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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재 Nov 15. 2021

은하수를 그릴 수밖에

별 하나하나 수놓느라 조금 늦을 수 있어요. 그러니 기다려주세요.


책 제목이기도 한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악의 없이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책의 이야기처럼 많은 아무개 들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에게 상처를 받고 있다. 그들은 선량한 얼굴의 탈을 쓰고 있어 대뜸 화를 냈다간 되려 가해자 취급을 받을 수 있다.


다들 웃으면서 넘기는 이야기들 중에도 자꾸만 방지턱에 걸리는 단어, 문장들이 있다. 특히나 직장 상사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경우 곤욕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두터운 편견들이 쌓이고 쌓여 좁혀지지 않는 이해관계가 존재할 때 숨이 턱 막힌다. 


‘당신 말이 틀렸어요. 타인의 인생을 당신 잣대로 판단하지 마세요. 이해되지 않으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겪어본 게 아니잖아요. 겪어본들 당신의 틀에 맞추지 마요. 세상에 똑같은 아픔은 없으니까요.’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들락날락하지만 쓴 커피 한 모금에 삼킨다. 억지로 삼켜서 그런지 그날은 자기 전까지도 체한 듯 속이 갑갑해 쉬이 잠들지 못한다.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된 계기는 여러 날이 흘렀음에도 좀처럼 삼켜지지 않은 문장이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애들은 꼭 문제를 일으켜. 청소년 쉼터에 오는 애들은 다 범죄자에다가 절대 고쳐지지 않아.”


최대한 순화해서 쓰긴 했지만 글로 다시 보니 편견과 일반화의 오류로 가득 차있다. 이혼가정, 가정폭력에 처한 아이들,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에 속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잖이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다. 나 또한 정상가족 범주에 속하지 않아 이런 편견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다. 


이혼가정을 선택하지 않았다. 가정폭력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놓인 현실이었고 그 현실은 노력으로 바꿀 수도 없는데 다들 꾸짖는다. 올바른 어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해서 삐뚤어졌고 속내를 알면 부담스러워 떠나버릴까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일관한 것뿐이다. 지금 모습이 이렇다고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어둡게 칠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마치 그들이 그려놓은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겠다.


모든 사람에게는 공평한 ‘시간’이 존재한다. 


공평한 ‘시간’은 소중한 보물을 그녀의 손에서 빼앗는 대신, 그 상처도 서서히 치유해 주는 것이다. 격렬한 삶의 환희를 꿈처럼 아스라이 지워버리는 동시에 지금의 환희에 따르는 생생한 고통을 덜어 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


시간은 소중한 걸 빼앗는 대신 많은 상처들을 서서히 치유해 주길 믿고 있다. 그러니 치유까지의 시간이 길어지지 않게 아무것도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이미 그들이 그려놓은 검은 도화지에 조금 아니 많이 느리더라도 어떻게 하면 밤하늘의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로 새겨놓을지 조금이 나마다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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