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서사’에서, 함께 아는 ‘서사’로
창작을 계속 업으로 이어나가고 싶어 고민하고 있던 제게 남자친구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어요.
“같이 해보는 게 어때?”
“뭐를?”
“브랜드 만드는 걸!”
“우리 둘이?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물음이 머리 위를 휙 지나갔어요.
“미대를 졸업하고도 너처럼 작업을 여전히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 현실적 상황과 요건으로 인해서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잖아.”
“그걸 우리가 해보고 할 수 있는 방향도 있는 걸 보여주면서 콘텐츠를 쌓아가면 더 좋지 않을까?”
졸업 작품으로만 남기기엔 아까운데,
같이 한번 브랜드로 만들어 보지 않을래?
그 말에 정말 진심인가 하며 망설이기도 했지만, 함께 해보자는 지지해 주는 한마디가 든든하게 다가왔어요. 점차 같이 할 수 있는 방향들을 고민하고 있었죠.
‘사실은 그걸 하고 싶었는데 ‘ ‘결국 그걸 하지 못했어’ 하고 아쉬움만 표하는 사람으로 자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게나마 용기 내어 발걸음을 떼 보기로 하고 여러 실패와 성공에 부딪혀 보았습니다. 시작이 엄청나게 대단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 보는 중이에요.
손에서 만들어진 작업들로 뭐라도 될 거라고 생각하고, 기대하고, 상상하고, 그런 마음 잔뜩 한가득 가지며 작품에 애정을 쏟았던 날들은 점차 SEOSA라는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 일련의 짙은 꿈을 꿨던 시간들이 서사를 만들었다고 믿어요.
여러분도 기대와 실망을 오가면서도 그럼에도 애정하기에 다시 도전해 본 경험이 있지 않나요? 시작이 두려움에도 자신만의 서사를 쓰고 싶은 꿈을 꾸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보내요.
졸업작품이 브랜드로?
많은 미대생들의 꿈이 아닐까요?
졸업 후 자신만의 고유의 색을 담아낸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런칭하는 건요!
저도 제 이름을 건 브랜드 혹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꿈꿨어요. 졸업 작품을 하던 2022년도 4학년 시절을 지날 때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미대를 졸업하려면 통과의례로 누구나 올리는 졸업 작품이지만, 당시에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가지고서도 그 발걸음이 작은 씨앗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졸업만을 위한 전시를 준비하고 싶진 않았기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미술 학도로서 1년의 시간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했습니다. 훗날 이 시간을 브랜드의 첫 시작으로, 졸업작품이 이만큼이나 성장했다고 놀라워하며 떠올리길 간절히 바랐어요.
잠깐의 기분 좋은 상상으로 남을 수도 있었으나, 그 순간의 심상들 덕분에 고단했던 시간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여깁니다. 그에 대한 걸 깨닫게 된 것도 마음의 방황 끝에 도달하게 된 것이기에, 새삼스레 그리던 대로 시작이 되어주었다는 그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제가 재학했던 학과는 공예과와 텍스타일 디자인과가 합쳐져 다양한 재료들을 다루면서 수공예 작업을 하는 리빙 디자인과라는 곳이었습니다.
물성에 따라 도자, 금속, 텍스타일 각각의 재료들을 만지면서 손으로 만드는 작업 위주이기에 수공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었어요.
몸이 힘들긴 해도 직접 만든 결과물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체질에 맞는 편이었습니다. 다양한 재료를 다룰 수 있어서 얕지만 넓게 만들 수 있는 분야도 많아졌어요. 함께 졸업한 동기들과는 우리는 뭐든 만들 수 있는 가내수공업과 라고도 별칭을 달아 부르기도 했습니다.
졸업을 하는 요건은 작품과 포트폴리오였는데요.
가상의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 텍스타일, 세라믹, 메탈의 분야에서 여러 작품을 1년간 하나의 컨셉으로 전개하며, 하나의 공간으로 어우러지게 만들어가는 것이 졸업 작품이었습니다. 다 만들어진 작품들을 사진 촬영하고, 온라인 전시 사이트 업로드,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개설해 업로드하는 것까지가 졸업 전시의 일환입니다.
졸업생들이 멋지게 만들었던 인스타그램 계정들은 졸업 작품이 끝나고 나면 취업을 하면서 활동을 하지 않는 유령 계정이 됩니다. 종종 간헐적으로 작업물을 수 올리는 선배들을 보긴 했어도 대게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밤을 새워서라도 열정을 쏟아 만들어내던 작업과 멀어지는 게 안타깝게도 대부분이에요.
창작으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기도 할뿐더러, 학생으로서의 신분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사회에 던져지는 시기이기에 사회인의 한 구성원으로서 구실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의 이유에서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수고로운 과정을 1년 동안 갈아 넣고 나서 창작을 지속하는 졸업생이 많지 않다는 게 그 당시엔 속상하게 느껴졌어요.
졸업 후 버려지고 잊히는 작품들은 무수히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하게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창작을 하고 만드는 사람으로, 내 이야기들이 기억되길 바랐어요.
