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프리즘> 오재형 감독 인터뷰

세상에 반드시 예술이 필요하다면 이 영화처럼

by 채소

이달 17일 개막하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시네마에 오재형 감독 영화 <피아노 프리즘>(2023)이 상영된다. <피아노 프리즘>은 4년 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초청작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한 예술가의 여정이 사회적 연대로 확장하는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다. 연출 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재형 감독이 어느 날 피아노 연주 제안을 받고 공연 준비를 이어가는 과정과 함께, 자신의 창작물과 결합한 피아노 연주 장면을 사이사이에 수놓았다.


역대 초청작인 이 영화가 올해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게 된 이유는 관객 프로그래머 덕분이다. <피아노 프리즘>은 ‘릴로어씨네클럽‘이 선정했고, 온라인 투표로 가장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은 13개 작품 중 하나로 꼽혔다.


영화 커뮤니티 릴로어씨네클럽(이하 릴로어)은 상영 전, 서울 광화문 어귀에서 오재형 감독을 만났다. 다시 한 번 관객의 선택을 받은 이 영화의 우수성을 밝혀적을 인터뷰 준비를 위해서였다. 영화제 초청과 정식 개봉 시기가 훌쩍 지난 이 시점에도 이 영화 같은 영화는 없다는 점에서, 반드시 감독의 근황을 전해야 한다는 판단도 있었다.


릴로어는 <피아노 프리즘>을 상영작으로 선정하면서 영화의 세 지점을 주목했다.


릴로어는 <피아노 프리즘>을 선정하면서 세 가지 지점에 주목했다. 첫째, 융합적인 표현 방식이다. 시청각적 미장센은 서사를 구축하기 위한 요소이기 전에 그 자체로 공감각적인 작품이며, 하나의 전시장이 된 영화 안에서 유영한다. 둘째, 진솔한 자아 탐구의 풍경이다. 감독은 예술가로서 자기 존재를 성실하게 들여다보고, 이미지와 연주의 결합을 즐긴다. 자유롭지만 때로는 정중하게 예술 앞에 선 예술가의 진지한 행위가 감동을 선사한다. 셋째,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인류애에 주목했다. 약자를 향한 애정과 관심을 품어온 감독의 관심은 영화의 또 하나의 축이다. 그 사랑은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과 영화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예술 잡상인’의 아름다운 사생활

릴로어 … <피아노 프리즘>은 감각적인 형식에서 오는 뭉클함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첫 장편영화를 만들다니.

오재형 감독 … ‘모든 아티스트의 1집 앨범은 평생 걸린 앨범이다’라는 말이 있다. <피아노 프리즘>도 그렇다. 한 20년 걸렸다고 해도 될 정도다. 미술학도 시절부터 나오니까 정말 나의 ‘옛날’부터 다 끄집어 와서 인생의 행로를 디자인해 봤다. 그래서 많은 것이 농축된 영화지. 자아를 집중 탐구하는 기간을 다 담았다. 일생에 한 번 만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든 것 같다.


릴로어 … 미대를 졸업하고 그림을 그려왔다. 피아노는 언제부터 치기 시작했나?

오재형 감독 … 집에 누나가 가끔 치던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날 피아노 소리가 좋더라. 물론 뭐든 다 재미있을 때다. 그리고 대학 합격하자마자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1년 반 정도 동네 피아노 학원을 열심히 다니다가, 군대 가서 피아노 반주자를 했다. 종교는 없었는데 피아노를 치려고.


릴로어 … 미술, 영화, 피아노까지 다양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재형 감독 … 그냥 취미였던 것들이 하나씩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대학생 때 치던 피아노나 애니메이션도 한 번 해보는 정도였고, 글쓰기도 조금씩 하다가 가끔 원고 청탁도 받고 책까지 내게 되고. 그림은 <파이노 프리즘>에서 은퇴 선언을 해서 이제 다시 완전한 취미 활동이 되었다.


릴로어 … 아직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는지?

오재형 감독 … 올해 다시 시작했다. 작년에 도쿄에서 모네 전시를 보는데, 확 다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드로잉을 한다. 미술을 전공하고 나서 실제로 8년 정도 그림을 안 그렸는데, 이제는 영화가 본업이 되어서인지 부담 없이 취미로 그림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걸 ‘은둔 미술’이라고 부른다.(웃음) 큰 생각 안 하고 그냥 즐겁게 한다. ’그리기’에 집중하자는 생각이다. 이걸로 나중에 또 무언가 해볼 수 있겠지.


