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범진 Jan 27. 2022

송리단길, 카린지에 다녀왔습니다.

가끔씩, 오래보고 싶은 후배와

 2022년 새해를 맞이했다. 무탈하게 보냈던 2021년이라 카운트다운을 생방송으로 지켜봤는데도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냥 어느 주말과 다름이 없었고, 뭔가 특별하게 하루를 보내기보단 편하게 주변 사람을 만나듯, 오늘은 신병 휴가를 나왔다는 학교 후배가 돈가스 먹자며 연락이 왔다.


 3년 전인가, 본인이 한창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당시 1학년이었음에도 선배들 따라 스튜디오에 자주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알게 됐던 것 같다. 내 부캐 활동을 전적으로 좋아해 주던 친구였어서 같이 돈가스를 먹으러 종종 다녔다. 그냥 밝은 친구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보고 배울 점이 많은 동생이라, 돈가스 먹자는 핑계로 만남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카린지 잠실점 외관

 송리단에 위치한 카린지에 다녀왔다. 요즘 가장 핫한 돈가스집을 소개해 주고 싶었고, 마침 각자 집에서도 중간 지점이었다. 본인도 작년 가을이었나, 리뉴얼되고 나서는 처음이라 궁금하기도 했다.


 후배가 서울숲 쪽에 있는 카린지와 같은 곳이냐고 물어본다. 알고 보니 이 녀석 얼마 전 성수에 전시를 보러 갔다 성수점에 다녀왔다고 한다. 같은 카린지가 맞지만 다르다고 해야 하나. 현재 두 곳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메뉴가 조금씩 다르다. 고객을 분산시키기보단 두 개의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똑똑한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본인도 두 곳을 번갈아가며 찾게 되는 것 같다.



 재정비를 거치며 공간 배치부터 메뉴까지 싹 바뀌었다. 코돈부르나 파스타와 같은 경양식 메뉴들이 빠졌고, 성수점에서 자주 먹어봤던 카레와 돈가스 메뉴들로 채워졌다. (전에 있던 음식들도 나쁘진 않았는데 잘하는 메뉴들로 과감하게 선택과 집중을 한 것 같다.) 거기에 잠실점에서만 판매하는 #시금치카츠카레 가 새로 생겼다. 돈가스만 제대로 한번 먹어보자는 생각에 카츠카레, 고스미돈까스, 카츠산도를 시켰다.


시금치 카츠카레 (11,000원)

 시그니처 메뉴라 할 수 있는 시금치카츠카레 비주얼이 가장 압도적이다. 가운데 안심에서 흘러나온 육즙이 싸악 고여있고, 조명 빛에 더 영롱하게 빛난다. 비프 웰링턴을 표방했다 하는데, 이거다 싶었다. 카츠는 3가지 버섯, 베이컨 등으로 안심을 겹겹이 쌌고, 베이컨 향이 강하긴 했는데 씹을수록 재료 본연의 식감들이 잘 살아있는 게 느껴진다. 튀김옷을 굉장히 얇게, 바삭한 식감만 잘 살렸고, 흘러나온 육즙이나 카레 위에 얹어졌음에도 눅눅해지는 게 없는 것을 보니 온도감을 잘 맞췄나 보다.


 카레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시금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처음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재료를 잘게 다져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냈고, 입안에서 카레 향신료가 은은하게 느껴지는 게 좋았다. 시금치 카레를 좋아하던 사람들이면 분명 만족스럽게 먹을 듯. 카츠 크기 때문에 한 숟가락에 다 올려 먹는 게 어려워 카레 따로, 카츠 따로 수저질 하느라 번거롭긴 하다.


고스미돈까스 (12,000원)

 고스미돈까스 는 가격이 조금 올랐다. 만원이라는 가격에는 솔직히 갓성비라고 불러도 될 만큼 완성도 높은 카츠라 생각했는데 만이천원이라 하니까 이제야 알맞은 가격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등심, 닭안심, 새우로 구성되어 있고 크리미한 소스가 카츠 맛을 꽉 잡아주는, 카린지만의 스타일을 가진 경양식 돈가스다.


카츠샌드 (5,000원)

카츠산도 는 손에 쥐기 딱 좋은 크기로 두 피스가 나오고 위아래로 바른 달짝지근한 소스에서 톡 쏘는 겨자 맛이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등심을 정말 잘 다루는 것 같다. 바삭함은 조금 아쉽지만 고기 텍스쳐나 식감이 좋다. 이 정도 퀄리티에 오천원이라면 가격도 꽤 합리적인 듯. 메뉴 두 개 시키긴 아쉽고 세 개 시키기에는 많을 때 괜찮은 선택지다.


요즘 들어 비슷비슷하게만 느껴졌던 돈가스 집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카츠였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게 안에서도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편하게 대화 나누며 식사하기 좋았다. (덕분에 요즘 근황과 군대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떠들었나 보다.)

무엇보다, 1월 1일에 만났지만 누구 하나 올해의 목표를 늘어놓지 않은 점이 좋았다. 늘 특별하게 보내자고 실컷 떠들어대고 머쓱했던 지난 날들을 각자 잘 알기 때문에 각자 요즘 가지고 있는 생각과 관심사들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함께 건설적인 대화들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후배지만 참 존경스럽다. 난 왜 저 나이때 저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은 있어도 덕분에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 고마운 사람. 앞으로 이런 인연이 얇지만 길게, 오래 갔으면.




돈까스 찾아 삼만리

이 세상 돈까스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