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 오늘은 여러분께 드리는 몇 가지 질문과 함께 시작을 하겠습니다. Q. 내가 돈을 낼 때는 남기지 않고 먹는데, 누군가가 사줄 경우엔 '남겨도 괜찮다'라고 생각한다. Q. 내 돈으로 여행할 때는 되도록 저렴한 항공권을 찾아보지만 출장 경비가 나온다면 비싼 항공권을 구입한다. 내 돈을 쓰기에는 뭔가 아깝지만 남의 돈이라면 조금은 더 써도 될 것 같은 양면적인 감정들을 말하고 있죠...(계속)
특히 국회 외통위(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이 특활비로 다닌 외유성 해외출장이 이슈였다. 그중 몇 의원들이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외교부 산하기관의 인턴으로 그들의 방문국가 중 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의원들이 온다고 하여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을 빌려 미리 꽃과 술을 세팅했었고, 그들이 탈 차를 구형 카니발로 빌렸다가 상사가 '어디서 이딴 걸 빌렸냐'며 노발대발 화를 내던 모습도 기억난다. 세금으로 온 출장에 버젓이 부인들을 데리고 온 그들의 요구사항은 많지 않았다. '부인들 사진을 찍지 말 것.'
2년이 지나, 난 다른 공공기관의 직원이 되었다.
과연 이들의 '남의 돈 사용법'은 어떨까.
주무부처 공무원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해외출장 오지리 씨가 간다며? 이번에 예산실이랑 가는 거 알지? 엄청 중요한 출장이야."
언젠가부터 반말을 하는 이 공무원은 가장 자주 부딪히는 사람이었다. 담당 사업의 주무관인 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건 했냐, 저건 했냐.' 전화를 해대는 통에 진저리가 났지만, 그게 주무부처에서 돈을 받아 쓰는 산하기관 직원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하기야 그들 역시 그들에게 매년 예산을 책정하는 예산실 직원들에게는 꼼짝 못 하니 피차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과 해외출장이라니.
담당 공무원도 버거운데, 그도 꼼짝 못하는 예산실 직원까지 '모시고' 가야 하는 해외출장. 그 나라가 어디든 나는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출장의 명목인 사업의 담당은 불행히도 나였다.
"어, 오지리 씨. 우리가 미국이랑 캐나다는 작년에 갔다 왔거든? 이번엔 어디 북유럽 쪽으로 한 번 알아봐. 그 심의서 작성은 작년 거 참고하고."
얼마 후출장 국가는 스웨덴으로 정해졌다. 출장명은 OO분야 선진국 벤치마킹을 위한 공무국외여행. 이제 나는 스웨덴이 OO분야의 선진국이며, 이들을 벤치마킹해야만 하는 이유들을 찾아야 했다.별 볼일 없는 논문들과 다소 관련 없어 보이는 기사들을 잘 엮어서 그럴듯한 심의서를 작성했다.
그 심의서는 '불행히도' 승인 심사를 통과했다.
"오지리 씨,그럼 이제 현지에서 방문할만한기관 좀 알아봐. 하루에 두 기관 정도, 한 2시간씩만 보면 될 거 같거든? 무슨 말인지 알지?"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적당한 기관에 방문하여 인증샷을 찍고, 나머지 시간에는 관광을 아니, '문화탐방'을 할 거라는 말이다. 세 달 남짓 동안 구글 번역기를 벗 삼아 현지 기관에 뜬금없는 방문 요청 메일과 페메, DM을 보내며 밤낮으로 일정을 맞추는 동안, 담당 주무관도 '문화탐방' 일정을 짜느라 바빴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여행사를 통해 전체 일정에 관광버스와 현지가이드를 고용하고 식사 일정까지 맡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정작 중요한 통역사를 고용할 돈이 없어 결국, 내게 통역을 떠넘겼다. 다행히 유학파 상사가 있어일정 소화에 무리는 없었으나, 이것만 보아도 출장의 무게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떠난 해외출장은 순조로웠다. 우릴 위해 시간을 내준 현지 기관 관계자와 보고서용 사진을 찍고, 보고서에 넣을만한 내용의 책자와 발표자료를 챙겼다. 공식 일정이 끝나면 '문화탐방'을 했고, 밤에는 호텔방에 모여 앉아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마시며 술잔을 돌렸다.
시답잖은 농담들 사이로 낯부끄러운 아부성 발언들이 밤늦게까지 오고 갔다.
귀국 후에는 이번 출장이 문제없었음을 증빙하는 사진과 내용을 첨부한 결과보고서를 작성했다.급하게 끊느라 평소의 두 배에 가까운 가격에 결제한 항공권과'문화탐방'을 위한 관광버스 대절비는 경비로 처리했다. 생각보다 과한 금액에 당황한 내게, 담당 주무관은 '상관없다.'라고했다.
기본 여비 외에 끌어올 수 있는 돈은 최대한 끌어다 쓰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많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이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공익을 위하여혹은 철밥통이라는 말에,어렵게 들어왔지만이해할 수 없는 관행들과 막무가내 상사에게 치이고 쉴 새 없는 악성 민원에 아파하며 사직서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이들의 노력이 무색할 만큼일부 직원들이 여기저기에서 물을 흐리고 있다. 물론필요한 출장은 가야 하고, 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주변 관광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업무보다 다른 목적이 더 큰 출장을'남의 돈'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나 역시 신입직원이라는 핑계로, 옳지 않은 출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대 의견은커녕 '가기 싫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한 내가 부끄러웠다.
아마 이때쯤, 나는 퇴사를 결심했던 것 같다.
중앙행정기관을 포함한 정부 기관들이 작성한 문서들이나 각종 현황이 궁금한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참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