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스노우캣님의 to cats를 읽을 때 묘하게 가슴에 남았던 일화가 있다. 바로 스노우캣님이 나이 든 고양이 밥을 먹이는 일을 걱정하는 에피소드였다. 스노우캣님이 고양이 밥 먹이기 힘들다고 하면 주변 지인들은 "고양이가 밥을 안 먹어? 왜? 밥은 그냥 놔두면 먹는 거 아냐?" 라며 이해하지 못하던 그 에피소드. 그게 왜 기억에 남았냐면 우리 아이도 밥을 잘 안 먹는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에도 식탐이 없어서 자율급식을 해도 밥을 매번 남기는 애라 솔직히 키우기는 편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가슴 한구석에 스멀스멀 확신이 없는 걱정이 솟아올랐다.
'나이 들면 분명히 이걸로 날 걱정하게 만들겠구나'
세월은 흘러 지금 우리 고양이는 14살, 노묘가 되었다. 나이가 들자 움직임은 둔해지고 잠이 늘었지만 밥은 오독 오도독 잘 먹어서 살이 찌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는데 차라리 그 걱정할 때가 나았지. 요 며칠 전부터 우리 애는 밥을 안 먹기 시작했다. 매일 먹던 사료도, 습식 캔도, 파우치도 안 먹는다. 나이가 들어서 이빨이 아픈가? 사료를 물에 불려도 보고 잘게 부수어도 봤다. 아주 개미 똥만큼 먹고 안 먹는다. 심지어 이틀 전부터는 물도 안 먹는 거 같다. 큰일 났다.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이 도움이 안 되는 집사가 해외여행 갔다가 무릎을 부시고 와서 얘를 들고 동물병원까지 갈 수가 없다. 결국 어젯밤 부모님께 SOS를 쳐서 온 식구가 병원으로 출동을 했다.
우리 고양이는 남들이 얘기하는 전형적인 고양이이다. 곁을 잘 안 내주고 까칠하고 예민하고 도도한. 우리 애도 개냥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아주 예전에는 기대도 해보았지만 14년간 키우면서 개냥이의 유전자는 우리 애에겐 없다는 것만 여러 번 확인했다. 그렇게 오래 키웠지만 얘는 나에게만 곁을 내준다. 배가 고프면 엄마, 아빠에게도 치대며 예쁘게 보채지만 그건 오직 배가 고플 때뿐. 밥을 주면 쌩~하니 모른 척한다. 그렇게 얘가 까칠하고 도도할 수 없다며 한탄하던 엄마도 가는 내내 차 안에서 걱정을 하신다.
"심각하면 어쩌지. 마음이 너무 아파. 동물은 키우는 게 아니야. 너무 마음이 아파"
그날따라 병원에는 수의사가 1명밖에 없어서 1시간을 기다렸다. 진찰하는 내내 까칠한 우리 애는 수의사에게 하악질을 한다. 혈액검사를 하고 수치를 보자고 하여 30분 정도 더 기다렸다. 결과가 나왔다며 의사가 부르길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내내 고양이 밥 안 먹는 이유에 대해 네이버 검색을 해보는데 대부분 치아 문제이거나 신부전증이란다. 제발 차라리 치아 문제이게 해 주세요. 그건 돈이 좀 깨지겠지만 치료는 가능하잖아요. 각오를 하고 의사의 말을 들었다.
"나이에 비해 특별히 심각한 문제는 없습니다"
".... 그럼요?"
"현재는 탈수 증상이 있고, 밥을 안 먹어서 간 수치가 높아졌습니다. 황달 증상도 보이고요. 밥을 먹으면 다시 수치가 안정화될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밥을 먹는데요. 엉엉.
의사쌤은 탈수가 오면 하루 입원해서 수액을 맞는 게 좋은데 고양이가 너무 예민해서 스트레스 많이 받을 것 같다며 집에서 최대한 먹여보라고 하셨다. 식욕촉진제와 간에 좋은 약을 처방해주시고 주사기, 단백질이 적게 포함된 습식 캔을 주셨다. 자, 이제 이 세상 까칠한 애에게 밥을 먹여야 하는데. 난관이다. 그냥 수액 맞았으면 좋겠다고 의사를 표시했으나 의사쌤은 다시 그건 안 좋을 거 같다고 하셨다. 하...
