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의 손에 혹이 생겼다. 처음에는 좁쌀만 한 크기였다.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런 게 아닐까. 안 하던 운동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나는 N에게 병원 진료를 권하면서도, 그 혹을 저절로 사라질 염증 정도로 여겼다. N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안일하게 생각했고, 그 사이에 혹은 쑥쑥 커서 구슬아이스크림만 해졌다. 이제는 자연 치유될 거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 혹은 중지와 손바닥의 경계에 있어서, N은 주먹만 쥐어도 통증을 느꼈다. 일을 하는데도 분명 어려움이 있을 터였다. 이제는 진단을 미룰 수 없었다. 우리는 병원 예약일을 기다리는 동안, 그 혹이 갑자기 피부 안에서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동네은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다. 그저 큰 병원를 가보길 권할 뿐이었다. 우리는 의사도 진단하지 못한 혹의 정체를 검색해보곤 했다. 심각한 질환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지만, 정확한 병명을 몰라서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큰 걱정은 피하려고 했다. N는 자꾸 별거 아니라고 말을 했고, 나는 자꾸 괜찮을 거라는 말만 반복했다. 적어도 진단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너무 걱정하지 않길 바랐다. 내가 그 혹에 드래곤볼이라고 이름을 붙인 건 우리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무마하려는 바람에서였다.
N은 생각지도 못한 검사를 여러 번 받았다. 나는 N이 부정맥 의심 소견으로 추가 검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너무 많은 검사를 받는 게 의아했지만, N은 자세히 말을 해주질 않았다. 자꾸만 검사가 추가되고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가 대체 뭔지. 그 이유를 한참 지나서 알았다. N이 대학생 때 부정맥으로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는 사실도.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 말을 듣고도,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별일 아니길 바라는 일뿐이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길. 수술이 잘 끝나길. 너무 걱정하지 않길. 우리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나는 늘 무거운 문제를 가볍게 넘겨버리려고 했고, N은 내가 걱정할 만한 얘기를 숨기려고 했다.
한동안 많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이상 소견은 없었고 수술도 잘 끝났다. 나는 수술이 끝난 다음날이 돼서야 병문안을 갔는데, N은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병원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제 몸보다 큰 링거 거치대를 끌고 나오는 모습을 보니 새삼스럽게 N이 너무 작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많이 익숙해져서 잘 몰랐는데, 병원 앞에서는 잘 아는 사람도 왠지 낯설게만 보였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N은 날 보고 환히 웃었다. 입원실 안에선 할 일이 없어서 심심했다고. 하지만 나는 N에게 미소 짓지 못했다. 살다 보면 더 한 일도 많겠지만, 나는 우리의 불운 앞에서 너무 작고 약했다.
우리는 병원 식당에서 돈가스와 떡볶이를 먹고, 후식으로 소프트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잘 먹고 잘 회복하기를.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모습도, 연인과의 사랑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네 앞에 놓인 불운을 잘 이겨내고,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시련을 잘 통과하길 바라는 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소원을 비는 일밖에 없었다. 이제 손안에 드래곤볼이 사라졌다고 농담하는 N을 보며, 나는 그 드래곤볼이 우리 소원을 이뤄주고 사라진 건 아닐까라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