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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Dec 08. 2024

시절의 서랍장

송정동_이정옥

새 옷, 양옥


양옥들이 즐비한 골목을 거닐면서 이들의 포근한 집냄새에 홀렸다. 어릴 적 친구들과 골목을 휘젓고 다니면서 뛰었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리 좋은지, 키득키득 소리를 내면서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을 가기도 했다.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교차했으며, 누가 밖으로 나오든 간에 우리에겐 숨을 곳들이 충분히 많았다. 좁은 골목길은 숨바꼭질하기에 유용했으며 무엇보다 차들이 없어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직주근접 놀이터였다.


하늘빛 코끼리


서울시 광진구와 접한 뚝방길 옆 성동구 송정동은 특별한 동명 유래의 문헌이나 구비설화는 없다. 다만 송정동 앞의 들판은 숫말을 기르는 곳이며 '숫마장'이라고 부르던 것이 '솔마장'이 되고 다시 한자로 송정(松亭)이라고 불리지 않았나 추측된다. (네이버 지식백과사전) 소나무 '송'과 정자 '정' 한자 뜻을 풀어보면 짐작건대 소나무 숲에서 숫말을 키우면서 정자에 앉아 지켜보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한옥 다음으로 지어진 70,80년대 2층 양옥은 반지하와 옥탑을 포함해 어찌 보면 4층 건물로 설명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양옥들이 길을 따라 즐비한 풍경들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을 전파한다. 이렇게나 많은 다양한 주택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낸다. 난간의 형태는 유럽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라 하고 뾰족한 금속 촉들은 보기만 해도 왠지 마당에 큰 개가 집을 지키고 있을 것 같다. 집의 겉모습만 보고도 그 집의 주인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다. 공간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항상 집주인 닮은 집을 만들고자 집주인의 속사정과 겉사정 두 가지를 보려고 노력한다. 잡지에서 나오는 유행하는 인테리어가 아닌 생김새 다른 사람들처럼 집도 하나의 인격체로 멋을 뽐낸다면, 나와 우리의 주변 풍경이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획일화된 사회가 되어가는 요즘, 우리의 사고마저 하나로 묶여서는 안 된다. 야들야들 유들유들하게 인식의 체계를 복잡하면서도 다양하게 엮어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어떤 집에 먹고, 자고, 놀고 싶은지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어릴 적 기억의 서랍장을 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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