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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썬 Nov 30. 2022

회사에서 만난 최고의 빌런

또라이 총량 보존의 법칙

최근 정지음 작가의 <언러키 스타트업>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이름조차 요상한 스타트업인 국제마인드뷰티컨텐츠그룹의 박국제라는 가장 큰 빌런이자 사장 아래 함께 일하고 있는 수진, 지구, 다정 그리고 혜은의 웃픈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장 빌런 박국제, 후배 빌런 임보정. 진짜 말도 안 될 만큼 이상한 고집을 부리고 괴논리로 주인공인 다정을 끊임없이 괴롭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읽으면서도 정말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맘 편히 웃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비슷한 빌런을 만나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라이 총량 보존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어디를 가던 이상한 사람이 최소 한 명은 있다는 것이다. 회사를 행복하게 혹은 불행하게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 때문에 힘이 날수도, 화가 날 수도 있는 것이 회사라고 생각이 든다.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어느 순간 해결이 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나와 안 맞는 사람은 끝까지 나와 맞지 않고 또라이는 영원히 또라이다. 쟤가 나가냐 내가 나가냐의 싸움에서 지는 것은 내가 될 가능성이 큰 어쩌면 끝이 정해져 있는 고독한 싸움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확신을 가진 데에는 짧은 사회생활에서 만난 빌런 of 빌런 때문이다.

올해 8월, 신생 팀장을 주축으로 생겨난 신생 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총 6명의 팀원 중 팀장과 팀원 1명은 이전 팀에서 같이 일해왔던 사람이었고, 나머지 2명은 동기였다. 고로, 나에게 새로운 사람은 나보다 한 기수 아래 공채인 신입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팀에서든 막내였던 나는 후배가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맡고 있는 잡무를 나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몰랐다, 그와의 만남은 고난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일단 너무나도 부산스러웠다.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그는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자리를 비우곤 했다. 게다가 동작도 굉장히 커서 그가 자리에서 일어설 때마다 나의 집중력은 와장창 무너졌다. 그것보다 신경 쓰였던 것은 하루에도 여러 번 20분 이상씩 자리를 비우는 그의 불성실함이었다. 이전 팀에서의 전적을 들어보니 집이 가까운 그는 집에 있는 고양이를 돌본다는 핑계로 하루에 여러 번 집을 왔다 갔다 한 것을 들켰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내 동기들이 회사를 나가 집 쪽으로 걸어가는 그를 목격했고, 우리는 결국 팀장님에게 이 사태에 대해 전해 그의 자리비움은 조금 잦아들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내게 스트레스를 가져온 것은 일머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요청했던 일에 대해 데드라인을 지킨 적이 거의 없었다. 일을 요청하고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다시 물어보면 그제야 어떤 프로세스로 일을 진행하면 되는지 묻곤 했었다. 처음에는 여러 번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해주고, 그가 실제로 이해했는지 나에게 역으로 설명해보라고 하는 등 그를 실무에 투입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그의 태도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그에게 간 업무가 시간만 지나서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상황을 여러 번 마주했다. 더 힘들었던 점은, 그는 이러한 일에 대해 전혀 미안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별명만 늘어놓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진행을 하다가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있거나 장애물에 부딪힐 때, 그는 스스로 그 해결책에 대해 모색하지 않고 바로 나에게 이 상황을 메신저로 던졌다. 마치 나에게 이 상황을 보고 하면 내가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는 걸 아는 듯이. 일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쓸데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일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이 그의 주 업무 중 하나였다. 이러한 사건이 여러 번 반복되고 그의 일까지 대신 처리해준 상황을 여러 번 마주치다 보니 나는 지쳐버렸다.


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여러 회사의 상황들 때문에 결국 내가 퇴준생을 꿈꾸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어딜 가던 나와 안 맞는 사람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고 그때마다 다른 사람을 탓하면서 회사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러 사람과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일에만 쏟아도 부족할 나의 시간과 감정을 사람에게 쏟고 싶지 않아서. 나의 일에만 최대한 집중하고 싶어서. 오늘도 퇴사를 준비하는 1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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