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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Aug 07. 2019

똥손이 금손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크리에이티브한 똥손이 되고 싶다

 난생 처음 글쓰기 수업을 들은 날. 수업이 그러하듯 숙제가 생겼다.


 ‘내 일생에 가장 창의적인 짓(일)을 해본 경험을 써봅시다. 솔직하게’  


 첫 번째 과제를 앞에 두고 막막함이 밀려왔다. 어렴풋이 나의 지난 과거들을 되짚어보는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우선 창의적이라고 하면 무언가를 새로 만든다든지 획기적인 발견을 해서 회사 혹은 누군가에게서 인정을 받는 것들이 떠오르는데, 난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잘 보고 듣고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아,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다.


 3n년을 살아왔는데 이런 결론은 나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 창의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삶의 흐름 중에 포인트가 될 만한 어떤 것들을 생각해 보는 거다. 그랬더니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열심히 블로그를 해서 파워블로거가 될 뻔했던 일이나 회사 OT 때 팀 캐릭터 스토리텔링을 해서 1등을 했던 것, 그 외 회사에서 있었던 자잘한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누군가에게 얘기할 만큼 나에게 무언가를 남겼느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업무의 연장선에 놓여있어서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일들은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서 정말 찬찬히 생각해 봐야 간신히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크게 창의적이진 않지만, 나에겐 큰 도전이나 다름없었던 일에 대해서 쓰고 싶다. 그건 바로 캔들 만들기이다. 난 무엇에 하나 꽂히면 바로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다. 우선 하고 싶어지면 조금 비싼 비용을 치르더라도 망설임 없이 실행한다. (단점은 그 끝맺음이 엉성하다는 거다) 캔들 만들기가 나에게 큰 도전이었던 이유는 난 손으로 하는 것은 다 못한다. 일명 ‘똥손’이다. 이 똥손으로 잡을 수 있는 건 연필밖에 없다. 어린 시절, 사교육의 영향으로 연필 외에도 붓, 먹, 건반, 색종이 등을 쥐어 봤지만 언제나 선생님의 안쓰러운 위로로 끝이 났다. ‘XX는 항상 열심히 하네’ 어렸을 때지만 그게 조금은 슬픈 칭찬이라는 걸 느꼈다.


 똥손이 캔들을 처음 만들러 가는 날, 나는 굉장히 긴장했다. 날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캔들만 7년 이상 만드신 분으로 많은 수강생을 만나봤을 텐데 이렇게 손끝이 여물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까? 이런 똥손이 캔들 전문가반을 들어도 되나? 난 왜 전문가반을 질렀지? (목표는 항상 커서 뭐 하나 시작하면 전문가가 되고 싶다. 물론 된 적은 없다) 그래서 첫 수업 때 선생님 앞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얼마나 조심조심 왁스를 붓고 장식을 올렸던지. 선생님은 수업 후 날 배웅하며 이렇게 말했다.


 “쌤, 오늘 정말 잘하셨어요. 저한테 손재주가 없고 잘 덜렁거려서 걱정되신다고 하셨는데 오늘 그런 모습 전혀 없었어요! 너무 침착하게 잘하셨어요!”


 그리고 정확히 3주 뒤에 선생님은 날 배웅하며 이렇게 말했다.


 “쌤, 첫날에 왜 쌤이 자신에 대해 그렇게 얘기했었는지...오늘은 조금 알 것 같아요”


 이건 싸우자는 건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선생님이 한 말을 되짚어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수업 3번 만에 들킬 거 뭐하러 그렇게 내숭을 떨었나. 똥손에게 이 정도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수업에는 이 외에도 여러 장애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캔들 만들기 수업에서 가장 힘겨웠던 건 내가 직접 디자인한 캔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 몇 번의 수업은 캔들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을 선생님을 따라 흉내를 내면 얼추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디자인한, 나의 오리지널리티가 들어간 캔들은 처음부터 내가 생각해야 한다. 나 개인의 만족이 아니라 진짜 타인이 보아도 예쁘거나 귀여워서 기꺼이 비용을 내고 집어들 수 있을 정도의 캔들을 내가 어떻게 만들지? 시간이라도 많으면 좋겠는데 선생님 바로 앞에서 혼자 고민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나의 상상력의 빈곤함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고 계시는 그분. 좀 사라져주셨으면 좋겠는데 수업 장소가 선생님 자택이다. 진퇴양난 속에서 선생님이 주신 재료들로 인스타그램에서 여러 레퍼런스를 찾기도 하고 선생님의 조언을 얻기도 하면서 간신히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수업이 몇 번 진행되면서 긴장도 풀려가고 좀 더 유연하게 선생님과 수다를 떨며 캔들을 디자인할 수 있었다. 결과물은 물론 아직 초보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팔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생님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좋아요를 꽤 받고, 귀엽고 예쁘다는 코멘트를 몇 개 얻을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도 반응이 좋았다. 캔들이 이상하게 널 닮은 것 같다고 했는데 어찌 됐든 나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다는 말로 생각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그 과정은 마지 무언가가 내 위장을 비비 꼬듯이 쥐어짜 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비 꼬인 반죽을 따끈하게 튀겨낸 후 설탕을 잔뜩 묻혔더니 입안이 달달했다. 난 이후에도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캔들 사진을 보여주며 ‘귀엽다’, ‘예쁘다’는 말을 유도했다. 처음으로 창작의 고통을 느끼고 완성의 기쁨을 누린 사람이니까 한동안은 다들 이해해 줄 거로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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