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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원 Jan 25. 2024

나에게도 눈이 내린다

흰 머리카락의 등장에 따른 놀람과 대처

나는 몰랐다     

내 머리카락 중 몇 놈이 흰색으로 변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내가 모르는 새 집게손가락 길이만큼이나 자랐다니, 내가 무심했던 건가 이놈들이 너무도 은밀했던 건가          

그렇게 알게 된 내 흰 머리카락은 처음에는 2개뿐이었다     

"으악~!!! 흰머리가 났어. 2개씩이나. 이거 좀 잘라줘."     

하지만 흰머리가 없이 만날 청년인 남편은 시큰둥하다.     

"자연스럽지, 뭘 잘라. 그냥 둬."     

"와, 자기 일 아니라고 저런다. 당신 흰머리 날 때 두고 봐. 안 잘라줄 거야."     

50대면서도 20대처럼 옷을 입고, 뒤꿈치를 드는 운동을 하면 건강하다며 온종일 그러고 있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남편다운 답변에 기분이 상했다 나이는 남편이 더 많은데 내가 먼저 흰 머리카락을 맞이해야 다니, 내가 너무 힘들게 산 거 아닌가 하는 불평의 마음이 올라온다      

             

그래서 혼자 흰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수직으로 들추어 최대한 두피에 가깝게 잘랐다 하지만 그 작고 날렵한 눈썹용 가위로 잘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옆 검은 머리카락들도 같이 '두두둑' 소리를 내며 희생되었다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은 안타깝고 숭고하다 그렇게 가끔 흰 머리카락이 있는지 열심히 검사하다가는 바쁜 하루하루에 점검이 느슨해졌다 그러다가 반년인가 지나서 발견했을 때, 그놈들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방심한 사이 무성해진 이 녀석들 이제는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 팔이 아프도록 잘라내도 끝이 나지 않았다 이때 기억나는 것이 있었으니, 내겐 너무도 이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딸이 있다는 것이다                    

"**아, 엄마가 반백(半百)에 반백(半白)이 되게 생겼어. 아빠는 안 도와준다고 하고. 엄마 흰 머리카락 좀 잘라줄래?"     

딸은 내 머리카락들을 들춰 보며 안타까워했고, 바로 잘라주었다 나는 화장대 의자에 앉고 딸은 서서 내 머리를 들춰가며 '톡' 소리 나게 한 가닥씩, 하지만 가끔은 목표대로 되지 않았는지 ‘두두둑’ 소리를 내며 자르고는 미안하다 말했다 그리고 요즘은 거의 주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딸의 도움을 받고 있다 딸이 시험 기간이라 예민한지, 피곤한지 아닌지 눈치를 보며 타이밍에 맞게 부탁을 하여 이 어려운 시술은 간신히 성사된다      

그리고 가끔은 "**아, 엄마가 내일 아주 중요한 외출이 있는데~" 이런 간절함으로, 또 가끔은 딸이 바쁜 것 같으면 시술용 가위를 딸이 지나다니는 길에 일부러 두어서 엄마를 떠올릴 수 있도록 간접화법으로 요청을 하기도 한다            

         

나는 아들과 딸이 있는데, 역시 남매를 두신 우리 엄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 게 좋아."     

그런데 진짜 그렇다 아들은 말수는 적은데 배려가 가득하고, 딸은 얘기도 많이 하고 공감 능력이 최고라 딸에게 위로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아들만 둔 대학 친구 2명에게 이 흰 머리카락 제거 시술에 관해 이야기하면 경탄을 한다 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기는 이 뿌듯함의 감정이란~     

               

흰 머리카락을 몇 년간 들여다본 요즘은 시술 시 20가닥 정도를 정리하곤 한다 이 흰 머리카락들은 주로 이마 양옆 쪽에서 뒤편에 군락을 이룬다 그리고 대부분은 모근 쪽에서 흰색이 시작되지만 독특하게도 가끔은 흰 머리인데 모근 쪽에서 검은색이 시작되기도 한다 '와 흰 머리카락이 다시 검어지기도 하네?' 그래서 희망을 품고 정말 싫어하는 검정콩을 넣어서 밥을 해 먹고, 검정깨와 검정콩이 든 두유를 사 먹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놈들이 군락을 이룬 이후에는 다시 검어지는 머리카락을 보지 못했다               

     

친구들은 이미 흰 머리카락이 많아져서 염색을 시작하고, 뿌리염색도 하고 염색샴푸도 쓴다는데 난 아직 잘라내기로 버티고 있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더러 흰머리가 잘 어울리는 어른들도 있고, 삶의 영광으로 여기는 분들도 있다지만 난 아직은 받아들이지를 못하겠다 머리가 하얘지면, 내 나이가 꽤 많다는 표식인데 그만큼의 어른스러움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청바지가 좋은데 흰머리가 어울리겠나 하는 옷 걱정도 되고, 결혼하고 아이 둘 키우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삶에 이제 좀 여유가 생기는데, 흰머리는 아직 달갑지 않다           


그리고 며칠 전에서야 흰 머리카락을 발견한 남편이 호들갑을 떨며 왔다 자기 귀 쪽에 흰 머리카락 2개 났는데 잘라달란다 어휴, 내가 3년 전 그때 분명 안 잘라준다고 했는데 기억을 못하는건지 절박한 건지 그래도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정확히 흰 머리카락만 잘라주었다 난 3년 선배라서 노련하니까     

      

이제야 결혼식 때 흔히 듣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가 되고 있다 아직은 이 흰색이 낯설고 부정하고 싶지만, 차츰 받아들여야겠지 검은색이 내게 힘과 활동성, 변화무쌍함과 분주함을 주었다면, 흰색은 나에게 뭔가 빼앗기만 할 것 같아서 걱정도 된다 하지만 새로운 어떤 것을 줄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지금 아주 조금 느끼는 것은 모든 변화에도 담담할 수 있는 마음의 평안과 여유, 모든 상황이 빠르게 이해되며 처리가능한 느낌이다 오늘 하루도 검은색에서 흰색으로의 전환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며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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