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하는 사람이 강의를 두려워할 때, 뜸들이기의 심리학
노트북 화면 속, 하얀 여백 위에서 검은색 커서만이 규칙적으로 깜빡인다. 마치 내게 “그래서 언제 시작할 건데?”라고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하다. ‘책 쓰기 무료 특강 구글 신청서 만들기’, ‘8주 정규 과정 신청서 만들기’, 그리고 ‘블로그에 모집 홍보 글 쓰기’.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하는 일도 아니다. 구글 폼을 열고 제목을 적고, 이름과 연락처를 묻는 항목을 추가하면 된다. 기계적으로 하면 10분, 아니 익숙해지면 5분 안에도 끝낼 수 있는 ‘기능적’인 작업들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한 시간째, 아니 어쩌면 며칠째 단순한 작업 앞에서 멈춰 서 있다. 책상 위를 괜히 물티슈로 닦아보고, 이미 다 아는 뉴스를 클릭해 보고, 목이 마르지도 않은데 물을 마시러 거실을 서성인다.
남들이 보면 영락없는 ‘게으름’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는 안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거대한 벽 앞에 선 사람이 느끼는 압도감, 일종의 마비 상태라는 것을. 강의를 업으로 삼고, 사람들에게 책을 쓰라고 가르치는 강사인 내가, 정작 내 강의를 알리는 신청서 하나를 만들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아이러니.
나는 오늘 지긋지긋한 ‘뜸 들이기’의 정체를 낱낱이 파헤쳐보려 한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마다 유독 ‘뜸’을 많이 들인다. 마치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듯, 일을 시작하기 전의 예열 시간이 본 작업 시간보다 길 때가 많다.
문제를 인식하는 건 괴롭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내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귀찮다’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기력함이다. 구글 폼을 열고 ‘질문 추가’ 버튼을 누르는 게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보다 힘들게 느껴진다.
이것은 ‘준비병’이다. 시작하기 전에 완벽한 상태를 만들고 싶다는 핑계로, 사실은 시작을 유예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타당한 명분을 찾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번아웃이 온 것 같은 이 기분, 이것이 바로 내가 직면한 ‘총체적 난국’의 실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고작 신청서 만드는 일을 이토록 두려워하는가? 겉으로는 ‘귀찮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면을 들추어보면 시커먼 불안 덩어리가 웅크리고 있다.
첫째, “과연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생계의 공포다.
신청서를 만든다는 행위는 곧 ‘시장’에 나를 던지는 일이다. 신청서를 오픈했는데 신청자가 한 명도 없다면? ‘0명’이라는 숫자가 내 생존 가치가 없음을 증명하는 성적표처럼 느껴질까 봐 두렵다. 1인 지식 기업가로서 홍보도 잘 못하고, 마케팅도 서툰 내가 과연 이 야생 같은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근원적인 불안감이 손가락을 마비시킨다.
둘째,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라는 자기 검열이다.
나는 책 쓰기를 가르친다. 수강생들에게는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저지르세요”, “실행이 답입니다”라고 목소리 높여 말한다. 그런데 정작 강사인 나는 홍보 글 하나를 쓰지 못해 벌벌 떤다. 괴리감이 나를 짓누른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전문가답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내가 뜸을 들이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내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것을 확인 사살당하고 싶지 않아서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인드셋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결과와 자존감을 분리해야 한다.
수강생이 적게 모일 수도 있다. 홍보가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마케팅 방법의 문제이거나,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신청서의 응답 숫자에 내 인생의 성패를 걸지 않기로 한다.
둘째, ‘최악의 버전’을 목표로 삼는다.
나는 지금 너무 잘하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매력적인 상세페이지, 완벽한 커리큘럼을 보여주려니 숨이 막히는 것이다.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완벽한 신청서’가 아니라 ‘오타만 없는 신청서’로. 헤밍웨이도 말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쓰레기 같은 초고에서 시작했다. 하물며 내가 뭐라고 처음부터 명작을 기대하는가.
셋째, 거대한 덩어리를 잘게 쪼갠다.
‘책 쓰기 과정 런칭’이라는 과업은 너무 거대해서 위협적이다. 이것을 뇌가 겁먹지 않게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야 한다.
이제 책상 앞에서의 망상을 멈추고, 구체적으로 움직일 차례다. 나는 무기력을 깨기 위해 다음과 같은 ‘행동 수칙’을 정했다.
첫째, 2분 규칙 : 지금 당장 ‘홍보 글 한 편’을 다 쓰려고 하지 않는다. 딱 2분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구글 드라이브 접속해서 ‘새 설문지’ 버튼 누르기.” “블로그 글쓰기 버튼 누르고, 제목에 ‘모집’이라고만 쓰기.” 이것만 한다.
일단 진입하면, 관성의 법칙 덕분에 굴러가게 되어 있다.
둘째, 5초의 법칙 : “아, 귀찮아”, “나중에 할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드는 순간, 뇌가 변명거리를 찾아내기 전에 카운트다운을 센다.
“5, 4, 3, 2, 1, 클릭!” 로켓이 발사되듯,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몸을 먼저 움직여버린다.
셋째, 환경의 강제 설정: 완벽한 문구를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막 쓴다. 그리고 ‘임시 저장’이나 ‘미리 보기’를 누른다.
모니터 화면에 결과물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순간, 수정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라도 일을 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내일 당장 수강생이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홍보에 서툰 내 모습이 한심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려움과 불안함을 없애고 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들을 데리고 그냥 가는 것임을.
뜸 들이는 시간은 내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 불안의 크기만 키울 뿐이다. 세상에 완벽한 준비란 없다. 완벽한 신청서도 없다. 오직 ‘발행된’ 신청서와 ‘발행되지 않은’ 신청서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쉬고 마우스에 손을 올린다. 여전히 손끝은 떨리고 마음은 무겁지만, [보내기]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작고 소심하게나마 앞으로 나아간다. 클릭 한 번이, 훗날 누군가의 책이 되고, 또 나의 내일이 될 것임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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