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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연 Sep 12. 2024

『다시 보고 싶은 영화』와 필명 '만(晩)'

영화사가 노만 59

『다시 보고 싶은 영화』(여원사, 1959). 근대서지학회 오영식 회장 소장본. ⓒ 한상언영화연구소.


"『다시 보고 싶은 영화』(여원사, 1959)는 애초에 '작품으로 본 세계영화사'로 기획된 것이었다. 나로서는 영화 관련 첫 저작이기도 했다. 당시 잡지 <여원>사 기자로 재직 이던 아내 엄경은과 서울대 문리대 선배였던 여원사 당시 주간이 출간 제안을 해왔다. 관객들에게 감명을 영화들을 모아 글로나마 회고해볼 있는 책자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원래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책의 제목은 '회상의 명화'였다. 그러나 학교 선배였던 여원사 주간의 제안으로 결국 제목은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정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참고 자료의 부족이었다. 영화 초창기 무성영화 시대 주요 작품들부터 차례대로 다루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는 수 없이 토키(talkie) 이후 시기 영화들 가운데 국내에 소개되었던 81편의 작품들을 골라 직접 줄거리와 작품 해설을 정리했다. '비디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영화를 구해다 다시 돌려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몇 년 동안 영화 잡지 일을 하면서 스크랩 해둔 다양한 기사와 자료들이 있었지만, 작품 줄거리와 정보를 수록한 '프로그램'들이 주된 참고 대상이었다. 그때 영화관에서는 포스터와 스틸컷, 배우 프로필 사진, 줄거리와 영화 정보를 담은 프로그램을 판매했다. 그걸 꽤 모아뒀다. 하지만 영화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들이라도 국내에 개봉되지 않았거나 구체적인 줄거리를 알기 어려운 영화들은 제외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영화로는 나운규의 <아리랑>(1926) 하나쯤은 꼭 포함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작품의 필름도, 프로그램도, 관련 자료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영화를 다루기란 여의치 않았다. 심지어 책에서는 다루었으나 참고 자료에 의존해 미처 직접 보지 못한 영화들도 몇몇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부끄럽고, 무척 아쉽다. 그러나 이 책은 영화잡지 기자로 출발하여 본격적인 '저술가'로 나서게 된 첫 발걸음이었다.

그리하여 1959년 8월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여원교양신서' 시리즈 중 네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시 조선일보 1면에 광고를 크게 실었고, 재판을 찍어 3000부, 많게는 6000부까지 나갔다. 아무래도 이 책의 인기에는 무엇보다도 영화 팬들의 호기심과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데에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 대한극장, 세기극장 같은 영화관들이 새로 생겨났고, 연간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100편을 넘어가면서 영화 인구가 늘어났다. 그렇지만 스크린 위에서 한 번 상영된 영화는 다시 볼 수 없지 않았나. 작품의 줄거리와 정보를 정리해놓은 것만으로도 영화를 다시 복기해볼 수 있었던, 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을 것이다.

내 필명 '만(晩)'이 탄생한 것도 이 책을 통해서였다. 서울고 재학 시절 교내 신문 <경희보>와 교지 <경희> 시절부터 줄곧 내 필명은 본명인 '노만길'에서 마지막 글자 '길'을 뺀 '노만' 또는 '로만'이었다. 본명의 '일만 만(萬)'자를 써오다가 '늦을 만(晩)'을 필명으로 바꾸었다. '늦을 만(晩)'자가 좀 더 분위기 있고 인상에 남을 것이라는 아내의 권유에서였다. 그 이후로 줄곧 '노만(魯晩)'으로 활동했다. 나중에 한양대, 중앙대를 비롯한 대학 영화학과 강사로 출강할 때에도 같은 이름으로 활동했다. 뭔가 절묘하게 됐다."


노만과 함께 잡지 <영화예술> 창간에 참여했던 영화평론가 최백산은 당시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서평을 남겼다.


