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과 ‘추상’ 그 경계 어딘가.
'캠벨'과 '매화'로 창조한 변증법적 아우라
-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창조된 변증법적 아우라, 작가 김준식 (Kim Junsik)
- ‘캠벨= 팝아트’, ‘매화=동양화’라는 방식으로 예술을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나.
- '경험'과 '실패', '배움'의 결과가 나의 작품으로 고스란히 연결돼.
- 시간, 색, 빛, 조형, 구상 등 많은 측면들이 탐구적 시간 속에서 태어나.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미학적 문맥과 관습적 사고를 마구 흔들어 놓는 작가.
세밀하고, 치열한 시간 속에서 조형적 완성도와 문화적 융합 그리고, 위트를 창조해내는 괴물같은 작가. 김준식.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대만 실천대학에서 산업디자인학과 석사과정에 있는 그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타이완과 일본, 그리고 중국을 미국 본토까지 진출했다. 최근, 예술적 취향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베이징 798 예술구’ 갤러리(Common Art Center)에서 쟁쟁한 중국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아트 타이페이(Art Taipei 2023)]에 이어, 더 넒은 시장인 [아트 마이애미 (Art Miami 2023)]까지 뻗어나갔다. 개인전과 아트페어만 진출하면 완판시켜버리는 작가. 그림으로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이야기하는 작가 ‘김준식’을 만났다.
1.축하한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아트 타이페이 2023’과 ‘아트 마이애미 2023’ 두 곳에 진출하고 완판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기분이 어떤가?
매번 꾸준히 그리지만, 관객과 시장이 '알아봐 줌'에 감사한다. 이런 좋은 에너지를 단지 만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작품에 좀 더 집중하고, 예술적 단계를 높이는데 써야하는 것도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품이 솔드아웃되는 것은 여러면에서 기쁘다. 그림을 그리면 다 팔리니, 창고 비용이 별도로 발생하지 않고, 나는 작업에 더 몰두할 수 있다. 간혹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예술품은 세상에서 빛이 나길 기도한다.
2. 당신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특유의 색이 있을 거 같다... 혹은 자신이 선호하는 색이나?
최근에 ‘분홍색’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 색에 끌린다. ‘캠벨’ 시리즈의 배경을 주로 분홍으로 쓴다. 액자 역시 하나의 그림으로 보기 때문에 같은 색을 고집한다. 노란색도 좋아한다. 단지, 색을 사용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색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로 접근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색은 매번 바뀐다.
3. 뮤지션, 아티스트를 인터뷰하다보면, 위대한 아티스트는 그 결과물도 훌륭했지만, 각자가 예술을 업(業)으로 대하는 자세가 남달랐던 것 같다. 당신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나 심미적 결과물을 일궈가는 과정이 있다면 알려달라.
나에게 그림은 행위적인 측면에서 ‘연구’라고 생각한다. 시간, 색, 빛, 조형, 구상 등 많은 측면들이 실험적 시간 속에서 태어난다. 나는 직장인들처럼 일상적으로 그림 그리고, 작품도 일상적으로 대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 8시반부터 저녁 6시반은 온전히 그림을 그린다. 어쩌면 이런 일상적인 순간들이 예술적 순간들을 촘촘하게 만들어 준다.
4. 작품을 만들 때, 사물 혹은 이야기를 구상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사물에 대한 접근법도 남다를 거 같은데, 알려달라. 특히, 당신의 그림 속에는 심슨, 키티, 마블의 캐릭터들 뿐만 아니라, 고전과 현재를 넘나드는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어릴 때 어떤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
우선 책을 많이 본다. 사회현상에도 촉이 무뎌지지 않게 계속 관심을 갖는다. 최근에는 팝송 가사를 유심히 본다. 왜 이 가사는 한국말과 영어가 섞여서 전달되는지, 그 문맥은 시장과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등을 생각해 보고, 작업할 때 예술적 동기가 되는 부분들은 최대한 활용한다. 어린 시절에는 만화와 힙합음악,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문화들을 많이 흡수하고 즐겼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팝 음악, 문화적 현상, 영화, 심지어 나이키 운동화 같이 일상적인 것들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5. 당신에게는 ‘캠벨’과 ‘매화’라는 두 개의 심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 두 시리즈의 그림은 다른 접근법과 작법으로 탄생할 것 같다. 캠벨 시리즈 같은 경우는 ‘팝아트’에 대한 비판, 조소 심지어 유쾌함도 있다. 매화 역시 마찬가지고. 사견을 더하자면, 김준식 작가의 그림은 구조적이면서 정반합(正反合)적인 사고가 요구되는데, 당신이 말하는 그림의 구조적인 해석이 궁금하다.
