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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 Dec 04. 2022

시골에 놀러 온 서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도시에 살며 내가 잊은 마음에 대하여


”아니 왜 우리 집 코앞에다가 꼭 차를 대는 거야? 신경 쓰이게. “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오니 집 앞에 차가 여러 대다.


나의 본가는 인구 10만이 조금 넘는 바다를 낀 소도시이다. 어촌 시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부모님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그중에서도 나름 시내라 할 수 있는 곳에 살다가, 아예 바닷가의 단층 주택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그 단층 주택 앞에는 낚시하기 좋은 방파제가 있는데, 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이 차를 우리 집 길목에 대곤 했다. 그뿐인가, 그들이 머물고 간 방파제는 깨끗한 날이 없었다.

오랜만에 본가에 와서 쉬려 하는데, 밤까지 낚시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일렁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취사를 하며 돌아가지도 않는 게 싫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상경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던 나는 나의 고향이 ‘서울 사람들을 놀고먹고 쉬게 해주는 공간’으로 소비되는 것이 솔직히 언짢았다.

내 고향은 여기에요,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각종 해산물과 케이블카를 이야기하면서 “거기 놀러 갔다 왔는데” 로 시작되는 말을 했었다.

서울이 고향인 친구들은 들을 리가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내 고향에도 관광객이 아닌 사람이 살고, 관광업이 아닌 생업이 있다는 것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서울 사람들이 나의 고향을 관광지로서 좋네 나쁘네, 라며 평가하는 이야기가 피곤했다. 때로는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빠져서 ‘시골 민심이 더 무섭다’라는 결론이 나기도 했는데, 대책 없는 악평을 쏟아내는 대도시의 평론가 앞에서 한 마디 쏘아붙일라치면

”네가 촌에서 올라와서 모르나 본데. “ 와 같은 상처 입는 말을 들을까 입을 꾹 닫고 그 말들이 지나가길 바랐다.


이 마음은 본가에 가면 더욱 증폭되었는데, 연휴를 맞아 놀러 온 사람들로 도로가 북적일 때는 짜증이 솟았고, 가급적이면 관광객이 오지 않는 음식점에 가고자 했다.

그런 와중에 집 앞에 아무렇게나 대어져 있는 차들을 보면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내가 본가에 내려가 빨래를 널기 위해 마당에 있을 때,

한 낚시꾼은 나에게 “커피믹스를 타 먹으려고 했는데,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혹시 커피믹스 없냐.”라고 묻기도 했다. 혼자였던 나는 화가 나면서도 무서워서 “저희는 커피믹스 안 먹어서요.” 하고 집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그는 그게 시골 사람에게 먹힐만한 넉살이라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공포였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차가 대어져 있는 것에 대해 화를 내면, 부모님은 “그러게 차를 댔네. 우리는 안쪽에 대야겠네.”라고 말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어머니는 방파제에 나가 쓰레기를 주웠고, 나중에는 아예 방파제의 초입에 꽃을 심었다. “이렇게 깨끗하고 예쁘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쓰레기를 도로 가져갈 걸? “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관광객이 많아 도로가 꽉 막히는 날에 내가 투덜거리면 “그래도 관광객이 많이 오는 게 안 오는 것보단 낫지”라고 아빠는 이야기했다.

우리 집이 관광 오는 사람들로 득이라도 보면 몰라. 순진한 부모님의 태도가 답답했다.


만원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꽉 붙잡고, 남들이 스멀스멀 침범해오는 자리를 두 다리로 꼿꼿이 세워 지켜야 하는 도시의 삶.

여기서 나는 믿는 것보다는 믿지 않는 것이 나를 지켜줌을 빨리 깨달았다. 어디를 가도 사람이 많고, 나만큼 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는 도시 괴담. 만만해 보이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나는 경계를 세우고 항상 초조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 초조한 마음은 본가에 내려가서도 이어진 것 같다. 왜 더 경계하지 않을까. 저 불청객에게 화를 내고 쫓아버리지 않을까. 저 사람들이 더럽히고 간 자리에 왜 꽃을 심는 것일까.


지금 돌아보니 그것은 여유다. 놀러 온 사람들에 관심도, 악심도 주지 않는 것은 여여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더 많은 사람에게 쉼을 선물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는 그런 자연을 끼고 사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이다. 찾아온 사람을 맞이하고, 떠나는 사람에게는 손을 흔들어주는 마음을 “뒤치다꺼리”라고 생각하던 나를 반성한다. 이제는 도시인이 다 되어버린 내가 일치감치 잃어버린 그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 나의 몫을 단단히 지키지 못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날을 세우고 살아온 것을, 세련된 삶의 태도라고 착각하고 살아온 게 아닌지. 조금 서글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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