릴로어 … 무언가 통달한 예술가처럼 보인다.

오재형 감독 … 어쩌면 더 진지하게 임한다. 그림도 추상적으로 변했다. 취미라고 해서 대강 그리자는 생각은 전혀 아니다.


소리와 빛을 엮은 <피아노 프리즘> 제작기

릴로어 … 처음 <피아노 프리즘>을 보는데 초기작이었던 단편영화 <덩어리> 장면이 나오더라. 예술가로서 창작한 모든 그림과 영화가 피아노 연주와 함께 등장한다. 이런 첫 장편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오재형 감독 … 한창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할 때 구상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계속 피아노 치는 모습을 기록했고, 편집할 만큼 소스가 쌓였을 때부터 장편영화로 구상했다. 피아노 연주를 기록한 이유는 왠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친다는 게 너무 신기했거든. ‘이게 말이 돼? 나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유튜브에 브이로그나 한번 해볼까’ 하는 요량으로 찍어둔 거다. 아카이빙은 습관이다. 어떤 식으로든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항상 기록한다. 그동안 내 영화 대부분이 <피아노 프리즘>과 비슷한 방식으로 탄생했다.


릴로어 … 그 기록의 역사가 궁금하다. 혹시 초등학생 때 일기 쓰기?

오재형 감독 … 그때는 잘 안 썼다. 대학 때부터다. 미학 책을 읽고 정리한 게 작업 노트로 이어졌고, 영화 쪽으로도 이어졌다. 어렸을 때는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를 하면 다 보여주고 발표하는 아이였다. 쑥스러움이 없었다. 피아노 치는 모습을 기록하고 보여주는 것도 나에게는 자연스럽다. 피아노를 핑계로 책도 냈다. 그랬더니 이제 이 영화를 기점으로 나에 대한 관심이 다 해소되었다. 제일 큰 영화제에서 불러주니까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좀 해소가 되는 기분이었다.


릴로어 …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작가로서 성취감이 충만했을 것 같다.

오재형 감독 … 완전히! 미술 쪽에서 항상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메인 스트림 근처에도 못 가봤다. 그런데 영화계에서 ‘큰 데(부산국제영화제) 한 번 가봤다’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되었는지. 아무리 즐거워도 하다 보면 인정받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 영화제 이후부터 심정적으로 매우 편안하게 작업하고 있다.


릴로어 … 맞다. 무엇이든 보상이 있어야 한다. 심리적으로는 내면이 충족되면 그제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깥을 향한다고 하더라. 자기 이해 과정을 거친 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도 있게 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차기작으로 <소영의 노력>을 찍을 수 있게 되었나 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

오재형 감독 … 그렇다. 물론 영화제가 아니었어도 그 작업은 큰 변화 없이 이어가던 거지만, 더 좋았다.


릴로어 … <피아노 프리즘>는 ‘피아노 연주회 제작 과정’이라는 중심 사건이 있다. 그리고 이전에 작업한 단편영화와 뮤직 필름을 비롯한 필모그래피를 한 데 엮어내 다채로운 비주얼을 보여준다. 휴먼 다큐멘터리이자 음악 실험영화다. 레퍼런스가 있었을까?

오재형 감독 …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홀리 모터스>(2013) <꿈>(1990)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안데르손 감독의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2000)도 좋은 레퍼런스였다. 비슷한 장르로 최근에 본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도 있다. 모두 감독의 개인전 같은 구성에 매료되었다. <피아노 프리즘>도 계속해서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처럼 구성했다. 난데없이 꿈 이야기를 한다든가 애니메이션을 넣었다. 연주회 준비가 서사의 큰 줄기이지만 내가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사실 핑계다. 오히려 나의 여러 가지 미술 작업들을 조금씩 다 넣고 싶었다.


릴로어 … 피아노 연습 장면이 대체로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흔쾌히 추천하기도 좋았다. 구성은 독특하지만 분명히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지점이다.

오재형 감독 … <모스크바 닭도리탕>이라는 단편이 내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실험적인 장르로 분류되는 것 같은데, 나는 항상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웃음) 약간의 유머 코드도 항상 준비한다. 사실 감독들은 다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설득력은 없지만.(웃음) 실험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이 몇 명 있는데, 모이면 서로 본인은 대중영화 만든다고 앞다투어 우긴다.


자아 탐구로서의 예술

릴로어 … 친구랑 통화하는 장면들도 재미있다. 1년째 닭 튀기는 친구, ‘뭐라도 되겠지’ 하고 만나기로 한 친구. 고충도 웃음으로 승화하고, 감이 안 와도 일단 하는 모습이다.

