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민철 Oct 30. 2022

이태원 할로윈 압사 사건을 겪으며...

2022년 10월 29일. 150명 가까운 젊은 목숨들이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대부분 10대와 20대로 집계되었다. 사인은 심정지이자 압사였다. 그것도 사람과 사람이 넘어지고 겹쳐지고 깔리면서 발생한 압사. 그 죽음의 연쇄가 불러일으킨 참사는 너무도 참혹했다. 젊음의 거리는 순식간에 공포의 거리로 변해버렸고, 뒤엉킨 행렬은 죽음의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누구는 운이 좋아 살고 누구는 운이 나빠 죽었으니,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그 끔찍한 시간 속에 갇혀있었을 게 분명했다. 할로윈을 즐기러 나온 인파뿐만 아니라, 이태원의 길을 지나가던 행인들까지. 왜 이들은 죽음으로 내몰려야만 했나.


코로나로 인한 통제가 풀려갈 무렵, 이러한 대규모 인파에 의한 사고를 예상할 순 없었던 것일까. 용산참사와 세월호 사건을 거치면서 우리는 더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지만, 왜 대처는 항상 미흡하고 진전이 없는 것인가. 왜 한국 사회의 아픔은 또다시 반복되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새기는가.


이태원의 길거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한 탓에 주검들은 차디찬 길바닥에 그대로 놓였고, 젊은 생명들 붉은 핏자국 하나 없이 파란 천으로 덮여갔다. 구도 예상치 못한 허무한 죽음이었고,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불운이었다. 그 순간에 누구는 친구를 찾고, 누구는 연인을 찾아 헤맸으며, 실종 전화는 수백 통에 달했다고 한다. 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의 자식이 그 참사 속에서 허무하게 스러져 갔을 모습이 너무나도 처참하게 그려졌다. 이들의 죽음이 불러일으킬 슬픔과 분노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것들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도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