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입덕기
과거 나에게 초콜릿을 좋아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 였다. 그래서 초콜릿으로 마음을 전하는 그런 마케팅 멘트에 공감을 하지 못했다. 초콜릿으로 어떤 마음을 전할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달달하기 때문에 그런 스위트함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함일 것이라 짐작만 했다.
입맛 또한 인간의 것인지 이토록 간사하다 느낀다. 초콜릿을 분명 좋아하지 않았다. 초코의 맛을 내는 것 또한. 초콜릿 케이크, 초코칩 쿠키, 초코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나에겐 초코란 어린이의 맛같이 느껴졌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초콜릿을 미친 듯이 먹는 어린이들의 이미지가 나에게 너무 크게 남았는지 초콜릿을 와구 먹고 씩 웃는 미소가 섬뜩했다고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면, 나는 분명 초코를 좋아하지 않았다.
초콜릿이 누군가에게 고백의 맛이고 추억의 맛이라면 나에게 초콜릿은 마치 연애의 맛이라 해야 될 것 같다. 초콜릿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전애인 덕분에 내 곁에는 조금씩 '초코맛 무언가'가 함께 있었다. 함께 먹을 디저트를 고를 때도 초코는 고정 옵션이었고, 가끔 나눠주는 초콜릿도 절대사수해서 먹는 초코 달다구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초콜릿을 안 좋아하기 어렵게 되었다. 나는 어느샌가 초콜릿의 맛을 내는 것들에게 곁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취향이라는 것을 일구는 건지, 발견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코에 대한 기호는 바닥부터 차분히 일군 것이었다. 그냥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해 보고 싶어서 시작한 맛이었다. 입에 대지도 않았던 것을 그와 함께 있는 동안 입에 대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는 나의 자의로 초코를 고르고 있었다. 노력하던 기호가 온전히 나의 기호가 되었고, 그저 달다고만 여겨 쳐다보지도 않았던 초콜릿의 세계는 아주 무한정했다. 거칠고 다크 한 씁쓸한 맛부터 달달하고 부드러운 밀크 초콜릿의 맛까지.
한 사람을 잘 알게 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한다. 그 사람의 부드러운 면부터 거친 면까지 다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포용하게 되는 것. 그 자체의 매력을 알고 끄덕여주는 것. 단지 기호식품으로 시작한 초콜릿의 맛은 이젠 이상하리만큼 나에게 매력적이다. 쓸 때도 써서 좋고, 달 때는 또 달아서 좋다. 그리고 가끔은 달콤 쌉싸름하기도 하다! 결국 전 애인도 그저 지나갔고 나에게는 초콜릿에 대한 기호만 남았다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이 든다. 세상에 알아서 좋은 게 있고 몰라서 좋은 게 있다면, 나에게 초콜릿에 대한 선호는 늘어나는 체지방만 제외하고는 알아서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