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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무으야우 Jul 02. 2024

나의 여름은 열기보다는 물기다

가장 기억나는 여름의 추억

나의 여름은 열기보다는 물기다

여름이라는 단어 앞에 나는 우선적으로 뜨거운 햇살을 떠올린다. 너무 뜨거운 나머지 눈앞에 모든 사물이 너울거리는 모습이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나온 뜨거운 알제리의 햇빛이 잠깐 나의 안구를 스치는 듯하다. 어느 짓도 불사하게 만들 정도의 더위는 역시나 여름은 열기가 군림했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따가운 뙤약볕과 어느새 같이 뜨거워진 아스팔트, 노릇하게 구워지는 듯한 피부와 같은 심상이 파편처럼 먼저 떠오르는 반면, 오히려 나에게 있어 강렬한 여름의 추억은 사실 비와 관련이 깊다.


어릴 적 나의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나의 양친은 어려서부터 나를 말 그대로 바깥에 두는 활동을 장려했다. 그중 가장 바깥도 자주 나가야 하고, 사교성을 요구한 (outgoing)한 활동은 스카우트 활동이었다. 아람단과 같이 어려서 다들 한 번씩 드는 단체 활동으로 청소년 군대를 모티브로 한 스카우트 활동에서 야외 활동은 필수다. 텐트 장비를 들고 가 비박을 하고, 밥도 밖에서 직접 해 먹어야 한다. 야외에서 다쳤을 때의 구급법과 위험을 감지하는 방법도 배운다. 어떻게 보면 실용적인 교육이었지만, 실제 위험을 감지해 본 적이 없는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마음속 깊이 와닿을 리 없는 교육이었다.


특별히 참여하지 않을 뾰족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 나는 어쩌다 보니 6년을 스카우트 활동을 했다. 그러던 2010년대 초반, 무더운 여름에 스카우트 단원들과 잼버리(Jamboree)에 참여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을 방문했다. 잼버리는 4년에 한 번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이 한 곳에 다 같이 모여 벌이는 합동 야영 대회이다. 6박 7일의 일정으로 야외에서 텐트를 설치하고 생활을 한다. 식량은 잼버리 중앙 본부에서 배식을 받았고, 간헐적인 5년간의 야영활동이 익숙해진 나에게 텐트에서의 삶은 낯설지 않았다. 단, 예상치 못한 것은 폭우였다.


원래 야영에서 맞을만한 빗물 정도는 괜찮다. 오히려 너무 더운 여름이라면, 일사병과 열사병의 위험이 있어서 살짝씩 오는 비는 열기를 식혀주기에, 반가운 쪽이다. 배식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빗물이 식판에 떨어져 국물이 조금 맹탕이 되고, 젖은 밥을 먹어야 하는 정도는 감수할 만한 불편이다. 


4일째 되던 밤이었을까. 고성 상공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이 분명했다. 비가 멈추질 않았다. 10대 인생 최대의 폭우였다. 사이렌이 울렸다. 심각한 폭우로 일동 대피를 해달라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당시 야영지에는 약 600명이 넘는 인원들이 동시에 한 장소를 빠져나가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함께 온 친구를 인파 속에서 잃어버렸다. 거대한 인파가 쏟아지는 장대비 아래에서 먼저 대피 버스를 타려고 북적일 뿐이었다. 겨우 탄 대절 버스에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넋이 나갔다. 인파에 쓸려 나는 혼자 버스에 타게 되었다. 동생은 잘 대피했을까. 친구들은? 우리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내 가방은? 내 소지품은?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이런 질문의 꼬리물기 끝에 나는 고성 체육관에 도착해 있었다. 여전히 비는 쏟아졌고, 밤은 너무나 깜깜했다.


엄청난 습도로 눅눅해진 체육관 나무 바닥에서 누웠다. 이곳에서 잘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과 일단 한밤을 보내야 했다. 기다리다 보니 다행히 친구도 같은 곳으로 왔고, 동생도 만날 수 있었다. 비가 머리 위로 쏟아지지 않는 실내에 들어왔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급박히 대피한 탓에 찾아온 어떤 공포심이 동시에 날 어지럽혔다. 

높은 강수량에 24시간 뒤쯤에야 다시 야영지로 돌아왔다. 지금은 추억이라 할 수 있겠지만, 비가 이토록 쏟아지는 날이면, 그날 밤을 떠올린다. 그 날은 이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존 본능만이 날 지배했다. 의지할 건 눈앞에 있는 대피용 버스뿐이었다. 그 날 이후 뉴스에서는 수재민의 대한 이야기, 빗물로 인한 사고, 불어나는 계곡 물에서 나오는 인명 피해 사건들을 보면 공허와 공포가 동시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단지 하룻밤의 텐트를 잃었고, 하룻밤의 안락함을 잃었을 뿐이다. 나의 사건은 중대한 여러 사건 사고에 비하면 매우 경미하다. 아주 얄팍한 공감대를 형성한 정도겠다.


지금도 지붕이 달린 집에, 빗물이 새지 않는 집에서 이 글을 쓴다. 폭우란 나의 삶에서 늘 일시적인 위협일 뿐이었다. 온몸이 다 젖어도 집에 들어가서 옷을 말리면 그만이었고, 한번 실내를 찾으면 나는 비로부터 안전했다. 그저 실내에서 창으로 바라보던, 감상의 대상이 되던 것이 공포가 되는 것. 나에게 단면의 현실을 알려준 건 여름의 햇빛이라기보다 여름의 빗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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