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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NCR Jul 15. 2023

앵클브레이크의 영광

40대의 길거리 농구 ep.4

 농구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드는 장면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앵클브레이크(ankle-breaker)와 인유어페이스덩크(in your face dunk)이다.

 앵클브레이크는 화려한 드리블로 수비를 완전히 헷갈리게 만들어 수비수가 혼자서 넘어져 버리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공격수가 오른쪽으로 돌파할 듯이 파고들다가 한순간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면 수비수는 오른쪽으로 따라가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막으려다 넘어지는 상황 같은 것이다. 진짜 멋진 영상에서는 마치 염력을 쓴 듯이 수비수가 혼자 튕겨져 나가 버리기도 한다. 현란하고 기술적인 드리블의 상징이자 수비수에게는 굴욕인 장면인 것이다. 수비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 있다. 오프암을 썼다는 논란도 있지만 마이클 조던의 1998년 유타 재즈와의 파이널 6차전에서의 그 마지막 슛도 앵클 브레이크 이후에 나온다. 하여튼 그분은 뭘 해도 그림이다.

그 마지막 슛 장면 직전 상황. 마이클 조던은 여기서 크로스오버 후에 풀업 점퍼를 쏘고 수비수 브라이언 러셀은 조던의 오른쪽으로 미끄러져 버린다.

 인유어페이스덩크는 말 그대로 상대에 얼굴에 덩크를 꽂는 것이다. 덩크를 막기 위해 수비가 림을 막아서지만 그 위로 덩크를 꽂아 넣는 플레이. 엄청난 운동 능력과 과감함, 파워의 상징과도 같은 플레이다. 코비가 그 커다란 야오밍을 넘어 꽂아버린 덩크는 지금 봐도 정말 멋있다.

 

 앵클브레이크와 인유어페이스 덩크, 둘 다 멋진 공격의 상징이지만 수비수에게는 굴욕인 장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동네 농구에서 덩크는 당연히 없으니 인유어페이스 덩크의 기분, 상황은 당연히 겪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앵클블레이크의 경우는 한 번씩 있다. 나도 당연히 강렬한 앵클브레이크의 기억이 있다. 슬프게도 앵클 브레이크를 당한 기억이지만.

  길거리 농구라 해도 가끔 진짜 경기가 격렬해질 때가 있다. 파이팅 넘치는 캐릭터들이랑 같이 게임을 뛸 때,  팀 전력이 서로 엇비슷하면 정말 격렬하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을 하게 된다. 그날도 그런 상황이었는데 내 매치업 상대는 확실히 나보다 한수위였다. 슛도 좋았고 드리블도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질 수 없었기에 악착같이 1:1을 붙었다. 나도 운동 능력은 달리지만 경험과 눈치는 있다. 슬램덩크에서도 채치수가 말하지 않았나. 수비는 경험이다.

 ‘그래. 여기서는 페이크, 그렇지 여기서는 왼쪽, 여기서는 슛, 니가 아무리 빨라도 어디로 갈지는 예측할 수 있다구! 나이 많다고 무시하지 마.’ 

 내 모든 집중력을 끝까지 올려서 성공적인 수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진짜 순간이었다. 아마도 돌파라 생각했는데 풀업 슛을 당한 순간이었나. 마법 기술을 당한 것처럼 허리가 삐끗하더니  몸이 순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것 보다 확실한 앵클브레이크는 없었다. 아무런 동작을 하지 않았는데 코어 근육이 완전히 삐어버린 것이다. 순간 들었던 생각은 ‘당했구나’였다. 넘어지진 않았지만 난 완전히 앵클브레이크를 넘어 백브레이크(back-break)를 당해버린 것이었다.  파울을 당한 것도 아니고 몸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수비를 하다가 혼자 우스꽝스럽게 삐끗한 상황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이후에는 제대로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어 겨우 게임을 마쳤다. 너무 무리하게 수비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날 난 나보다 잘하는 상대로 수비를 너무 열심히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NBA에서 수비자가 앵클 브레이크를 당할 때는 보통 상대팀의 에이스 가드를 상대한 상황이다. 최강의 상대  에이스를 어떻게든 제대로 막아보고자 할 때. 수비 의욕이 최고조일 때. 그때의 수비수 모습을 자세히 보면 진짜 악착같다. 마이클 조던의 그 마지막 슛 전에 나온 앵클 브레이크도 내가 이 최고의 선수를 꼭 막아내야만 한다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수비로서 가장 굴욕적일 수 있는 순간은 사실 최고의 집중력과 근성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실력자를 상대할 때  만약 적당히 거리를 두고 수비를 한다면, 내가 뚫리더라도 뒤에 누군가가 헬프가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면, 이미 늦었어 줄 것은 그냥 주자 하면서 몸을 사린다면 굴욕의 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어떻게든 내가 막겠다고 용기 있게 다가설 때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굴욕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슬프고 조금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강자를 상대로 용기 있게 노력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완전히 당해서 넘어져 버린 내 모습이라니. 

 하지만 살아갈수록 난 그런 게 왠지 더 멋있게 느껴진다. 강한 상대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주인공이라니 왠지 낭만도 있어 보이고 괜히 비장함도 느껴진다. 사실 그렇다. 잘하고 성공하고 이기는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 그냥 돌아오는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나. 하지만 덤벼보고 도전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굴욕을 감수하고라도 그런 선택을 하는 자체로 이미 좀 멋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앵클브레이크라는 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도전을 상징하는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언제나 어려운 도전을 할 수는 없고 그럴 나이도 조금 지난 듯하다. 그래도 부끄러운 결과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도전 없이 피하며 플레이하는 것은 아무래도 별로라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언제나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 

오늘도 키 크고 20년은 젊은 상대를 악착같이 수비해 본다. 앵클브레이크의 영광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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