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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재 Nov 15. 2021

분선

분선씨, 짱!

14살.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 맏딸로 태어나 배불리 쌀밥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다. 그런 게 소원이라니 차라리 부자로 만들어 달라 하지. 그럼 쌀 밥은 물리도록 먹을 텐데 말이다. 아직 어리긴 한가보다. 아! 결혼을 했으니 어리다고 말할 수 없는 건가.


내 나이 29살.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철이 안 들었어.’, ‘설거지하는 거 보니 시집가도 되겠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봐야 어른이라 할 수 있지.’ 진정한 어른의 조건을 이야기해준 주변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14살 여자아이는 결혼을 했으니 당신들과 같은 어른인 셈이다.


어른 아이는 불행히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입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시집을 갔다. 아니,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자신의 의지와 동의 없이 남편 얼굴도 모른 채 붙들려 갔기에. 그렇게 시어머니에게 키움을 당하고, 16살 남편과의 첫 합방으로 임신을 당했다. 그리고 임신은 어른 아이의 속도 모르고 반복됐다. 가지고 또 가지고, 일곱 번째의 임신 소식에는 높은 곳만 보면 굴렀다.


‘제발 좀 떨어져라. 떨어져라. 나도 좀 살자, 아기야.’

36살. 마지막 여덟 번째를 낳고 꺼질 기미 없던 배는 남편의 죽음으로 긴 휴식을 가졌다.


시집가고 첫 친정 방문에 들떠 무릎까지 쌓인 눈길을 쉬지 않고 걸어 안긴 엄마의 품은 따뜻했다. 빨간 볼의 한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그 품을 떠날 생각에 금세 울적해진다. 하지만 엄마 치마폭에 울던 어른 아이는 이제 없다. 8남매를 굶겨 죽이지 않기 위해서 이 여린 마음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가슴을 여러 차례 때리고서 단단해졌다.


“엄마는 어릴 때 우리에게 너무 매정했어”, “매일 일만 시키고 우리 엄마만큼 독한 사람 못봤어”


가슴을 너무 오래동안 세차게 때려서 그런지 그녀의 단단해진 마음은 자녀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사랑한다는 흔한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아픈 부모 모시는 건 집안 전체가 힘들어요. 그냥 요양병원 보내요.”

“어머니가 순한 성격도 아니고, 고집이 세서 고모만 힘들 거예요."

“성질 고약한 노인네라서 신경안정제 맞아야 해요.”


어른 아이의 이름은 ‘전분선’. 나의 외할머니다.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져 왼쪽 팔다리를 움직이 못한다. 더이상 혼자 걸을 수 없게 된 사실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마저 놓아버렸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요구대로 재활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입원시키지 않았다. 예전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미리 지어논 아래채에 엄마는 병원에서 쓰는 침대와 플라스틱 변기, 기저귀 30박스를 들여놓았다.


퇴원 후 외할머니의 굳어진 팔다리와 치매 증상은 호전되기는 커녕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없으니 몸은 점점 굳어져 더이상 플라스틱 변기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 즈음에 한 두 시간씩 예전의 외할머니 모습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이때 엄마는 외할머니 정신이 멀게졌다고 한다. 정신이 멀게졌다고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눈’이다. 누군가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았나. 똘망 똘망 한 눈을 뜨고 온갖 이야기를 엄마와 나에게 들려준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런 몸으로 신세를 끼쳐서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고생이 많다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과거 얘기도 종종 하는데 위 얘기도 외할머니와 나눈 대화의 한 부분이다.


외할머니의 과거 이야기는 과거에서만 존재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선 있을 수도 아니,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아동학대, 성차별, 가정 내 성폭력…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주제는 자극적이라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소재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할머니는 본인이 겪은 일이지만 자신의 인생이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흔히 어른들이 얘기하는 ‘예전엔 다 그랬어.”라고 하면 그런 거다. 난 분노를 가라앉히고 반짝이는 은빛 흰머리를 쓸어 넘겼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외할머니와 순댕

“우리 할미, 고생 많았네. 그래서 머리가 다 샌나 보다. 자식들 덕 좀 봐야 할 텐데.. 그 많은 자식들 가까이 있으면서 자주 찾아오지도 않네.”


다른 가족들은 엄마가 외할머니를 모시는 것에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나는 저렇게 되면 안 되는데, 자식한테 빌붙어 사는 건 아니지.’라며 외할머니를 골칫덩어리로 전락시키거나, 아예 외면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긴 대화 끝에 외할머니의 마지막 말에 가슴이 저민다.

“그래도 나는 복이 참 많다. 8명 자식 중에 나보다 먼저 간 자식도 없고, 장애인도 없고, 결혼 안 한 자식도 없다.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다른 할미들 이야기 들어보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 많다. 참말로 나는 복도 많지.”


엄마는 차라리 외할머니가 정신을 아예 놔버리면 좋겠다고 한다. 그땐 무슨 그런 심한 말을 하냐며 엄마를 노려보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고집, 투정보다 아직까지 자식밖에 모르는 외할머니의 마음이 진심이라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다른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외할머니를 끝까지 모시기로 했다. 그 결정에 아빠와 나, 동생 모두 동의했고 짐을 나눠지기로 했다. 그 모습이 다른 가족들은 못마땅하고 우리의 행동이 오히려 본인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느끼더라도. 멀건 정신의 외할머니와 한 시간 이상 대화해 보지 못한 가족들은 느낄 수조차 없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고달픈 어른 아이는 지독히 가난하게 태어나 단 한 번도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책임 또한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했기에 그리고 그게 부당한지  인생이 불쌍한지조차 모른다. 이제서야 멀건 정신은 하루에 불과  시간도  되지만 하고 싶은 말과 행동, 먹고 싶은 음식, 좋고 싫음을 눈치  보고 마음껏 표현한다. 어른 아이는 나이 90살이 돼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하고 싶은  다하면서 우리 곁에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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