 지출은 늘었다. 한 달에 네댓 번 왕복하는 교통비와 월세 얼마일까.


아마도 승진해서 오른 월급, 40만 원으로는 턱 없이 부족것이다.






직원들(주로 젊은)의 불만은 두 가지였다.

첫째, 승진자는 물론 다른 직원들도 부서를 이동시킨다. 물론 인사이동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언제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승진이나 채용, 기관장 이취임 등을 이유로 6개월이 멀다 하고 벌어지는 이런 인사이동은 '인사소동'에 더 가깝다.

둘째, 인사이동 내용을 당사자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당연하다. 하지만 1층에서 2층으로 옮기는 것과 서울에서 대전으로 옮기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군소리 않고 떠난 그 선임, 아니 책임은 그렇게 주말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했다. 출장으로 가끔 대전에 가서 그의 자리를 보면, 어딘가 그늘진 얼굴로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었던 사람처럼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딸아이 사진을 자랑스레 보여주던 선임 때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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