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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Mar 15. 2017

다섯 번째 자취방으로 이사를 하고

5년 자취-서울 월세 살이에 대한 소회

어제 이사했다. 5번째 집.


스물넷까지는 아버지의 자취 절대 반대로 인천에서 통학·통근했다. 일찍부터 자취의 꿈을 가지고 '나 성인이고 내가 과외로 번 돈으로 살게요. 내비둬요!' 격렬하게 외쳤지만 '돈 때문이 아냐 가족이랑 살아!'하시는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로 항상 무산되었다. 등하교로 버리는 시간과 스트레스 및 자취의 모든 이점을 모아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노우, 아버지 본인은 시골서 왕복 4-5시간 걸어 학교를 다녔다는 말 뿐이었다. 멀미가 심해서 버스도 안 타셨다고 했다. 나도 고대로 물려받아 빨간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때면 멀미로 속이 무지 메스꺼웠다.


그러다 13년도 스물다섯에 첫 자취를 시작했다. '아버지 나 친구랑 사무실 근처에 살게요'했더니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마셨는데 나는 이걸 '더 이상 반대하진 않겠다.'로 이해했다. 창업 선언 후 1년여간 인천에서 선릉까지 새벽 출근했던 게 유효했던 것 같다.


첫 자취방은 건대 2번 출구 번화가가 끝나는 지점쯤에 있던 반지하집. 성수에 있던 비즈니스 센터를 출근하려고 잡은 곳. 당시 코파운더 인혜랑 같이 살았다. 보증금 500에 월세 42만 원. 월급날 회사 계정으로 들어가서 소정의 월급을 쏘고 나면 나는 다시 내 인터넷뱅킹에 접속해서 월세의 반인 21만 원을 집주인에게 입금을 했다. 내가 월급 주고 내가 월급을 쓰는 게 초반엔 이상한 기분이었다. 정사각형 모양 원룸이었는데 양쪽 벽에 각자의 싱글 매트를 펴고 그 가운데 행거를 설치했다. 문 앞에서 보면 [] | [] 이렇게. 매트-행거(나름의 분리)-매트.


인혜랑 사는 건 여러모로 좋았다. 아침에 벌떡벌떡 일어나는 인혜따라 부지런히 준비해서 같이 출근하는 것이 특히 그랬다. 아침의 나는 항상 자던 자리에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2L 생수 6개들이를 번갈아가면서 들고 무거움을 잊겠다고 집에 뛰어들어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화려한 건대 번화가를 지나며 포차에 들러서 술 한 잔 하는 것도 좋았다. 인혜는 나만큼이나 소주도 잘 마셨다.


두 번째 자취방은 사무실이 낙성대로 가면서 따라 이사한 곳이다. SK상생혁신센터에 출근하기 좋은 낙성대역 3번 출구 앞 원룸텔에 잠시 살았다. 건대 집에서 나온 내 짐은 쇼핑백 8개 정도였다. 원룸텔은 보증금 계약기간 다 없다, 월에 35만 원인가 37만 원인가 내고 퇴근해서 잠만 잤던 공간. 흔히 보이는 고시텔의 작은 공간이지만 처음으로 혼자 사는 공간이 생겼다. 누워서 멍 때리면 평온해졌다. 이때 불닭볶음면 + 삼각김밥 + 감동란 조합에 중독되었다.


매일 아침, 줄 서서 단팥빵 사 먹는 쟝블랑제리를 지나 관악 02번 버스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쟝블랑제리 유명한 빵집인데 가는 길에 냄새도 좋지만 매번 사람들이 바글거려서 부럽고 창업하는데 자극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서울대생들과 끼여 가는 것 빼고 완벽한 출근길이었다. 게다가 센터 주변 관악산 공기가 올매나 맑은지. 여기 지내면서 낙성대 3번 출구 근처 바지락 칼국수집이랑 더덕순대집도 애용했다.  