창작을 지속하고픈 소망을 가진 저 또한 갑자기 소속감에서 벗어나 던져진 그 시기에 하루빨리 소속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겁에 질려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불안감에 다른 동기들처럼 하루빨리 인턴에, 계약직에, 최종적으론 정규직 취업 준비에 몰두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꽤 커져 있었어요.
그 와중에 창작을 고려하는 일이 샛길로 가는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기에 먹고살 궁리는 당연한 숙제여서 당장이라도 취업을 할까 마음이 드는 한편, 또 한편은 학교를 다니던 5년간의 시간 동안 작업을 하지 않는 날이 더 적었기 때문에 그 수고와 멀어진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매일을 갈고닦던 그 시간이 취업과는 별개의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쏟고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바쁘게 졸업 준비를 하면서도 “창작으로 돈을 벌 순 없을까?”라는 질문이 내내 따라다녔어요.
서막 : 홀로 개인전 준비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 나가게 되어 창작에 눈돌릴 틈 없이 바쁠 예정이라면, 가장 작업의 시간이 많은 그 시기에 전시를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졸업 전시는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바뀌게 되어 오프라인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수공이 많이 들어간 건 직접 봐야 그 노력이 눈에 보이는데, 학교 온라인 졸업전시의 졸업 작품으로만 남기기엔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넷상으로 보이는 이미지들은 너무 잘 가공되어 있어서 원본 작품의 퀄리티가 그만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물 작품을 꼭 보여주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졸업 후엔 학교의 시설들은 쓰지도 못한다는 사실도 아쉬웠기에, 취업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나의 길은 거기에 있을 거라고 막연한 확신을 하며 개인전 준비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졸업만 앞둔 방학, 2개월의 시간 동안 아무도 없는 공예관을 혼자 오가며 작품을 하는 그 시간은 돌이켜보면 정말 귀했어요. 준비했던 걸 보여주겠다는 목표가 있으니까 몸은 고단해도 하루하루 즐거웠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정답도 없고,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서 눈물지어도 주도적으로 내 손으로 정해지는 많은 것들에 자율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이때까지만 해도 상업적으로 브랜드라 명명할 생각은 없었고, 전시 자체의 목적이 강했었어요. 전시가 끝나면 막연하게 작가를 계속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오픈 일주일 남았을 땐 분명 미친 듯이 달려왔던 몇 주간의 기억이 있었는데도 매듭이 나오고 있지 않은 답답한 상황도 있었어요. 주문 제작 굿즈들 발주 넣고, 매일 같이 공예관을 가서 물레를 차고, 집에 돌아와서 내일 할 작업들을 정리하던 그런 최선의 일상이었건만, 결과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마무리 지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조급함도 있었습니다.
어떡하지 걱정하기보다 빠르게 쳐내갈 수 있는 것들 위주로, 또 마감이나 발주가 가장 급한 것들, 꼭 오늘 해야 할 것들을 쳐내가다 보니 갈피가 어느 정도 잡혀 무사히 마감할 수 있었어요.
서사의 첫 번째 프로젝트 서막은 연기 연극 따위에서, 처음 여는 막, 일의 시작이라는 발단을 의미합니다. 계절의 흐름과 지극히 사적인 텍스트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서사는 텍스타일, 세라믹의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오브제에 이야기를 담는 형식으로 작업을 전개합니다. 2023년 한 해를 시작하며 찾아오는 봄과 더불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계절이 흐르는 편지로 운을 띄우며 바람에 실어 마음을 보냅니다.
날씨 같은 오늘을 살아갈 당신이 지난날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끼기보다 계절이 건네주었던 선물 같은 이야기의 존재를 기억하길.
당시 전시의 캡션으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서막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는 서사의 시작이기도 하면서 졸업 후가 창작에 대한 배움의 끝이 아니라 창작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싶었어요. 이것도 나라는 시나리오의 한 꼭지로 지나갈 막이라고 여기면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추후엔 전시를 방문해 준 같은 학교 후배에게 그 이름의 의미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는 말도 전해 들을 수 있었어요. 졸업 후의 막막함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
‘서막’이라는 전시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말이에요.
창작의 행보가 나에게만 기쁨이 되는 게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기쁨이 되는 경험이었어요. 의도했던 의미가 잘 전달이 되었구나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렇게 오픈했던 전시는 유심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여럿 다녀가 주면서 나름의 작은 성과와 즐거운 추억으로 마무리되었는데요. 하지만 전시가 다 끝나고 나니 성취감도 크면서도 번아웃이 세차게 찾아왔었습니다.
잘했다는 말은 달디단 포상 같았으나, 내 생계를 책임져주는 말은 아니므로 칭찬을 들어도 조금은 허탈하기도 했어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작품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감이 잡히지 않았고, 보여주기 까지도 외로운 시간을 혼자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왔어요. 학생일 땐 같이 작업을 하던 동기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홀로 달려가야 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시의 목적이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으니까 우선 해보자였음에 잘 마무리 지었다는 건 다행이었는데, 분명 재밌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많은 질문들이 나에게 다녀갔어요.
