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gui Nov 10. 2023

류블랴나에 온 이유

자기 자신이 행동과 사고의 주체가 되어 길을 정한다는 자유의지의 개념은 직관적인 상식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나 역시 굳이 고르자면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편에 속한다. 자애로운 부모님 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성장했고, 지금까지의 내 진로와 기타 방향은 전부 내가 결정해 왔으니까. 경험적으로 나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엔 예기치 못한 수많은 인력(引力)들이 작용한다. 정글을 탐험하던 중 뜻밖의 방향으로 길을 트는 고고학자의 직감처럼. 샛길은 새는 사람이 있기에 존재한다. 샛길로 새는 행위에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샛길이므로 여전히 자유의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길' 자체가 나를 끌어당겼기 때문에 운명론적이기도 하다. 둘 중 어떤 관점을 견지할지는 개인의 자유—혹은 이미 정해진—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지극히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가끔은 특정 대상에 의한 인력이 운명처럼 작용해 내 앞길이 정해져 버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류블랴나에 온 것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인력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얘기는 연인 B에 대한 것이다. 




B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 독서모임에서다. 학과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소규모 동아리였다. 시험기간을 제외하고 매주 정해진 날에 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책에 대한 후기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날의 발제는 학과 선배가 맡았다. 정석의 <도시의 발견>이라는 책이었다. 나는 조금 늦어 1000원을 벌금으로 냈고, B는 2000원을 내야만 했다. 그가 사는 동네에서 학교 앞까지 오가는 교통편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학교 정문 앞 카페에서 모임은 자주 진행됐다. 늦게 온 B는 내 맞은편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B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건 아니다. 예쁘다는 생각은 했지만, 당시 나는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고, 내 감상은 그걸로 끝이었다. 미적으로 훌륭하지만 관람 시간이 넉넉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지나치게 되는 미술관의 어떤 명화처럼, 그저 알고 지내는 선후배 관계였다. 


추운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잔인할 정도로 차갑게 돌아섰다. 관계의 맺고 끊음에 정답이 없다곤 하지만 잘 다듬은 이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학교 신입생의 서툰 첫 연애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해 봄에 B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마인어(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이중으로 전공하는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밥약속을 했던 게 계기였다. 어쩌면 그와 같은 이중전공을 골랐던 그때부터 B의 중력은 나를 서서히 끌어당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곧바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히어로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가 개봉한 다음 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4년 반 넘는 시간 동안 다른 보통의 연인들처럼 수없이 많은 평범한 추억을 쌓았고, 이따금씩 특별한 비밀을 간직해 가며 둘만의 단단한 지층을 다져나갔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 


이렇게 단단한 관계에서 의구심을 갖게 된 건 일주일 전의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에서였다. 그의 외도 정황을 포착했다거나 하는 충격적인 사건은 아니다—그가 발리의 원숭이 사원에서 원숭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긴 했지만 아직까지 원숭이는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믿는다). 단지 내가 지금 비엔나에 와 있는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행동과 말이 나를 비엔나로 이끌었다는 의심이었다. 마치 예언 혹은 신탁처럼.


첫 예언은 사귀기 전 학교 후문 근처 카페에서 내려졌다. 2학기 교환학생에 합격한 뒤, 학기 시작 전 유럽여행을 계획하던 B는 내게 오스트리아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비엔나의 오래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에곤 쉴레와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그만 "같이 가자"라고 말해버렸다. 사귀기 전의 남녀가 같이 여행이라니, 그것도 단 둘이. 지금에서야 당돌한 후배의 직진 정도로 웃어넘기지만 그때의 발언은 꽤나 진심이었다. 당시에 같이 오스트리아를 가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나 역시 혼자 오스트리아에 여행을 왔으니 어쩌면 그때의 대화는 반쯤 은유적인 신탁이었을지도 모른다.


"슬로베니아를 선택한 이유가 뭐야?" 아시아인이 동유럽의 소국 슬로베니아로 교환학생을 오게 되면 꼭 듣는 질문이다. 통상적인 질문이기도 하지만, 아시아인이 흔치 않은 슬로베니아에 정말로 왜 왔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질문엔 항상 "여자친구 덕분에 왔어"라고 대답한다. 사실 1 지망 대학교는 류블랴나 대학교가 아니었다. 독일에 있는 두 학교를 1, 2 지망으로 선택하고 류블랴나 대학교를 마지막 3 지망에 지원했는데, 두 학교는 떨어지고 류블랴나 대학교로 결정이 된 것이다. 이곳에 오려고 부단히 노력을 한 것도, 간절히 원한 것도 아닌데 덜컥 류블랴나 대학교에 붙어버렸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그가 교환학생을 다녀온 곳이 바로 류블랴나 대학교다. 


그와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에서 만나 같은 이중전공을 공유했고, 같은 해외 대학교에서 교환 학기를 보냈으며, 그가 다녔던 유럽 도시를 여행한다. 그가 류블랴나에서 좋아했던 카페, 식당을 방문하고, 그가 걸었던 캠퍼스 길을 따라 걷는다. 그러나 우린 단 한 번도 '동시에'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그는 학교를 쉬었고, 그가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졸업할 때까지 나는 군대에 있었다. 4학년이 되고 뒤늦게 교환학생을 같은 학교로 온 지금 그는 동남아시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동일한 공간을 공유하지만 시간은 항상 어긋난다. 나는 그를 따라간다. 멀리 떨어진 달의 인력처럼, 고대 문명의 흔적을 추적하는 고고학자처럼. 그는 개척자다. 내가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항상 먼저 도착해 버린다. 나는 한 발 늦은 이주민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가 경험했던 것들을 내가 뒤늦게 경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발설하는 그의 경험은 나의 귀중한 신탁이 되고, 내 자유의지는 강력한 운명론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기꺼이 그의 고고학자가 되었다. 4년 전, B는 외상 한 커피값을 내기 위해 다음 날 카페에 방문했다. 자연스럽게 커피를 주문하겠냐고 물어보는 카페 마스터의 따듯함에 흐물흐물해진 그는 그 카페의 단골이 되었다. 나는 카페와 가까운 인문학부에 수업이 있는 날 낮이면 책 한 권을 들고 그가 외상 했던 그 카페에 방문한다. 희끗한 수염을 독특하게 기르고 캐주얼한 옷을 입은 중년의 카페 사장님은 여전히 편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음 놓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좋다던 뷔페식 중국집은 나같이 배고픈 학생들로 여전히 붐빈다. 류블랴나 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프란츠 카프카의 <성>에 나오는 성처럼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슬로베니아의 11월은 여전히 비가 장대처럼 쏟아진다. 


류블랴나, 슬로베니아의 수도. 20만 인구의 아주 작은 도시. 그 흔한 스타벅스도 KFC도 없고, 기숙사에서 시티 센터까지 걸어서 왕복 1시간 30분이 걸리는, 대중교통이라곤 불편한 버스밖에 없는 지극히 평화롭고 지루한 도시. 그러나 서울을 떠나 낯선 이곳에서 홀로 지내며 불안함과 설렘을 절실히 느꼈을 그를 떠올리고 상상하며 그의 발자취를 탐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잔잔하고 단단한 그와 참 닮은 류블랴나. 미리 Adio.



Ps. 류블랴나의 이름이 슬로베니아어로 "사랑스러운(Ljublj)"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동행에 대한 짧은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