그렇게 잠깐 살다가 신림동으로 이사했다. 보증금은 100만 원에 월세 35만 원대 집을 발견한 덕분이다. 그것도 계약할 때 2만 원을 깎았다. 친구는 그 집주인은 그 보증금으로 뭘 한다고 왜 받을까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몰라. 원룸텔과 달리 부엌도 화장실도 집 안에 있고 왠지 기분을 내고 싶어서 인테리어도 시도했다. 하지만 주문한 침구와 커튼이 상세페이지 사진과 전혀 달랐다. 사진에 있던 은은한 패브릭 느낌은 어디 가고 칙칙하거나 쨍한 색상의 애들이 도착해있었다. 그냥 썼다. 그래도 미니소파도 사고 쿠션도 올려서 오늘의 집에 업로드했다.


네 번째 방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선정릉역과 강남구청 사이 7평짜리 방.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는 55만 원. 이번에도 선정릉역에 위치한 회사를 따라 이사 왔다. 호잇을 정리하고 하우투메리에 합류해서 월급을 제대로 받게 되면서 삶의 질이 급격히 향상되고 있음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하우투메리.


이 곳에서의 첫날밤은 무서웠다. 방이 2평이 늘어서 갑자기 여백이 많아지니까 불을 끄고 누웠더니 저쪽 구석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에 누웠을 때 안 보이는 곳이 생겼다. 이 전 방이나 집들은 다 네모네서 안 보이는 곳이 없었는데… 살다 보니 이것도 익숙해져 갔다. 잘 때 집이 다 안 보여도 불안하지 않았다. 이 곳에서 300m 거리의 회사에 굴러서 출퇴근하며 2년 가까이 살았다.


어제 이사한 다섯 번째 집은 선정릉역과 삼성중앙역 사이. 이 전 집과의 거리도 300m, 박근혜 사저와의 거리도 300m 정도에 위치한 언덕 위라 고도는 높은 반지하집. 백수를 2주 앞두고 월세를 줄이기 위해 이사를 감행했다. 보증금 1천5백에 월세는 40. 원래는 전월세를 찾아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서, 저렴 이자와 월세 조합으로 백수 버닝을 좀 아껴볼 요량이었다. 2주 전에 이 집으로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했었다. 결과는 반려. 이사 갈 건물에 신고한 것보다 한 가구가 더 있어서 위법이라 안된단다. 제가 이자만 잘 갚으면 안 되나요 했지만.. 실패. 월세가 20 더 올라 40을 내게 되었다.


2년 정도 선정릉역 근처에 살아보니 이 곳, 내가 살기 좋은 곳이다. 나는 버스보단 지하철을 좋아하는데, 9호선 급행으로 신논현(강남) 한 정거장, 당산은 20여분. 본가 인천에 갈 때는 강남구청까진 걸어서 7호선으로 부평까지. 강북은 분당선 타고 위로, 분당도 분당선 타고 아래로, 박근혜 사저도 직접 내 눈으로.


가까이 하이브아레나디캠프도 있다. 푸드플라이와 배민라이더스가 강남-삼성-신사에 이르는 넓은 맛집의 음식들도 배달해준다. 게다기 빛 가린다고 암막커튼이 유행인 때에 애초부터 빛을 가려주는 반지하니 좋을 수밖에.(참고로 암막 커튼은 진짜 인기인 것 같다. 암막은 정말 필요 없고 빛이 필요한데 커튼만 검색했는데 암막 커튼이 수두룩 나왔다. 그래서 제외할 검색어를 '암막'으로 설정하곤 커튼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 이사갈 여섯번째 집은 전세였으면 좋겠다. 그럼 지난 5년간 허공에 날린 것 같은 월세를 아깝게 생각하지 않을테다. 겨울 가스비도 쿨하게 낼 수 있게되면 좋겠다. (겨울 가스비가 8만원씩 나올 때면 내 몸 데피자고 너무 돌렸나 후회했기 때문에) 예비 백수가 이 정도 꿈은 꿀 수 있지. 그렇고 말고.



5번째 자취방에서 자취 인생에 대한 소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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