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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석가 Nov 12. 2019

박학多食 01.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파스타

파스타학개론 그 첫 번째 이야기

    초등학생 시절 내 마음속의 급식 메뉴 넘버원은 토마토 스파게티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이 퉁퉁 불어버린 면발과 식어서 미지근해진 토마토소스는 어린아이의 입맛에도 다소 투박했지만, 방긋 웃고 있는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포크로 스파게티 면을 입안 한가득 넣는 순간 모든 것이 상관 없어지곤 했다. 불어버렸지만 매끈한 면발에 어쩌다 한 번씩 잘근잘근 씹히는 간 고기, 그리고 세상 고소한 파마산 치즈까지. 유럽에도 가본 적 없고, 음식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나에겐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는 수요일 오후의 2학년 4반 교실이 바로 이탈리아였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이 "급식 파스타"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귀찮음을 이겨내고 부엌에 있는 스파게티 면, 케첩, 피망, 그리고 비엔나소시지를 꺼내서 나폴리탄을 겨우겨우 해 먹은 다음, 올챙이배가 된 채로 소파에 앉아 "역시 파스타는 맛있어"라는 혼잣말로 나른한 오후를 마무리하곤 한다. 


    하지만 한낱 초등학교 급식으로 나온 불어 터진 토마토 스파게티나, 귀찮음과 피곤함을 핑계로 15분 만에 뚝딱 만들어버린 나폴리탄을 과연 "파스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비교적 쉬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 친구들에게 "파스타"라는 칭호를 선뜻 내려주기엔 어딘가에서 자부심과 긍지로 파스타를 요리하고 연구하고 계실 셰프님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실 파스타라는 친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겸손하고 넉살도 좋은 친구다. 발음하기는커녕 읽기도 어려운 이름, 때론 난해한 맛, 그리고 고급스러운 생김새 때문에 우리 집 식탁보다는 값 비싼 이탈리안 레스토랑 테이블 위가 더 잘 어울리는 듯한 파스타. 


    그러나 막상 알고 보면 만들기도 쉽고, 놀랄 만큼 흔한 (특히 서양에서) 음식이 바로 파스타다. 이번 글에서는 파스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간단하게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식탁 위 파스타 (Pasta)가 더 이상 머나먼 별 (Far Star)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맞다. 굉장히 심혈을 기울인 문장이다.)

일단 맛은 있는데... 이 나폴리탄을 과연 "파스타"라고 할 수 있을까?

    파스타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면, 파스타란 무엇인가부터 정확히 알고 넘어가야 한다. 알리오 에 올리오 (aglio e olio), 페스카토레 (Pescatore), 아라비아타 (Arrabbiata)같이 복잡하고 번지르르한 이름들을 내세운 "파스타"는 사실 적당히 잘린 밀가루 반죽에 각종 양념과 재료를 곁들인 모든 음식의 통칭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당히 잘린 밀가루 반죽이란 비단 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파게티 (Spaghetti)와 페투치네 (Fettucine)등의 면은 물론이고 얇은 밀가루 반죽 안에 속이 차있는 라비올리 (Ravioli)와 반죽을 종이처럼 넓게 펴서 만드는 라자냐 (Lasagne) 또한 파스타라고 할 수 있다. 


    샐러드바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마카로니도, 수요일 급식으로 나왔던 토마토 스파게티도, 나른한 주말 오후에 대충 만들어버린 나폴리탄도, 그리고 우리나라 음식인 수제비와 라면도 엄밀히 따지면 파스타인 것이다.

"점심 뭐 먹었어? 난 간단하게 파스타(?) 해 먹었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때문에 이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파스타가 존재한다. 수제비와 라면 같은 이른바 "엄밀히-따지면-파스타"들을 제외하더라도, 수백 가지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파스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주방, 누군가의 팬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파스타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파스타는 파스타에 들어가는 반죽, 소스, 재료에 따라서 다르게 분류되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파스타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파스타에 이름을 붙일 때는 보통 아래의 공식을 사용한다.


[파스타 = 반죽의 종류+alla+소스/주방장/지역]

    

    불쑥 튀어나온 이탈리아어에 당황하지 않으셔도 된다. "alla"는 번역하자면 "~ to the ~" 혹은 "~을/를 ~에"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Spaghetti alla Carbonara"는 스파게티 (Spaghetti)를 까르보나라 (Carbonara)에 라는 뜻으로, 까르보나라 소스에 스파게티 면을 사용한 파스타를 칭한다. “alla"대신 "al" 또는 "ai"등이 쓰일 때도 있지만 "alla"와 다른 형태일 뿐, 결국 모두 같은 뜻으로 쓰이는 단어들이니까 안심하시라. 

    

    이제 "너"와 "여기"를 뜻하는 단어들만 외우면 로마 시내 한복판에서 갑작스레 이탈리어로 고백해야 되는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방금 막 새로운 정보를 흡수한 뇌를 위한 가벼운 농담이다.

"너 alla 여기" = "이 안에... 너 있다." [로마의 연인]의 주인공이 되어보자.

     "e"와 "di" 또는 "con"이 쓰일 때도 있다. "e"는 "그리고 (and)"라는 뜻이고, "di"는 "~의 (of)"라는 뜻, 그리고 "con"은 "~와 (with)"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Cavatelli con sugo e cacioricotta"는 수고 소스 (sugo) 카치오리코타 치즈 (cacioricotta)를 카바텔리 (Cavatelli) 면과 곁들인 파스타, 그리고 "Lorighittas con sugo di pollo"는 닭고기 (pollo)가 들어간 수고 소스 (sugo)를 로리기타스 (Lorighittas) 면과 곁들인 파스타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알리오 에 올리오 (aglio e olio)도 이름 자체는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마늘 (aglio) 기름 (olio)"이라는 뜻이다 (우리 머릿속의 그 파스타는 "Spaghetti aglio e olio"다). 이 세 단어들이 각각 언제 쓰이는지에 대한 기준은 다소 모호해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간단한 재료들의 이탈리아 명칭과 이 단어들의 뜻만 알아둔다면 적어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소개팅 상대를 앞에 두고 파스타를 주문해야 할 때 식은땀이 흐르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늘과 기름이라고 합니다.

    파스타는 어려운 음식이다. 고급스러운 이름 뒤에 다양한 재료들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맛. 하지만 파스타는 참 쉬운 음식이기도 하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먼저 다가갈 용기를 보이면 어떤 반죽, 어떤 재료, 어떤 소스가 들어가도 항상 평균 이상의 맛은 보장해주는 고마운 음식이 파스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의 점심으로 "Spaghetti alla Bolognese"라는 파스타를 직접 해 먹어 보려고 한다. 토마토와 간 고기의 풍미가 듬뿍 담겨있는 볼로네이즈 (Bolognese) 소스와 길쭉하고 탱탱한 스파게티 (Spaghetti) 면이 아름답게 조화되는 그 파스타. 꼬마였던 나를 이탈리아 도시 한복판으로 데려가 줬던 바로 그 파스타.

    

    그렇다. 나의 오늘 점심 메뉴는 "급식 파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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