‘앞으로도 이 정도의 품을 들여서 언제든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까?‘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을까?’
‘혼자 작업하는 게 외롭진 않을까?’
‘이 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
어렵지 않을까? 무섭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가득 차 있을 땐 제 마음의 여유가 남지 않았어요.
결국엔 이 두 가지가 당시의 나의 가장 큰 고민으로 남았습니다.
1. 누군가 미션을 준 일을 하면 돈을 받는다.
2.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을 땐 보상이 불분명하다.
전 시키지 않은 일을 직접 해나갈 때 가장 자유로움에서 오는 성취감을 크게 느꼈어요. 그럼에도 보상이 불분명한 일엔 즐거움과 동시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취감을 느끼는 와중에 불분명한 게 파이가 더 커버리면, 즐거움보다 조급함을 더 다가오는 수순을 겪었어요.
고민으로 편치 않은 마음 때문인지 개인전을 기점으로 일상은 그리 사랑하던 창작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전시가 끝나고서 ‘전시를 해보자’, ‘펀딩을 준비해 보자’와 같이 나름 주변의 제안을 많이 받았음에도 창작의 길로 곧바로 매진해 마음을 잡기 어려웠어요.
창작에 정말 진심이었던 것만큼 막상 해보니 보상이 불분명하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나 싶습니다. 불분명하다는 건 분명 장단점이 있어요. 자유롭고 한계가 없지만 한계가 없는 만큼 보상이 더 늘어날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일이었죠. 그러다 보니 한 풀 꺾인 마음에 작가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생각하기도 하면서, 창작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졸업 후 그 주위를 빙빙 배회했습니다.
그럼 어쩌다 창업을?
대범하게 일단 시작했다는 말로 서두를 끊었으면 좋았겠지만 정말 많은 시간 동안 고민과 씨름했습니다. 작가를 할까, 창업을 할까 졸업 당시 고민으로 돌아와 있었어요. 결론적으로는 그때 당시엔 작가로 무명의 시간을 버틸 자신은 없었습니다. 나만의 작품을 한다는 의미 있는 일, 하지만 자유도가 높은 만큼 리스크가 컸기 때문이죠.
내 작업물을 나만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고, 막 사회에 내던져진 졸업생은 이미 시간에서 너무 자유도가 높아진 만큼 겁 없이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통제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당장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원하던 일과는 무관한 일들을 전전하면서 창업을 마음 한편 뒀었습니다.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요. 아직은 좀 어렵겠다 머뭇거리며 마음을 한동안 접기도 했습니다. 해볼까? 했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된 계기는 동업자를 만나면서였는데요.
그것도 너무 뜬금없었던 것이 8년 다닌 회사의 퇴사를 앞둔 남자친구를 만나면서였고, 근데 하필 또 디자인과 출신인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의 색과 개성을 좋아해 주며, 연인인 동시에 가장 가까운 팬이 되어주었어요.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겁이 나 저지르지 못하고 있을 때, 든든하게 시동을 걸어주었습니다. 혼자 저지르는 것보다 함께 나아갈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많은 힘을 얻었어요. 창작은 고단하고 지치는 일이기도 해서, 응원해 주는 사람 한 명의 존재가 정말 컸고 소중했습니다.
창작으로 창업하기
졸업 작품일 뿐이었던 서사를 브랜드로 시작하기 전엔
내가 사랑하는 일을 미워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고민도 컸어요. 보여주기 전엔 '아무도 찾지 않지 않을까?, 그냥 잊힐까?'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시작을 망설이게 된 건 여전히 내 작업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업으로 삼기에 겁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다 보면 더 막막해지고, 조촐한 시작을 부끄러워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도전해보고 싶은 열망이 컸기에 용기를 내 한 단계씩 천천히 건너가며, 계단 하나하나씩 밟고 있습니다.
완전한 준비가 된 때라는 건 절대 오지 않더라고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생각이 들어도 우선 서두를 떼며 쌓아온 서사의 이야기들이 어느새 9개월.
자사몰을 만드는 것부터, 물건을 제작하고, 펀딩,
각종 팝업과 플리마켓, 그리고 전시.
29cm 입점, 역으로 입점 제안을 받기도 하고,
성수동에서 팝업 기획을 주최,
‘1유로 프로젝트’라는 지역활성화 플랫폼에
합류하게 되면서 오프라인 공간도 새롭게 생겼습니다!
펜을 들지 않으면 이야기는 쓰이지 않듯,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작은 기회들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으며 뭐라도 해보겠다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서사’를 써내려 오다 보니 제법 이야기가 수북이 쌓였어요. 지난 성장의 9개월의 시간에 대한 회고와 더불어 앞으로의 서사, 그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보려고 해요.
졸업작품을 시작으로도 얼마든지 브랜드로, 혹은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앞으로도 보여주고 싶어요.
여전히 시작이 두렵고 고민이 많은 분들에게 '서사'의 여정이 용기가 되길 바라며,
지금까지의 성장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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