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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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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씨 Apr 10. 2023

그가 미운줄 알았는데, 내가 미운 거였다

거울인 줄 알고 배우자를 탓했다

이 글은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을 보고 썼습니다.


어쩌면 이혼이라는 것은 다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나와 배우자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결혼하기로 했던 이유를 계속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애쓰죠. 그러다 내 고통에 눈이 멀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오해하고 결혼 생활만 없애면 원래의 나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래의 당신은 더 이상 없습니다.

없어진 지 꽤 되었죠. 배우자의 잘못은 아닙니다. 원래 그렇게 될 운명이었죠. 알아서 흐르는 시간을 막을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어요? 이 싸움에서 이길 방법도 없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당신은 절대 다시 젊어질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위태로웠던 이유는 그저 알고 보면 매 순간이 행복했다는 것과, 지금이 가장 젊은 순간이라는 걸 잊었기 때문이죠. 이 순간, 이 순간도..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중에서-

일요일 오전 또는 낮.

평일에 일하고 얼마 남지 않은 주말, 하고 싶은 일들이 쌓여있는 상황. 특히 새로운 회사로 옮기고 나서 휴가를 쓸 수 없었기도 하고, 적응에 진이 빠지고 있었기에 주중에는 녹초가 되어 있다. 그러니 생활에 필요한 일은 모두 주말에 처리해야 해서 마음이 바쁘다.

그런데 배달음식은 싫다. 집밥을 먹고 싶다. 아내의 도리(?) 로서 적어도 주말 한끼 정도는 요리를 해야할 것 같다. 뭘 할지 고민을 한다. 닭구이 덮밥. 이걸 해보자. 그런데 하필이면 조금 어렵다. 이리저리 따라 해보는데 영 이상하다.


불 앞에서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하고 오븐을 열었는데 속이 안 익었다. 꺼내서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다시 굽는다. 탄다. 아.

시계를 자꾸 보게 된다. 나가서 운동도 하고 싶은데 벌써 땀이 한가득이다. 조금씩 화가 나서 프라이팬을 쾅, 서랍장을 쿵 하고 닫는다.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주방으로 오면, 뭐라고 답할 길이 없다. 나도 왜 내가 화가 났는지 모르니까. 주말에 할 일은 쌓였는데 집밥을 먹고 싶다고 욕심내서 요리를 시작했더니 맘대로 안 풀려서 진이 빠진다,라고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하기에 이미 나는 분통이 터진다. “아니, 주말이라고 꼭 내가 요리를 담당해야 해 나도 주말엔 쉬고 싶다고!” 생각지도 않은 말이 이미 머리를 거치지 않고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정작 그는 밥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이게 바로 우리의 부부싸움의 공식이라는 것을 최근 깨달았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세운 기준이 있다.

2. 그 기준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3. 그 간극을 겪는 순간에 남편이 보인다.

4. 남편에게 불똥을 튀긴다.


결혼하며 거울을 보는 시간은 반으로 줄었고, 대신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나 스스로 절망감이나 우울함, 무기력을 느끼고 있을 때

그의 얼굴이 보이니, 무언가 본말이 전도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즉, 왜인지 내 우울함과 무기력의 원인이 바로 나와 머리를 맞대고 자는 저 사람 때문인 것 같다는 이상한 논리가 성립이 되는 것이다.


특히, 나이 듦과 관련해서 이 현상은 두드러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할 수 있는 것보다는 없어지는 게 많다.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아직 나는 어색하고 어렵다.


당장 30대에 들어서며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새치염색을 시작했고, 이마에 패인 주름은 보톡스를 맞아도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나이에 못하는 것은 키즈모델뿐이야!”라며 친구들과 결의를 다지며 웃기도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내 삶의 가지 않은 길이자 가지 못하는 길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혼란을 배우자와 함께 성숙하게 겪어내면 참 좋을 테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곁에 있다는 이유로, 배우자를 “내 찬란한 시절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사람만 없으면”, “그와 이혼한다면” 내 삶은 다시 멋져질 텐데,라는 유혹적인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을 성숙하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배우자를 탓하게 되어 결국 헤어지더라도, 내 삶이 다시 자동으로 반짝거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겠다. 삶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빛이 바래가는 것이고, 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보석 같은 삶과 조금 다르더라도 배우자와 함께 빛바랜 멋으로 살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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