"오늘날 우리들의 정서생활을 돕는 것 가운데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것은 오로지 받아들여지는 방법에 있어서 번거로움이 없다시피 되어있는 데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발산하는 내용에 더 많은 요소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영화를 보아왔고 그 가운데서 얻은 아름다움을 머리 속에 간직하지 못한 것을 섭섭하게 여겨오던 중 이번에 여원사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라는 책자를 얻어 머릿속에서만 아롱거리던 지난날의 명화들을 다시 더듬을 수 있게 되었음은 크게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토키 초기의 명화 <파리의 지붕 밑>, <모로코> 등을 비롯해 근래 명작들인 <종착역>, <공포의 보수> 등 주옥같은 명작 81편을 줄거리와 함께 해설까지 덧붙여 놓은 것은 독자 즉 관객들인 우리들에게는 고마운 친절심이었다."(한국일보 1959.9.27. 4면 기사)

노만의 [다시 보고 싶은 영화](1959)의 출간 당시 신문광고(좌) '여원교양신서' 시리즈 후속작으로 출간된 김석야의 [다시 듣고 싶은 방송극](1960)의 신문광고(우)



[다시 보고싶은 영화]에서 다룬 영화 리스트


1. 그리이드 (탐욕) Greed / 에리히 슈펜하임 / 1924 / 미국

2. 앗샤가의 미로 (어셔가의 몰락)

3. 제7천국

4. 판도라의 상자

5. 모록코(모로코)

6. 상선 테나시티

7. 외인부대

8. 파리제(파리는 날마다 축제)

9. 미완성교향곡

10. 여자만의 도시

11. 최후의 망루

12. 금남의 집

13. 거성 지이그휄드

14. 무도회의 수첩

15. 망향

16. 그대는 살아있다

17. 우리들의 낙원

18. 부륵휠드의 종

19. 인생의 황혼

20.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1. 애정

22. 레벡카 (레베카) / 알프레드 히치콕 / 1939

23. 현대의 여신

24. 애수 (워털루 브릿지)

25. 나의 길을 가련다

26. 인생유전

27. 비련

28. 헨리 5세

29. 카네기 홀

30. 밀회

31. 전원교향악

32. 천국에의 계단 (천국으로 가는 계단 / 사랑과 죽음의 문제)

33. 하므렛 (햄릿)

34. 진주

35. 심야의 탈주

36. 제니의 초상

37. 정부 마농 (마농 레스코)

38. 자전차도적 (자전거도둑)

39. 올리버 트위스트

40. 귀향

41. 분홍신

42. 챰피온 (챔피언)

43. 검객 시라노

44. 제3의 사나이

45. 싱고아라

46. 올프에

47. 파리의 아메리카인

48. 젊은이의 양지

49. 유리의 성

50. 내일이면 늦으리

51. 썬셋대로 (선셋대로)

52. 판도라

53. 지상최대의 쑈오 (지상 최대의 쇼)

54. 아일랜드의 연풍 (말 없는 사나이)

55. 사랑하는 시바여 돌아오라

56. 흑수선 (검은 수선화) / 마이클 파웰, 에머릭 프레스버거 / 1948

57. 애인 쥴리엣

58. 여수

59. 아프리카의 여왕

60. 황혼

61. 쎄일즈맨의 죽음 (세일즈맨의 죽음)

62. 종착역 / 비토리오 데 시카 /

63. 공포의 보수 / 앙리 조르주 클루조 / 프랑스

64. 밤마다 미녀

65. 금지된 장난 / 르네 클레망 / 프랑스

66. 호프만의 전기 (호프만 이야기)

67. 무랑.루쥬 (물랑루즈)

68. 지상에서 영원으로

69. 로마의 휴일 / 윌리엄 와일러 / 1954

70. 셴 (셰인)

71. 워타.후론트 (워터 프론트)

72. 갈과(과?)

73. 맨발의 백작부인

74. 나포리의 향연

75. 에덴의 동쪽 / 엘리어 카잔 / 1957

76. 나의 청춘 마리안느

77. 악의 결산

78. 여정 (썸머타임) / Summertime / 데이비드 린

79. 목노주점 (목로주점)


[다시 보고싶은 영화](여원사, 1959)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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