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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 Apr 18. 2022

IT업계=개발자=고연봉

일에 이름표를 붙인다는 것

IT업계에서 종사하는 남자 친구와의 결혼을 알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였다.

“IT에서 일한다고? 그럼 개발자야? 돈 많이 벌겠네!’


IT업계 = 개발자 = 고연봉의 공식이었다.


아쉽게도(?) 나의 배우자는 개발자가 아닌 product manager이다. “네카라쿠배당토*”와 같은 핫한 SW 업체에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그걸 정정하는 것도 난감했기에(일단 그의 직업에 대해서는 1분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과연 그의 직업을 정말로 궁금해하는 사람인가? 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대충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은 ‘개발자 모셔가기 경쟁’, ‘인력난에 치솟는 IT업계 연봉’과 같이 자극적으로 쓰인다. 이러한 헤드라인은 우리에게 편리한 생각 공식을 건네준다. IT=개발자=고연봉”의 공식을 적용시키는 말 습관이자 생각 습관이다.

이렇게 남의 일에 붙여진 이름표는 많다.


“공무원이면 철밥통이라 좋겠어요”

“나도 예체능이나 할걸, 대학 쉽게 갈 수 있을 텐데”

“국책은행 다니면 신의 직장이겠네요?”

“집에서 애만 보면 되니까 부러워요.”

“유투버 하면서 인생 편하게 살잖아.”

“기자로 일하면 접대 많이 받잖아요.”


반대의 경우도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 벌이가 들쭉날쭉해서 어떡해?”

“몸 쓰는 일 하는 사람하고 어떻게 결혼했나요?”

“멀쩡한 직장 그만두고 그걸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네요”


참 편리한 이름 표지만, 어딘가 서글프다.


저 이름표를 달아버리는 순간 그 사람이 일을 하는 생활의 모습, 일에서 느끼는 열정과 고충,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끼리에서도 천차만별로 다른 처우, 일하지 않고 있을 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게 어려워진다.


소위 좋은 이름표를 단 사람들은, 일의 고됨이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꾹꾹 입을 닫게 된다. 초라한 이름표를 단 사람들은 스스로 일에 매우 만족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이름표를 붙이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마땅히 행복해야 하고, 누구라도 마땅히 불행해야만 한다. 이름표 붙이기가 만연한 세상에서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확대 해석일까?


물론 잘 모르기에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모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겠는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일의 세계엔 평균의 함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점만 한번 떠올려 봐도 섣불리 이름표를 붙이지 않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의 일에 대해 오만하고 섣부르게 판단했었던 나였는데, 그들이 어렵게 꺼낸 일의 고충과 일의 행복을 들으며 <일의 의외성>에 놀란 적도 여러 번 있었다(이름표를 떼어내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이름표 없이 일과 직업을 바라보게 되면, 내가 몰랐던 일의 모양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타인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남자 친구 (현 남편)과 만나면서, 문과 중의 문과인 나는 IT업계에 SW 회사도 있지만 SI회사도 있고, <개발자>로 뭉뚱그릴 수 없는 여러 가지 직무가 있다는 것 (프런트엔드, 백엔드, QA 엔지니어, 프로덕트 오너/매니저, UX/UI 디자이너 등…)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가 몸담고 있는 업종은 사람과 시간을 갈아서 쌓아 올리게 된다는 것, 기존의 스킬이 한순간에 낡아질 수 있어 부담감이 큰 직무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러다가 전혀 모르는 업계의 사람과 결혼도 하게 됐으니. <잘 나가는 고연봉의 개발자>라는 관점을 가지고 관계를 시작했으면 연애도, 결혼도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름표를 붙이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다.


*네카라쿠배당토: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당근마켓, 토스를 묶어 부르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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