집에 돌아오니 한밤중이다. 지 맘에 안 들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주사기에 적응하는 시도는 해보지도 못했다. 얘를 이동장에 꺼내면 후다닥 사라질 텐데 주사기에 적응시키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먹이는 것이 급했다. 우선 이동장에 넣어둔 상황에서 문만 열어서 애를 붙잡고 송곳니 사이로 주사기를 쑤셔 넣었다. 쭉!! (습식캔+약+물) 처음에는 기운이 없어서 반항도 제대로 못하고 입에 들어오는 대로 삼킨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횟수가 늘어갈수록 뭔가 기운을 차리는 거 같다. 몸에 힘이 돌아오고 몸부림이 심해진다. 결국 주사기로 습식캔 한숟가락 정도와 약과 물을 주사기로 열 번 정도 먹였다.
(사진 속 고양이와 우리 집 고양이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도 열 번 정도 먹이자 기운이 나나보다. 우선 열이 받았는지 귀가 시뻘개졌다. 사람이 열 오르면 얼굴이 벌게지고 뺨이 후끈거리듯이, 귀도 후끈후끈 뜨거워졌다. 몸이 더워졌는지 바닥에 앉아서 그루밍을 시작했다. 사투를 벌이며 주사기로 밥을 먹인 흔적이 온 털에 묻어있어서 그걸 열심히 닦아낸다. 그래도 그루밍을 하는 거 보니 기운이 나나보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화가 났을 줄 알았는데 뭐라도 먹으니까 기분이 좋아졌는지 침대에 누워있는 내 허리춤에 올라와서는 만져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밥을 달라고 보채기도 하길래 의사썜이 준 캔을 아주 조금 덜어줬다. 먹는다. 안심이 돼서 마음 편히 잠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또 안 먹었다.
뭔가 먹고 싶기는 한지 밥그릇 주위를 맴도는데 냄새만 맡고 먹질 않는다. 그럼 물이라도 좀 먹어 이놈아!!! 결국 아침에도 애를 붙잡고 억지로 주사기 급여를 했다. 전날보다는 힘이 세져서 반항이 거세다. 결국 두 번 정도 먹이고 포기. 온라인 쇼핑몰에서 단백질 함량이 적은 사료와 기호도가 높다는 파우치를 종류별로 구매했다. 뭐라도 좀 먹어주었으면 좋겠다. 배는 고픈 거 같은데 밥이 마음에 드는 거 같지 않다. (아니 그동안 잘 먹던걸 갑자기 왜?)
밥투정하는 자식을 쫓아다니면서 뭐라도 먹이려고 하는 부모가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 지금은 이해가 된다. 이건 고집이나 삐짐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양이는 2~3일만 안 먹어도 간수치가 높아진다) 어떻게든 뭐라도 먹이고 싶다. 너무 속상해서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푸념했다.
"언니네 고양이가 하도 잘 먹어서 매일 돼지라 불렀는데 그게 이렇게 부러울 줄은 몰랐어"
그렇게 밥을 가지고 2~3일 정도 사투를 벌이고 다행히도 우리 집 고양이는 처방 사료를 잘 먹기 시작했다. 단백질 함량이 적은 처방 사료인데 무엇이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만은 매우 잘 먹는다. 다소 적응기간이 필요했는지 설사를 푸짐하게 했지만 하루에 두 번 밥을 먹고 물도 한 그릇 잘 비워낸다. 그래도 이 정도에서 나아지는 걸 보면 우리 집 애는 효녀다. 엄마 속 크게 안 썩이고 14년 동안 곁에 있지 않았나. 엄마는 그 사이 유학도 다녀오고 해외여행은 일 년에 수차례씩 가며 곁을 떠났었는데.
입맛을 다시 살려낸 기념으로 다소 비싼 쿠션을 떡 하니 사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안 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다 공감하겠지만, 정말 내 맘처럼 되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아직 건강하니까. 나이가 들어서 기력이 빠지는 건 자연의 섭리로 여기고 곁에서 많이 많이 아껴줄 거니까. 14년이 아니라, 15년 16년, 20살까지도 엄마 옆에 있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