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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Feb 13. 2022

독서와 기록의 힘에 대하여

책과 씀이 만들어낸 소중한 일상

사람을 참 좋아하면서도 체력이라는 것이 한정적이기에 몸이 피곤할 때 누군가를 만나는걸 자제하는 편인데, 그럴 때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었다. 좋다는 책, 내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은 책, 그냥 마음에 들어온 책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읽어보다 보니 책이라는 것도 내 머릿속에 남긴 할까? 하는 의문에 분명 남는다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고, 인간인 내가 체감하기도 전에 무의식이라는 곳에 축적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던 잠긴 표면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독서는 강력한 자산이 된다. 더 많은 걸 알고 싶다는 지적인 배고픔이 머릿속을 채우는 것 말고도 마음의 궁핍 또한 채워주었다. 순간의 채워줌과 동시에 난 그 소화의 과정을 통해 알고 있다는 자각도 하기 전에 누군가와 대화하는 순간 내 머릿속의 서재에서 나도 모르게 하나 둘 끄집어 내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의 묘함은 경험할 때마다 묘하다. 내가 이거 어떻게 알고 있지? 하는 그런 신기한 느낌.



막연하게 계획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적이 있다. 나의 즉흥적인 면모가 행동으로 이어지게는 했었지만, 사실 일상을 다듬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에 계획이 필수가 되었다. 계획적인 삶을 동경했고, 어느 정도 내 삶의 변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강한 만족을 느꼈다. 그 동경하는 삶엔 책과 함께하는 삶이 있었다. 하나 둘 책을 꺼내 읽다 보니 그렇게 나는 바라던 내가 된 것 같은데, 동경을 내 삶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정말 큰 힘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내가 부러움을 느끼는 삶을 내가 하루 이틀 실천하다 결국은 나의 삶이 되어 있는 게 어쩌면 이상을 현실화하는 최선 아닐까. 조금씩 현실에 대한 타협보다 그리던 것에 가까워지는 부분이 내가 삶에 통제권을 가짐으로써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살아갈 수 있는 큰 원동력을 주었다.



독서라는 것도 그런 것처럼, 언제 다 읽지 막연해졌다가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즐기면서 읽어 내려가고 기록을 통해 소화의 과정을 겪다 보면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 나의 일부가 되어 나를 이룬다. 하루 단위로 봤을 때 독서라는 건 보잘것없을 수도 있고, 별것 아닌 사소한 행위에 불과한데 삶이 축적되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행위라는 걸 실감하며 사는 요즘이다. 뭐 읽지 하면서 타인이 추천하는 책들로 가득했던 내 삶이 이제는 내가 읽었던 책들을 자신 있게 꺼내 보일 수 있게 되어 지나간 삶이라는 것이 그냥 흘러만 가지 않았다는 만족감을 얻었다.



