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영화』(여원사, 1959). 근대서지학회 오영식 회장 소장본. ⓒ 한상언영화연구소.
"『다시 보고 싶은 영화』(여원사, 1959)는 애초에 '작품으로 본 세계영화사'로 기획된 것이었다. 나로서는 영화 관련 첫 저작이기도 했다. 당시 잡지 <여원>사 기자로 재직 중이던 아내 엄경은과 서울대 문리대 선배였던 여원사 당시 주간이 출간 제안을 해왔다. 관객들에게 감명을 준 영화들을 모아 글로나마 회고해볼 수 있는 책자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원래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책의 제목은 '회상의 명화'였다. 그러나 학교 선배였던 여원사 주간의 제안으로 결국 제목은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정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참고 자료의 부족이었다. 영화 초창기 무성영화 시대 주요 작품들부터 차례대로 다루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는 수 없이 토키(talkie) 이후 시기 영화들 가운데 국내에 소개되었던 81편의 작품들을 골라 직접 줄거리와 작품 해설을 정리했다. '비디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영화를 구해다 다시 돌려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몇 년 동안 영화 잡지 일을 하면서 스크랩 해둔 다양한 기사와 자료들이 있었지만, 작품 줄거리와 정보를 수록한 '프로그램'들이 주된 참고 대상이었다. 그때 영화관에서는 포스터와 스틸컷, 배우 프로필 사진, 줄거리와 영화 정보를 담은 프로그램을 판매했다. 그걸 꽤 모아뒀다. 하지만 영화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들이라도 국내에 개봉되지 않았거나 구체적인 줄거리를 알기 어려운 영화들은 제외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영화로는 나운규의 <아리랑>(1926) 하나쯤은 꼭 포함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작품의 필름도, 프로그램도, 관련 자료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영화를 다루기란 여의치 않았다. 심지어 책에서는 다루었으나 참고 자료에 의존해 미처 직접 보지 못한 영화들도 몇몇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부끄럽고, 무척 아쉽다. 그러나 이 책은 영화잡지 기자로 출발하여 본격적인 '저술가'로 나서게 된 첫 발걸음이었다.
그리하여 1959년 8월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여원교양신서' 시리즈 중 네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시 조선일보 1면에 광고를 크게 실었고, 재판을 찍어 3000부, 많게는 6000부까지 나갔다. 아무래도 이 책의 인기에는 무엇보다도 영화 팬들의 호기심과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데에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 대한극장, 세기극장 같은 영화관들이 새로 생겨났고, 연간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100편을 넘어가면서 영화 인구가 늘어났다. 그렇지만 스크린 위에서 한 번 상영된 영화는 다시 볼 수 없지 않았나. 작품의 줄거리와 정보를 정리해놓은 것만으로도 영화를 다시 복기해볼 수 있었던, 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을 것이다.
내 필명 '만(晩)'이 탄생한 것도 이 책을 통해서였다. 서울고 재학 시절 교내 신문 <경희보>와 교지 <경희> 시절부터 줄곧 내 필명은 본명인 '노만길'에서 마지막 글자 '길'을 뺀 '노만' 또는 '로만'이었다. 본명의 '일만 만(萬)'자를 써오다가 '늦을 만(晩)'을 필명으로 바꾸었다. '늦을 만(晩)'자가 좀 더 분위기 있고 인상에 남을 것이라는 아내의 권유에서였다. 그 이후로 줄곧 '노만(魯晩)'으로 활동했다. 나중에 한양대, 중앙대를 비롯한 대학 영화학과 강사로 출강할 때에도 같은 이름으로 활동했다. 뭔가 절묘하게 됐다."
노만과 함께 잡지 <영화예술> 창간에 참여했던 영화평론가 최백산은 당시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서평을 남겼다.
"오늘날 우리들의 정서생활을 돕는 것 가운데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것은 오로지 받아들여지는 방법에 있어서 번거로움이 없다시피 되어있는 데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발산하는 내용에 더 많은 요소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영화를 보아왔고 그 가운데서 얻은 아름다움을 머리 속에 간직하지 못한 것을 섭섭하게 여겨오던 중 이번에 여원사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라는 책자를 얻어 머릿속에서만 아롱거리던 지난날의 명화들을 다시 더듬을 수 있게 되었음은 크게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토키 초기의 명화 <파리의 지붕 밑>, <모로코> 등을 비롯해 근래 명작들인 <종착역>, <공포의 보수> 등 주옥같은 명작 81편을 줄거리와 함께 해설까지 덧붙여 놓은 것은 독자 즉 관객들인 우리들에게는 고마운 친절심이었다."(한국일보 1959.9.27. 4면 기사)
노만의 [다시 보고 싶은 영화](1959)의 출간 당시 신문광고(좌) '여원교양신서' 시리즈 후속작으로 출간된 김석야의 [다시 듣고 싶은 방송극](1960)의 신문광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