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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NCR Jun 25. 2023

농구장에 가장 자주 나오는 사람.

40대의 길거리 농구 ep.3

 그 중국 유학생은 농구장에서 내가 제일 많이 본 녀석이다. 

 한쪽 농구대는 보통 중국 유학생들 차지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히 나와있는 친구였다. 방학이든 저녁 늦은 시간이든 내가 농구장에 갈 때마다 거의 항상 있었다. 코트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잘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특히 중국 유학생 무리들은 다들 실력이 상당했고 특히 기술이 뛰어났다. 농구를 꽤나 농구답게 하는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자주 나오는 그 친구는 사실 그런 쪽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전형적으로 투박하게 농구를 했다. 점프 동작도 엉성한 데다 슛도 거리에 상관없이 양손으로 던졌다. 농구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진짜 멋이 없다. 안타깝게도 투박한 외모와 짧은 다리와 어우러져서 더 폼이 안 났다. 아무리 동네 길거리 농구라지만 실력만큼 멋도 중요한 것이다. 

 그래도 플레이스타일 자체는 폭발력이 있어서 자기 몫은 충분히 하는 플레이어였다. 작은 키에도 저돌적이라 골밑에서 위협적이었고 단단한 체구에서 나오는 힘도 좋았다. 폼이 이상했기 때문에 슛 타이밍을 잡기 힘들어 수비하기 까다로웠고 슛이 실패하더라도 공격 리바운드를 잘 따내곤 했다. 딱 내가 상대하기 힘들어하는 타입이었다. 가끔 같이 게임을 하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스타일을 버린 것 같았다. 골대에서 떨어져서 플레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실력이 뛰어난 동료들 사이에서 작은 키로는 골밑 플레이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눈치가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느 순간 본인도 스스로의 투박한 스타일이 싫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처럼 부드럽고 우아하게, 농구를 농구답게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그의 림 어택시에 잦은 트레블링을 지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원래의 터프한 스타일은 온대 간데없고 소프트하게 어정쩡한 거리에서 슛만 던지는 스타일이 되어 있었다. 불행히도 점프슛은 그의 장점과는 거리가 멀었다. 슛만 던지는 러셀 웨스트브룩이랄까. 영 이전보다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NBA 2016-17시즌 MVP까지 차지했었던 러셀 웨스트브룩. 비교적 작은 키에도 동물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한 파워풀하고 저돌적인 플레이가 강점이지만 슛의 기복은 심하다.


 이전엔 ‘저렇게 멋없이 저돌적으로만 농구하면 별로야.’ 하며 같이 플레이하기 싫어하던 타입이었는데 소프트하게 바뀌어서 이도 저도 아닌 요즘의 모습을 보니 괜히 눈에 밟힌다. 당연히 그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친해서도 아니다. 꽤나 내성적인 내 성격으로는 말도 잘 안 통하는 유학생들과 대화 한번 나누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친구가 그 누구보다 자주 농구장에 나오는 애라는 것. 그 사실이 나를 괜히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진짜 취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할 일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농구 코트에 그 누구보다 자주 나와서 농구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농구를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난 잘 알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농구를 좋아한다면, 지금의 어정쩡한 모습보다는 더 잘할 자격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꼭 이전의 터프한 그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좋다. 좀 더 자신감 있게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누구보다 코트에서  긴 시간을 보낸 사람은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농구를 과감하게 할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손가락 골절 후 6주가 지났다. 다행히 스플린트를 풀 수 있게 되었다. 게임을 하기엔 아직 부담스러워 저녁 늦게, 코트 불 꺼지기 30분 전 개인 연습을 하러 나갔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그 친구는 나와 있다. 친구랑 둘이 일대일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꽤나 드리블 돌파가 부드럽고 레이업도 자연스럽다. 그래 그거지! 점점 실력이 늘어서 좋아하는 농구를 더 자신 있게, 재밌게 하기를. 오늘도 멀리서 대화 한번 해보지 못한 그 친구를 맘속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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