그냥 책을 읽기만 해서는 사실 선명하게 남지 않는다. 그럴 때 일수록 기록을 가까이하며 살았다. 마음에 남았던 문장을 필사하고, 별 것 아닌 듯한 내 일상을 빼곡히 적어내려가는 것은 내게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의미가 없다는 의문을 마주했을 때 가장 힘이 되었던 것도 기록이다. 주어진 할 일을 미친 듯이 해치워 나갈 때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일만 하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랑했던 기억이라는 거 점점 잃어가지 않을까? 하며 막연한 불안에 마주한 적이 있다. 그 막연한 불안이라는 것은 삶 자체를 공허하게 만들어서 살아가는 것들이 모두 헛되게 보이는 만드는 무서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내가 만든 지난 추억들이 담긴 앨범을 먼저 훑어본다. 굉장히 사적인 기록들은 실용의 의미에서는 무용한 것일지라도 지극히 나라는 인간에 한해서 그 기록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삶의 의미가 되어준다. 내가 그 시간을 어떤 밀도로 흘려보냈는지 눈으로 확인했을 때, 삶의 모호함은 삶에 대한 확신으로 변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이연’의 영상이 떠오르는데, 자기 몸에 자신이라는 영혼과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근데 그 영혼은 윤회를 거듭했기 때문에 전생의 삶 또한 기억을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데, 현생의 나보다 더 똑똑하다고 했다. 아는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내가 질문을 던진다고 해도 신생아와 같은 내가 말을 던지는 것을 바보 취급 하면서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답을 얻기 위해서는 나라는 영혼과 대화를 하기 위한 고요한 시간과 그 언어를 다듬을 시간의 쌓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음 걸음마를 떼듯 나의 영혼과의 대화를 이어가던 내가 보상처럼 기록에서 건져 올렸듯이, 신기하게 나는 답을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 부분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는 게 그에 대해 내가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삶은 내게 답을 준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와의 대화를 많이 끌어내는 게 결국은 나라는 우물에서 길어온 배움이기 때문에 더 값지고 현명한 답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록이라는 것에 의미를 가장 크게 두고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부딪힐 힘이라는 건 충전을 통해 의식적으로 필요하다. 삶은 수많은 방해로 가득하고, 삶은 고통이 필연적이라는 문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 부딪힐 힘이라는 걸 사랑 가득한 사람들에게서 얻고, 나와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현명했던 이들의 책에서 답을 얻고, 기록을 통해 나와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의 다시각적인 대답을 내놓으며 삶이라는 모호함을 구체화해 간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독서와 나와의 대화가 자아를 깊어지게 해주었지만, 현실적인 스트레스나 불면에 대한 해소를 완전히 해소시켜주지 못했었다. 내가 그런 무게가 있는 도서들을 좋아했고, 철학이라는 분야들만 취급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무거운 마음을 안기 보다 마음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태도가 내게는 확실한 처방이었던 것이다. 지는 노을과도 같은 마음을 아침에 떠올리기도 했는데, 그것 또한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들뜨거나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가두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아침에 내 기분을 가볍게 해줄 수 있는 음악을 들으며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세상의 많은 어려움들이 가볍게 여겨지는 의식적인 행위라고나 할까. 심각해질 필요 없다.



가벼움의 미학을 진하게 배웠던 요즘, 깊이가 없는 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어느 정도 무게가 있어야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살아가는 데 있어 어려움에 대해 가볍게 넘길 줄 아는 이들에게 최근에는 더 큰 걸 배웠다. 무거워지려 하면 내 마음을 가볍게 해줄 이들을 가까이하고, 또 너무 가벼워진다고 하면 무게를 잡아주면서 뭐든지 적당함이라는 중도에 삶의 중심을 두어야겠다. 중심이 있을 때 내 삶이 더 온전해진다는 걸 느끼기에.



수다스럽고 요란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게 어쩌면 멋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 이런 거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나를 꺼내 보이고, 자랑스럽게 취향에 대해 토로한다는 게 나와 닮은 이들을 가까이할 수 있는 큰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걸 배웠으니 나는 수더분하게 표현하면서 살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 없다는 머릿속의 외침에 반발하는 답을 내릴 때 더 현명하고 내 삶에 가까워지는지도 모르겠다.



건조해지지 않기 위해서 절박하게 붙잡던 행위가 나를 대변해 줄 가장 큰 행위가 되었고,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순간으로 자리하게 되었으니 삶이라는 것도 참 신기하지 않은가.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정말 자신 있게 기록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이토록 좋은데 삶의 바쁨에 치이다 보면 그럴 겨를이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다 보니 강요는 하지 못하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글 쓰는 것도 인연과 같아서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때가 있다는 것이고, 그 순간에 찍히는 점들이 망망대해 같은 삶에 방향을 잡아줄 든든한 지표가 되어줄 것이라는 건 정말 확실하게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하다 만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가 그 행위를 멈추지 않고서 시간의 틈에서 계속하고 있다는 진행중인 상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간만의 양질의 대화로 부족한 숙면에도 들뜨는 밤이었다.



2022.2.11 새벽녘에서 건져올린 아침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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