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실직
남편이 실직했다.
IT기업들의 인력축소의 여파가 남편의 회사에까지 미친것이다. 연봉이 적지 않은 사람부터 권고사직의대상이 되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냐고.
남편은 버틸 수도 있고, 사직 권고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인사 업무를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선 오히려 버텨보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버티는 매 순간마다 그의 마음에 상처가 생길 것을 아니까.
그는 그냥 사직권고를 받아들이고 이직을 준비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당분간 나는 경제적으로는 우리 집의 가장이 되었다.
그의 부탁으로 시부모님에게는 말하지 않았고, 당연히 나의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 부모님에게 사위는 항상 듬직한 그 모습으로 남겨두고 싶으니까.
그리고 주변에는 더더욱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닥친 어려움이 단 한 줌이라도 타인에게 위안거리가 되거나 가십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결혼 후 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한 이런 일을 어떻게 현명하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심지어 ”남편이 실직하면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나요? “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회사에서 식사를 하는데, 직장 동료가 나에게 “OO님은 유복하신 거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유복.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행복의 향기가 멀리 갈 때 불행의 냄새는 꼭꼭 숨어 있구나.
남편의 실직을 마주하고 울적하기도 하고 또 혼란스러운 나에게서 타인은 행복의 향기를 맡았구나.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불행은 밀폐용기에 꼭꼭 숨겨놓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꽝 닫고 산댜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는 향긋한 향초를 들여놓고서 말이다.
나 빼고 모두 행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이 생각을 한다. 그냥 불행의 냄새는 모두가 숨기고 있는 거라고. 내가 지금 그러하듯이 말이다. 불행의 냄새는 없는 게 아니라, 꼭꼭 숨겨져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