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밤 11:05 인천공항
이륙한다.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화장실에서 츄리닝을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집에서 입고 나온 청바지 그대로 비행기에 올라 탔다. 위탁수화물용이랑 기내수하물용, 이렇게 캐리어 두 개를 챙겼는데 공항에 오자마자 규정 무게를 맞추느라 다 열고 옷 빼고 난리~ 옷 갈아 입을 정신이 없었다.
두근. 항공사 핀에어의 널찍한 기내로 들어섰다.
자리를 찾아갔는데 내 자리 위의 짐칸은 이미 뚜껑이 닫혀있었다. 꽉 찼다는 뜻. 어쩔 수 없이 대각선 뒷쪽 칸에 서둘러 캐리어를 얹었다. 자꾸만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어마어마한 짐들을 꾹 눌러 담아 간신히 잠근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캐리어를, 10kg짜리 원판 두 개를 건 바벨 들 듯이 숨을 멈추고 번-쩍 들어올려야 했다. 겨울이라 그래도 짐이 무겁다. 입고 온 묵직한 코트와 울 목도리, 책이랑 다이어리 등 소지품들을 정리하고(옷은 뭐 그냥 끌어 앉고) 서둘러 착석.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2019년도 봄에 마지막 해외여행을 하고 4년 만에 처음 비행기를 탔다. 와, 최신식이다. 언제 기내식이 나오는지 표시되는 모니터는 처음 봤다. 물론 훨씬 옛날부터 있었을 수도 있음… 와 핀에어 승무원분들은 아름답다. 새하얀 피부, 금발, 모든게 창백해서 하얀 눈 같은 분위기... 긴 머리를 땋아 동그랗게 말아올린 분도 있고, 숏컷이 분도 있는데 다들 너무 아름답네. 이런 게 북유럽 무드인걸까.
인천에서 출발하는 이 비행기는 핀란드 헬싱키로 간다. 거기서 밀라노 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헬싱키에 경유하는 시간은 10시간. 밀라노에 도착하려면 비행기에서 17시간, 헬싱키에서 10시간을 보내야 한다. 직항이랑 비교하면 10시간이나 더 걸려서 취소하고 싶었지만 게으른 탓에 그냥 처음 산 티켓 그대로 이용하게 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문인지 항로가 특이했다. 일본 쪽으로 날아가 태평양과 북극해를 지난다. 미국 하늘을 날아 핀란드로 도착했다. 이 일기를 쓰는 지금은 북태평양 상공을 지나는 중. 운 좋게 날개 창가 자리에 앉은 덕에 핀에어의 심볼이 그려진 날개랑 하늘을 같이 찍을 수 있었다.
아까 자다가 잠시 눈을 떴는데 잠시 해가 떠 있었다. 하늘이 환한 낮이었다가 북극해로 갈수록 다시 깜깜해졌었다. 헐! 벌써 착륙 6분 전. 난 어디에서든 참 잠을 푹 잘 자는 편이다. 17시간 동안 기내식 먹을 때 빼곤 계속 잘 잔 것 같다. 책 읽은 시간도 한 시간이 안 넘은 듯하다.
유럽에서 사용 가능한 유심을 미리 사왔지. 아이폰에 유심 갈아끼우고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는 한국에서만 난다더니, 정말이군. 내가 북유럽에 왔다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새삼 신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