맞다. ‘캠벨’은 ‘팝 아트’에 대한 조소, 비판에서 출발한다. 서양은 이미 1960-70년대 이후에 미술사로 자리잡은 하나의 장르인데, 동양에서는 이를 뒤늦게 받아들여 동양 미술사와의 연결고리 없이 차용한다. 나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한 번 더 찌그러트리고 싶었다. 때문에 내 캠벨 시리즈의 모든 깡통은 찌그러트려져있다.
‘매화’는 동양화에 대한 찬사다. 어찌보면 전통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도 묻어나있다. 여기에, 동양화 작법과 소재에 대해 오랜 시간동안 연구와 실험을 거치면서, 나만의 노하우를 축적했다. 우리는 한지에 먹으로 데생을 한다고 해서 동양화라 칭하지 않고, 캔버스에 검은 수채물감으로 난을 친다고 해서 서양화라 하지 않는다. 간혹 재료가 형식을 대변할 수 있지만, ‘전부’라고 할수는 없다. 나는 재료와 그림 작법에서 ‘역’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고민했다.
물론 이런 비판과 자율성이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내 작품의 핵심이 되는 요소와 나름에 해결 방법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나는 역사적 관점의 문화적 아이콘들, 시각적 가치, 그리고 미학적 완성도에 위트 한 방울을 얹혀 나만의 노하우를 축적했다.
한지 같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캠벨 시리즈, 캔버스 같은 한지에 그려진 매화 시리즈 이 위에 얹혀진 웃음의 조각들. 이게 내 작품의 마무리이자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6. 재질에 대한 탐구가 현재의 결과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있을텐데.
꽤 오랜 시간 동안 틈만 나면 화방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다 깔아놓고, 실험했다. 경험과 실패 그리고, 배움의 결과다.
7.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팝아트', '하이퍼 리얼리즘', '동양화', 초현실주의', 고전, 현대 등을 한 화면에 충돌없이 표현하는 작가라고 하지만, 당신의 예술적 문법과 결과물의 맥락을 놓고 본다면, 앞에서 언급한 표현에 '비(非)/반(反)' 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어야 정확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융합의 아티스트, 변증법적 아티스트
8. 최근에 '아트 마이애미 2023'에 출품된 매화 시리즈 [After the show]와 완성과 동시에 솔드아웃된 [캠벨-페라리]와 [캠벨-나폴레옹 2달러] 시리즈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이번 [아트 마이애미 2023]에 출품한 작품[After the show]는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은 것이었다. 매화 가지 위에 도라에몽, 키티, 심슨, 미키마우스 등이 달러 주머니를 들고 나란히 서 있고, 허공에는 수 많은 달러들이 축제같이 허공에 날아다닌다. 만약 이 4명의 캐릭터가 실제 세계를 살았다면, 훨씬 더 화려한 애프터 파티를 즐기지 않았을까? 캐릭터들이 쇼가 끝난 후의 모습을 형상화 해보았다.
‘페라리’는 21세기 남자들의 로망이자, 물질주의의 정점에 있는 최고의 아이콘이다. 개인적으로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 작품인데, 캔 자체를 찌그려트렸다기 보다 의도적으로 모양을 만들어 낸 희귀한 작품이다. 단순하면서 힘이 있는 작품이라 회화지만, 구성면에서 심플함도 함께 표현하고 싶었다. 이런 그림의 스토리와 딱 맞는 주인을 찾아갔다. 자본주의를 아이콘화할 수 있을 때 정점에 있는 것들 중 하나다.
‘나폴레옹’ 2달러 시리즈는 캠벨 2달러 시리즈 연작 중 하나다. 예전에는 2달러에는 관우, 미키마우스를 그렸다. 원래 미국 제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모델인 2달러는 행운을 상징하는 돈이자, 자본주의의 대표성을 띈다. 하지만, 내 작품에서는 유명하기만 하다면 누가 화폐의 모델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을 모델로 해보았다.
9. 여전히 당신의 그림은 많은 이야기 꺼리를 만들어 내고, 다시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로서의 당신의 비전이나 꿈이 궁금하다.
현재, 꿈을 소재로 한 신작을 준비 중이다. 이 또한 융합의 연장선에 있다. 단지 재료와 형식의 융합이 아닌 이번에는 '평면'과 '입체'의 융합이 될 것이다. 거대한 입체감이 평면과 입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작품인데, 소장용이라기 보다는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미술관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다. 틈틈이 책을 준비 중이다. 미술 그 중에서도 ‘소묘’에 관한 책이다. 결과물이 나왔을 때, 인터뷰 한번 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