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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MEE Jun 05. 2021

우리집 맥가이버맨






   어느 집단에 한 사람쯤 꼭 있는 ‘맥가이버맨’, 기계를 잘 다루거나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고치는 사람을 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아빠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다. 전문 기술을 배운 건 아니지만 전기, 목공에도 재주가 있어 뭐든 잘 만들어내고 고장 난 기계는 고치거나 개조해서 쓰임새 좋게 만들어내곤 한다. 한가로운 주말이면, 베란다에서 아주 낡고 사소한 것들을 분해하여 납땜질하는 아빠 모습이 떠오른다. 잘 고쳐질 때면 휘파람을 불어대는 소리가, 무언가 잘 안 되고 있을 땐 ‘아이~씨’ 소리가 들리곤 했다. 반도체가 들어 있는 복잡한 기계나 대형 가전을 제외한 소형가전은 아빠의 손을 거쳐 고치고 다듬어져 자연히 오랜 시간 집 한 켠 어딘가에 자리하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 제지회사에 다녔던 아빠는 폐목재를 가지고 가구를 만들었다. 석 달에 걸쳐 틈날 때마다 작업을 했다. 그 간의 과정을 설명하시는 데 듣기만 해도 충분히 고된 일이구나 생각했었다. 아빠도 지난한 과정을 회상하시며 다시는 안 하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각목처럼 생긴 기다란 목재의 각진 끝부분을 샌드페이퍼로 다듬었다. 다듬어진 재료를 우물정(井) 모양으로 쌓아 올린 후 다듬기와 모양내기 작업을 반복하였다. 나뭇결이 살아나도록 칠을 했고, 테이블 안은 장식품을 진열할 수 있도록 빨간색 융단을 깔았다. 그 위에 유리를 올려 장식장 겸 테이블을 완성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유려한 가구가 만들어졌다. 

 

   작년 일이다가구를 만들지는 않았지만침대 크기를 줄인다며 오랜만에 아빠는 목공 작업을 재개했다. 언니와 내가 모두 출가한 이후부터 빈방은 온전한 아빠의 방이 되었다컴퓨터 책상옷걸이침대는 예전 그대로였으나 재작년에 매트리스만 새로 구입하였다. (하필 ‘라돈’이 검출되는 매트리스 사태가 한창일 때 회수해 갔다고 한다.) 원래 더블 침대였으나 슈퍼싱글 사이즈로 바꾼 탓에 프레임과 매트리스 사이 공간이 남게 되었다그것이 보기가 싫었던 아빠는 결국 날을 잡았다

 

   프레임과 헤드를 분리한 후 크기에 맞게 톱질하여 잘라내고 잘려진 헤드를 접착제로 다시 붙여 꼭 맞게 만들었다그리고는 자랑스럽게 가족 단톡방에 침대 사진을 올렸다처음에 영문을 모르는 나와 언니는 한마디도 대꾸를 안 했는데엄마가 연유를 설명해주셨다그냥 있는 대로 살지 힘들다면서 일을 만들어서 한다는 엄마의 힐난이 대부분이었으나 흠잡을 때 전혀 없는 가구 개조를 통해 우리 가족은 아빠의 손재주를 다시 한 번 인정했다아빠는 너무 힘들었다며 다시는 안 한다고 두 번째 손사래를 쳤다.

 

   나는 아빠의 자그마한 체형과 꼼꼼한 성격 그리고 손재주까지 닮으며 성장했다사실 자랄 때는 잘 몰랐는데남편의 말이 아빠를 쏙 빼닮았단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리 말하고 보니정말 그런 것 같았다. 결혼 3년 차에 난임 클리닉을 다니게 되면서 오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은 아이 기다­리는 데만 생각을 집중하지 않도록 다양한 관심거리를 준비해 주셨다그때부터 집안 살림살이가 눈에 들어왔다온통 하얀 벽에 MDF로 만들어진 싸구려 가구들이 건조하기 이를 때 없었다때마침 시댁 근처에 들어선 목공소에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기초과정부터 취미과정까지 다양한 목공 수업을 홍보하고 있었다난 그렇게 목공을 배우게 되었다.


‘테이블 만들기’를 주제로 한 5주 차 기초과정이었다. 이론과 설계공구 사용법을 시작으로 도면 그리기와

 조립샌딩과 오일 바르기로 마감하여 완성하는 과정이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나만의 테이블이 완성되기까지 정성을 쏟았다나에게 목공소는 생활가구를 만드는 꽤나 진지하고 생산적이며 건전한 취미활동 양성소였다내가 만든 미송 테이블은 식탁으로 쓰이며 온통 하얀 우리 집을 한층 따듯하게 만들어주었다자연스럽게 다음에 뭐 만들지?’하고 고개를 돌렸고 부엌 수납장 설계를 시작했다.



온기가 느껴지는 주방



   나무를 만지고 다듬으며 아빠는 어떤 기분이셨을까? 간격을 일정하게 맞추고 각을 잡아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빠도 희열을 느끼셨을까? 온몸은 피곤한데자신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보는 그 순간 행복하셨을까? 손때 묻은 가구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질수록 애정도 함께 깊어졌을까? 문득 아빠와 닮은 점을 생각하다 무언가 손수 만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셨을 아버지의 마음이 떠올라 따뜻해진다.­­­­ 이제서야 맥가이버맨 아빠의 취미생활에 진심으로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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