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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gui Oct 18. 2023

동행에 대한 짧은 생각

同行, 같을 동에 다닐 행을 써서 동행. 같이 길을 가는 행위 혹은 같이 길을 가는 사람을 뜻하는 말. 길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점으로 된 길은 없다. 선으로 그어질 수 있는 길을 같이 가는 게 동행이다. 현미경을 보듯 자세히 관찰해서 보면, 여행에서 만난 인연들과 나는 적어도 한 발자국 이상의 길을 같이 걸었기 때문에 동행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미세한 입자가 공중에서 찰나만큼 움직였어도 움직인 게 맞는 것처럼. 그러나 조금 더 멀리서 지켜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같은 공간에 머무는 시간을 하루, 이틀로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나와 당신의 만남은 겨우 점에 불과할 것이다. 집에서 500미터나 떨어진 슈퍼마켓이 지구 궤도의 인공위성에서 보면 작은 점에 불과하듯이.


서로 다른 두 점에서 선분을 긋다가 잠깐 교차하는 그 작은 점에서 우리는 같이 길을 걸었고 식사했으며 술을 마셨다. 그 작은 점을 위해 우리는 네이버 카페에서 동행을 구하기 위해 몰두한다.


내가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그 작은 교차점을 찾기 위해 매일 수십 번씩 유랑을 들락날락했다. 런던에서, 에든버러에서, 암스테르담에서 그리고 뮌헨에서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수학 문제에서 관심 있는 건 바로 그 교차점이다. 교차점에서 두 선분의 각을 구하듯이. 그 점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삶에 나비의 날갯짓만큼 사소한 인식을 일으킬 수도, 혹은 가장 큰 인연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엔 궤도에서 벗어나 더 멀리 가볼까. 보이저 1호 정도의 거리에서 지구를 관찰한다면, 짧게 여행에서 만난 인연이든, 수십 년을 함께 산 가족이든 찰나의 점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동행처럼 보일 것이다.


마음가짐은 나에게 달렸다. 그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유럽 여행 중 짧은 인연처럼 지나치는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조금 더 길을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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