오재형 감독 … 첫 번째 통화 장면에 등장한 친구는 치킨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또 다른 장면에서 통화한 친구는 드러머로 나오는데 원래 미술가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둘 다 아마추어라는 것. ‘프로’라고 불리는 전문가는 돈값을 해야 한다. 잘하는 건 당연하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피아노 잘 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 않나. 반면 아마추어는 잘하면 신기해한다. 우리 부모님, 친구들도 ‘네가 무슨 피아노를 쳐’하고 웃는다.(웃음) 난 ‘의식적인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한다. 관행을 모르고 덤벼드는 고유의 에너지가 있다. 아마추어의 어원(amator)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하던데.


릴로어 … 즐기면서 하는 것 자체를 즐기나 보다.

오재형 감독 … 얼렁뚱땅 하는 게 재미있다. 완성도부터 신경 쓰면 시작조차 어렵다. 완벽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심리도 당연히 이해하지만, 아마추어만이 볼 수 있는 시선이 따로 있다. 그게 아마추어의 무기지. 진짜 100퍼센트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릴로어 … 작업실에서 홀로 화가 은퇴 선언을 하고 그 모습을 기록한 장면도 있다. 말하자면 사적 에세이 요소다. 자아 탐구는 내밀한 개인의 일이라서 타인과 공감하기 어려운데, 본인에게는 진지한 것을 타인에게 흥미롭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자의식 과잉이거나 자기 연민이 느껴지면, 관객 입장에서 몰입하기 어렵지 않나.

오재형 감독 … 그렇지만 자의식 과잉이 없으면 창작을 못하는 것 같다. 예술가들은 타인이 자신을 찾아주지 않을 때 홀로 자의식을 소진해야 하거든. 대신 작품에서는 그걸 들키느냐, 안 들키느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어떻게 귀엽게 들키느냐 혹은 재미없게 드러나느냐의 차이.


릴로어 … 영화에서 오재형이라는 사람이 출연, 연출, 기획을 다 한다. 예술 분야별로 보면 미술가, 영화감독, 음악가 세 가지 역할을 다 해낸다.

오재형 감독 … 미술로 치면 그냥 개인전 하듯이 한 거다. 영화는 파트별 분업이 잘 되어 있는 예술이지만, 미술은 혼자서 다 하는 분야다. 미술가 출신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전시회를 한 번 열어본 사람은 기획부터 그림 작업, 홍보, 디스플레이까지 다 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많은 걸 해내는 전공인 것 같다.


릴로어 … 카메라를 다루는 방식이 붓질하는 것만큼 편해 보이기도 했다. 펜이든, 붓이든, 카메라든, 어떤 도구를 가져다 놓아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것 같달까.

오재형 감독 … 시간과 자원의 한계 앞에서 선택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추어리즘은 장비에도 해당된다. 가장 중요한 건 연출이다. 장비보다는 구조나 연출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 막대한 제작 지원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계속해왔던 방식으로 작업할 것 같다. 이 영화를 찍은 카메라도 7~8년 전에 유명했던 중저가 모델인데, 요즘 작업하는 사람들은 서브 카메라로도 잘 안 쓸걸. 두 번째 장편 <소영의 노력>은 150만 원짜리 캠코더로 거의 다 찍었다. 물론 하루하루 마음이 바뀐다. 요즘은 새 카메라 사고 싶다.


릴로어 … 미술로 시작해서 영화, 음악으로 예술 활동을 확장하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를 결합하는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오재형 감독 … 새로운 시도에 부담을 안 느끼는 편이다. 그림 그릴 때도 시리즈 작업보다는 안 해본 걸 하려고 했다. NBA 농구를 즐겨 보는데, 천재보다 애매한 재능을 가진 선수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 학생 때 영입 1순위였던 선수는 큰 키로 덩크슛만 잘해도 충분하다. 신체 능력이 뛰어나서 기술을 연마할 필요가 없는 거지. 오히려 시작부터 애매하면, 수비와 패스 기술을 다 연마해야 살아남는다. 다재다능한 선수가 되어 롱런하는 거지. 나도 후자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쩌면 미술로 큰 성취를 이뤘다면 아마 그림만 그리느라 바쁘지 않았을까.(웃음)


다양한 관객을 헤아리는 다정함

릴로어 … 배리어프리 영화로도 주목 받았다.(배리어프리 영화: 기존의 영화에 음성해설 및 배리어프리자막-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정보-을 넣어 시각/청각 장애인 포함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영화) 원본 자체가 배리어프리 버전인 영화는 전례가 없다.

