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
우리 부부의 금기어는 다음과 같다.
1. “~할 걸”
“이거 살 걸, 저걸 선택할 걸, 여기엔 오지 말걸, 미리 준비할 걸”
속상한 상황에서 저 말을 하면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 있는 건 인정한다.
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내 탓이든, 네 탓이든 하긴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막상 저 말을 뱉고 나면 현실은 바뀌는 게 하나도 없고, 공기만 한층 더 무거워지곤 했다.
“~ 할 걸”이라는 말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같이 하는 결정들을 실수로 바라보지 않고 경험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바보 같은 물건을 사고서는, “이거 사지 말걸. 이 돈으로 차라리 다른 걸 살걸.” 하게 되면 그 결정을 내릴 때 누가 어떤 무게를 가지고 이 결정을 내렸는지를 원망하게 된다.
반면, “여기는 앞으론 여기 오지말자! 이 물건은 소용이 없네, 당근 해버리자!” 하고 껄껄 웃으면서 넘어가는 것은, 앞으로 남은 긴 시간 동안 우리 부부가 어떤 곳에 가고 무엇을 할 지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게 되는 것 같다.
둘째,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해”
“알아서 한다.”는 말은 우리 부부가 하나의 팀으로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우리가 각자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하더라도, 남편의 일이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내 일이 남편의 일이 될 수 있기에. 대신 우리는 “이렇게 처리할게.”라는 말을 하기로 했다. 책임의 분산이라면 분산일까. 각자의 결정에 대해 서로의 뒷배가 되어주는 약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가 원하는 대로 처리하게 내버려 두고 싶은 것들은 “알아서 해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한다.)
셋째, 멋지다, 세련되다.
이 말은 사실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런데 이 말을 쓰면서 느끼는 마음이 문제였다.
누군가를 ”멋지다. “라고 칭할 때 나는 비현실감을 느꼈다. 결코 닿을 수 없는 것들을 동경하는 기분이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세상에 멋진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은 맘에 갑갑해졌다.
한편, 남편은 “세련되다.”라는 말이 듣기 싫다고 했다. 세련된 것들은 왜인지 비슷한 모습으로 남보기 좋은 것들을 칭하는 것 같다면서, 본인에게 “세련되다”와 관련된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이든 우리 자신이든, 멋지거나 세련되다는 표현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두루뭉술하게 멋있다고 하기보다는, ”그 친구가 꾸준하게 그 일을 해오는 모습이 좋더라. “, ”그 사람의 집에 있는 그 소품이 이국적이어서 눈길이 가더라. “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남편과 쇼핑을 갈 때, 그가 고른 옷이 ”세련되어서 “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당신에게 어울려서 “라고 말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이전에는 막연히 질투가 나기도 했던 타인의 장점들이, “닮고 싶은 구체적인 장점”으로 치환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은 남 보기에 좋은 물건보다는 본인의 마음에 쏙 드는 물건들로 살림을 하나씩 바꾸어 가고 있다.
금기어를 만들어 가는 건 평생 나눌 대화들을 조금씩 다듬어 나가는 과정인 걸까, 다른 모습의 부부들은 어떤 말을 금기어로 정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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