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결혼식은 모르겠고, 집부터 지으려고요."
말 끝나기 무섭게 우릴 걱정한답시고 인생의 조언을 둔갑한 날선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결혼식을 안 올리면 부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동 거지.”
“그래도 남들 다하는데 기본적인 건 해야지”
“부모님들은 이해 못 하실 텐데 어쩌려고?”
“여자의 로망은 웨딩드레스 입는 건데 후회 안 하겠어? 지금 한창 이쁠 때 입어봐야지 나이 들어서 입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결혼식 못 올린 거 두고두고 후회할걸 ”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네. 아파트 하나 사서 시세차익 남길 생각을 해야지.”
“주택은 나중에 애들 다 키우고 나이 들어서 살아도 된다.”
“아기 학교는 어떻게 보내려고.. 학생 수가 적어서 나중에 경쟁 사회에서 뒤처진다."
“사람일 어떻게 될 줄 모르는데 신혼 때 집을 지으면 어쩌노”
그간 들어왔던 질문들을 나열한다면 한 페이지 거뜬히 써나갈 수 있지만 간신히 다독였던 마음이 쓰기만 해도 불안하고 외롭게 느껴져 여기까지만 쓰겠다.
나는 느려도 괜찮으니 잘 가다가도 일부러 시골길에 들러 창밖 풍경을 감상하거나, 운 좋게 마음에 드는 골목이라도 발견하면 그 길에 내려걸어보고 싶다. 하지만 걱정이 지나친 주변 사람들은 ‘바보같이 거길 왜 들어서고 그래. 깨끗하고 잘 닦아놓은 길로 빨리 도착해야지’라고 혀를 차며 원치도 않는 나에게 곧게 뻗은 지루한 고속도로로 밀어 넣으려 한다.
위 질문들에 짧게 답변하자면(답변보다는 반박이 맞을 수도) 이 길을 걷기로 결정한 건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중국집 배달도 안 되는 시골 단독주택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직접 경험하고 있어 나에게 아파트라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다. 또한 부모님은 우리에게 주택 생활의 선배이자, 부부생활의 롤 모델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응원해 주는 길이면 도전해 볼 만하다. 남자 친구 부모님은 길지 않은 설득의 시간이 있었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남기시고 우리의 뜻을 존중해주었다.
결혼식은 왜 안 하냐는 질문의 답을 하자면 경험상 결혼식의 레퍼토리는 거의 비슷하고 웨딩플래너의 지시 아래 모든 게 결정된다. 절대 틀리고 나쁘다는 건 아니다. 요즘같이 바쁜 현대사회에서 비용만 투자하면 수많은 선택지들을 추려내고 결정을 도와줄 파트너가 있다는 건 매우 효율적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가전제품도 커스터마이징이 되는 요즘 시대에 웨딩업체의 플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과 결코 변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축의금 문화이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 따라 간 결혼식장과 요 근래 친구의 결혼식장은 비슷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신부들의 미소는 힘겨워 보였고, 안내판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자칫 생판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문 옆에는 돈 봉투와 식권이 오가기 바쁘고, 식장에 들어서면 발 디딜 틈이 없어 어렵사리 신랑,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식이 끝나기도 전에 절반의 하객들이 바삐 식당으로 이동한다. 마지막 남은 가족들은 식사도 하지 못하고 결혼식장 관계자와 마무리 정산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대략 두 시간의 본질이 아리송해진 결혼식은 끝이 난다.
앞서 어른들이 열심히 뿌려놓은 경조사비를 다시 돌려받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가 돼버린 씁쓸한 우리나의 결혼식 문화를 난 따르고 싶지 않다. 수백, 수천만 원이라는 돈이 오고 가는 자리인데 초라하게 보일 순 없으니 그럴듯한 장면을 애써 연출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신랑 신부의 ‘축하’만을 위한 식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천천히 생각 중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가볍지 않게 산책하듯 우리만의 결혼식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가치관은 어떤지, 가족이란 서로 어떤 의미로 생각하는지, 같이 살게 되면 서로에게 나눌 수 있는 자원(물적, 정서적)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주제가 심도 있어진다. 다수가 하는 걸 하지 않으면 주변인들은 그 모습을 가만히 놔두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겐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만의 이유를 찾기 위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생에 있어 결혼식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연인과 앞으로 같은 길을 걷는다는 건 서로의 존재를 잃지 않고 적절히 섞여 지내는 것. 완전히 섞여서 전혀 다른 색을 만들라는 건 아니다. 무지개처럼 각각의 색은 선명히 빛나고 있고, 색이 맞닿은 경계는 서로의 자리를 양보하면서 온화하게 옅어지며,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그런 연인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인생의 궤도에서 우린 여러 선택의 갈래에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나다운, 우리 다운’ 선택할 것이다.
불안함으로 인해 길을 잃어버리지는 말자.
전제가 진실하다면 결론에도 거짓이 없어야만 한다.
미래여, 보란 듯이 타당한 현실이 되기를.
시간의 모서리, 김민준
정상 경로를 벗어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