오재형 감독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배리어프리영화제, 가치봄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들에서 이미 예전부터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공연계에서도 접근성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접근성 매니저’라는 직업도 있다. 다만 배리어프리 영화 구조를 탐색하고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으로 실험하려는 제작자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모든 사람에게 영화를 보러 오라고 할 때, 그 초대에 응할 수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봤다. 관심사가 장애인 권리 문제로 옮겨가면서, 접근성 측면을 고려했다. <피아노 프리즘>을 통해, 기획부터 영화의 구조를 바꾸는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을 실험을 해본 것이다.


릴로어 …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에 관해 강의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가장 강조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오재형 감독 … 보통 배리어프리 영화는 전문 업체에 맡겨서 작업한다. 하지만 워낙 영화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라 감독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중요성을 영화 제작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데 윤리적으로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하면, 아무도 안 듣는다. 대신 더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방법으로서 필요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장면 해설과 자막을 미학적인 관점에서 끌어안고 통합하려는 시도다.


릴로어 … 음악만 나오는 장면에는 왼쪽 상단에 음표 하나가 삽입되어 있다. 피아노 연주 소리를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걸까?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있는 장면과 달리, 음표만 넣는 게 아쉬웠을 것 같다.

오재형 감독 … 간단한 설명이 나오긴 한다. ‘경쾌한 음악’이라는 말 정도. 계속 말할 수 없어서 음표를 넣었다. 다른 배리어프리 영화를 보고 따라한 건데, 근본적인 문제나 해결해야 할 부분이기는 하다. 음악이 중요한 영화라면 어떻게 설명하느냐의 문제가 따른다. 대안은 실험적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배리어프리 영화의 대원칙에 따르면, 주관적인 해설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번 영화도 그랬지만, 다음 영화인 <소영의 노력>에서는 문학적인 비유를 일부러 많이 썼다. ‘팔을 45도 각도로 올렸다’ 같은 중립적인 표현이 과연 영화 감상에 도움이 될까? ‘종이배를 띄우는 심정으로 팔을 들었다’와 같이 상상의 여지를 감각적으로 번역하는 게 낫다. 감각적인 어휘를 써서 번역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 시도해 볼 계획이다.


릴로어 … <피아노 프리즘>에는 자연스럽게 창작물에 녹아든 약자를 향한 애정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강조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웠다. 자아탐구와 함께 한 축을 담당하는 관심사가 약자인 것 같다.

오재형 감독 … 나의 30대를 압축해 놓은 영화라 그런가 보다. 그때는 재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과 대형 참사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다. 처음 투쟁 현장을 봤을 때 사람들이 끌려다니는 모습에 충격받았다. 지금이야 흔히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됐지만. 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고 있는데 그곳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림 한 장 그려서 간 게 시작이었다. 제주 강정마을 유튜브 영상을 우연히 보고 투쟁 현장에 나갔다. 그리고 공교롭게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강정마을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세월호 투쟁 현장까지 동행했다. 지금은 현장에 나가기보다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릴로어 … 다정한 인류애와 인문적 소양을 어떻게 길렀는지?

오재형 감독 …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해 들으며 자랐다. 두 분이 운동가 출신이다. 처음에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2007)였다. 그 시기에 한미 FTA 비준 과정에 논란이 일었다. 그때 걸개그림을 그려서 광장으로 나갔다. 예술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처음 표현한 거였다. 지금 관심사는 장애 쪽으로 옮겨갔다. 정권과 상관없이 나아지는 것이 없는 이슈다. 특히 장애인 인권은 접근성의 문제다. 이건 형식에 관한 미학적 측면으로 이어진다. 불의를 못 참는 사람이라서는 아니고, 단지 관심이 생겨서 장애학 책까지 읽게 됐다. 세상을 거꾸로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지. 그렇게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학적인 호기심도 충족시켜 주면서, 여러 가지로 의미도 있다. 지적으로 짜릿하고 즐겁다.


<피아노 프리즘>은 의도하지 않은 다정함으로 점철되어 있는 영화다. 오직 오재형 감독만이 주는 감동이 가득하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했던 작가 영화였으나 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존재 가치도 가진다. 예술이라는 게 세상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면, 바로 <피아노 프리즘>과 같은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는 오는 9월 19일(금) 오후 7시, 메가박스 부산극장 2관에서 상영된다. GV에는 모그 음악감독이 참석하며,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오재형 감독의 피아노 연주회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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