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집 구하기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에서 잠시 쉬다가 대만에서 생활을 했다. 영어는 이제 누구나 하는 세계 공용어이니 좀 더 경쟁력 있게 중국어를 배워보라는 아빠의 권유로 중국어 어학연수를 가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향한다. 중국어를 배우러 ‘대만’에 가게 된 이유는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들끼리도 처음 만나자마자 하는 질문이다. 장담하건대, 대만에 살아본 한국인이라면 “왜 중국 말고 대만으로 오셨어요?” 라는 질문을 한 번 이상은 꼭 들어봤을 것이다. 희한하게도 서로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내가 대만으로 간 이유는 아빠의 친한 대만 국적의 지인이 중국보다 안전하고 깨끗한 대만을 추천하였고, 모 대학교에 교수로 재직 중이신 나의 삼촌과 숙모 또한 아주 오래전에 대만에서 공부하시고 학위를 받으셨기 때문에 대만에 대해 잘 알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숙모의 대만인 조카가 나의 전반적인 대만 생활과 집 구하기를 도와주었다. 아직도 감사한 일이다. 조카 이름은 지아치인데 지아치와 지아치의 남자 친구가 날 도와주지 않았다면 내 생활은 많이 복잡하고 멘붕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대만은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약 2시간-2시간 반 정도 떨어 저 있는 섬 나라이다.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지만 중국 대륙의 언어와 다른 점은 중국은 간체자를 쓰고 대만은 번체자를 쓴 다는 점이다. 날씨는 여름이 굉장히 길어서 3월부터 나시를 입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기온이 웃돌고 8월은 정말 덥다.
겨울은 눈이 올 정도로 춥진 않지만 비가 많이 내리고 습도가 높아 스산함을 많이 느낀다.
대만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미국에 크레이그리스트가 있다면 대만에는 591이 있다. 엄청난 양의 매물들이 있고 활발하게 렌트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매물을 확인한 후 집주인과 직접 연락하기 때문에 중개수수료가 없다. 하지만 대만인들의 영어실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나의 중국어 실력이 저조하다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을 찾고 주소를 보내주면 지아치랑 캐나다 유학시절 친했던 대만인 친구 메이가 해당 주소 주변 환경을 살펴봐주었다. 괜찮다 싶으면 지아치랑 시간 약속을 잡고 현장답사를 가곤 했다. 대여섯개 매물을 본 뒤 나는 그동안 살아보고 싶었던 복층 집을 1년 렌트를 했다.
보증금은 두 달치 렌트를 요구했고 전기와 수도세는 내가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사실 살집을 알아보러 다닌다는 것은 굉장히 스트레스받고 신경 써야 할 것이 여간 많다. 특히 나는 거주환경을 중요시 생각해서 아무데서나 대충 살고 싶지 않아 더 시간이 걸렸고 현장에 갔는데 맘에 안 들면 정말 기운이 빠젔었다. 이때 아무데나 타협해서 대충 살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절대 그러지 말길 바란다. 최소 1 년에서 길게는 몇 년을 살 수도 있는 집인데 처음에 만족하는 곳을 가야 생활이 순탄해진다
내 기준에 부합하는 집은
1) 교통이 편리해야 하고 (역에서 10분 내외 위치)
2) 주거환경이 안전하고 엘리베이터 있는 빌딩
3) 깨끗하고 벌레 없고 마트 가까운 곳
4) 주방,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이 있는 집이어야 했다
다행히도 내가 살았던 집은
1) 타이베이 최고 번화가 시먼에 위치하여 역에서 집까지 도보로 10분이 채 되지 않았고
2) 경비아저씨가 늘 상주하셔서 출입인을 확인하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10층에 위치했고
3) 깨끗하고 벌레가 없었고 까르푸도 도보로 갈만한 거리에 있었으며 길 건너에 세븐일레븐과 내가 사는 건물 1층엔 줄 서서 먹는 유명 훠궈 집이 있어 편리했다
4) 위에 언급한 모든 것이 풀세팅이 되어있었다.
’주방이 있는 집’ 이라는 말에 대해 주방이 옵션일 수가 있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대만은 주방이 집의 옵션이다. 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이 집에서 요리하는것 보다 밖에서 사 먹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렌트하는 아파트에 주방이 없으면 렌트 값이 매우 저렴해지고 주방이 있으면 렌트 값이 자연스레 비싸진다
살고 싶은 구역에 가면 이렇게 생긴 부동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혹은 노랑색 배경의 Century21 도 자주 볼 수 있다. 수수료가 월세 한 달치 정도로 든다고 하기도 하던데 아무래도 직접 집주인과 컨택하는 것보다 편하게 구할 수도 있겠다. 나는 공인중개사를 이용하진 않았지만 때론 외국인 임차인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부동산을 이용하더라도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외국에서 하는 집 계약이니 부동산 중개인에게 휩쓸리지 말고 손해 보는 부분은 없는지 사기를 당하는 것은 없는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더블체크하길 바란다.
대만에 사는 한국인들이 이용하는 카페 ‘포모사’에 보면 간혹 계약기간을 다 못 채우고 나가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몇 달 방을 비우는 이유로 단기 렌트를 내놓는 경우가 있다. 대만에 입국하자마자 선뜻 6개월 혹은 1 년 계약이 걱정이라면 이런 단기 렌트를 좋은가격에 구해서 살아보면서 현지에서 직접 발품을 파는 방법도 좋은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인에게 현지 정보도 얻을 수 있지만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돈을 선뜻 송금하여 낭패 보는 일은 없도록 하자
Easy come, easy go.
외국에서 집을 구한다는 건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특히 대만에서는 미국에서처럼 각 아파트마다 리징오피스가 있어서 직원이 날 앉히고 자세히 설명 해 주지도 않는다. 현지에 날 도와줄만한 지인이 없다면 더 고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하는 보금자리를 찾고 나면 뿌듯하고 벌써 대만 생활에 한걸음 더 나아간 거 같아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진다.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타이베이에서 집을 구할 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내가 집을 구할 때 집 인테리어가 너무 예뻐서 당장 계약하고 싶은 아파트가 있었다. 지아치에게 그 집 주소를 보내주니 ‘林森北路’ 지역이라 네가 안 살았으면 좋겠다, 위험하다 라고 알려줬다. ‘린싼베이루’ 지역은 술집과 가라오케가 많아 여자가 살기 위험한 지역이니 꼭 피하길 바란다.
대만에 도착한 첫 몇주동안
그 더운 날 나와 집을 보러 가 주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서로의 구글 번역기로 얕은 대화를 나누고, 계약하는 날 계약서도 꼼꼼히 봐주고, 생필품 사러 까르푸에 가서 그 많은 짐들을 같이 택시에 옮기고, 택시비까지 미리 내놓은 지아치와 지아치 남자 친구. 그리고 내가 대만에 돌아가기 전 날 우리 셋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준 너무너무 고마운 친구들.
내가 감사한 마음에 산 몇번의 밥과 한국 화장품 선물은 그 큰 고마움을 모두 갚긴 한참 부족했던 것 같다. 내가 받은 배려를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도 배풀고 싶어젔다.
주위에 좋은 친구들 덕분에 순조롭게 대만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 지금도 늘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