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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석가 Dec 02. 2019

박학多食 03.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칠면조

미국 추수감사절의 프리마 돈나 칠면조 파헤치기

    어릴 때 보던 만화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꼭 먹어보고 싶던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 쇼타가 만든 전설의 "황금 고등어 초밥", [네모네모 스펀지 송]에서 나오는 비키니 시 유명 맛집 버거 천국호의 대표 메뉴인 "게살 버거", 그리고 [미래소년 코난]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 "만화 고기"까지.


    비록 황금 고등어 초밥과 스펀지 송이 직접 만든 게살 버거를 현실에서 먹어 볼 수는 없지만, "만화 고기"와 비슷한 음식은 있다. 오늘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인 "Thanksgiving Day"만 되면 저녁 식탁 위의 근사한 프리마 돈나로 화려하게 탈바꿈하는 칠면조 (Turkey)와 미국의 추수 감사절 음식들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스펀지 송이 정성을 담아 만든 게살 버거. 왠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버거일 것 같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정확히 정해진 날짜가 없다. 대신 매년 11월 네 번째 주 목요일이 추수감사절로 정해져 있다. 때문에 보통 10월 말 핼러윈 시즌이 끝나고, 아니면 늦어도 11월 초가 되면 대부분의 식료품점과 마트는 추수감사절 테마로 매장을 도배한 후 칠면조 코너를 따로 만들어둔다.


    언뜻 명절 시즌에 흔히 보이는 상술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추수감사절 저녁 식탁에 올릴 칠면조를 미리 사두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고, 실제로 추수감사절 직전까지 기다렸다간 품질이 좋지 않은 칠면조만 남는 경우가 다반사다. 칠면조를 아예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 하필 칠면조일까? 다소 퍽퍽한 칠면조보다는 닭이 구하기도 쉽고, 조리하기도 쉬운데 말이다 (칠면조를 제대로 조리하려면 큰 오븐이 필수다). 역사책을 조금 뒤져보면 다른 고기가 아닌 칠면조를 먹는 이유가 나와있다.


    칠면조는 1863년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국가의 공식 명절로 지정했을 때 추수감사절에 먹는 음식으로 지정되었다. 이유는 1) 칠면조가 북아메리카 출신 조류이고, 2) 식민지 개척자들이 그들의 추수감사절에 야생 칠면조를 사냥해서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3) 한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 고기가 많이 나오는 조류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와 닭과 달리 칠면조에게선 우유나 달걀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낭비의 느낌이 다소 적어 보였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돼지고기는 칠면조 고기에 비해 너무 흔해서 탈락했다는 슬픈 전설(?)도 있다.

깃털 밑이 전부 살이다.

    추수감사절의 칠면조 요리는 단지 칠면조를 오븐에 넣어서 굽는 칠면조 구이가 아니다. 마치 한국의 삼계탕처럼 칠면조의 속을 스터핑 (Stuffing)으로 꽉꽉 채우는데, 이 스터핑은 빵조각, 다진 양파, 샐러리, 그리고 각종 허브와 양념들을 섞어서 만든다. 만두 속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스터핑으로 가득 채워 한껏 무거워진 칠면조를 오븐 안에 넣고 나면, 이제 다른 음식들을 준비할 차례다. 이 음식들은 "주연급" 음식들은 아니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위해서나, 맛의 균형을 위해서나 추수감사절 식탁에 웬만하면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들이다.


    상황에 따라 생략될 때도 있지만 매시드 포테이토 (Mashed potatoes)와 그레이비 (Gravy) 소스, 옥수수, 크랜베리 소스, 그리고 호박파이와 피칸파이는 언제나 칠면조와 함께 식탁 위에 올라간다.


    매시드 포테이토와 옥수수는 그 해 수확한 농산물들의 대표 격이며, 크랜베리 소스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정착한 뉴 잉글랜드에서 수확한 크랜베리를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만든 상징적인 음식이고, 호박파이와 피칸파이는 그 당시 파이를 만들 수 없던 개척자들이 호박과 피칸으로 만든 음식의 후계자 들이다.


    담백한 음식들 (칠면조, 매시드 포테이토)과 달짝지근한 음식들 (크랜베리 소스, 호박&피칸파이)을 함께 먹는다는 게 생소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의외로 맛의 궁합이 잘 어울린다.


    칠면조와 감자로 입 안이 텁텁해졌을 때 새콤달콤한 크랜베리 소스를 한 스푼 입안에 넣어주면 입안이 개운하고 촉촉해진다. 건빵과 별사탕 같은 조합이랄까. 식사를 마치고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크림처럼 부드러운 호박파이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개척자들의 맛"이지만 굉장히 맛있다.

    한국에선 접하기 힘든 음식들이지만 이태원에 있는 몇몇 미국 음식 전문점에서는 이맘때쯤 추수감사절 음식들을 판매하곤 한다. 지금이라도 이태원으로 가서 미국 식민지 개척자들이 느꼈던 그때 그 맛을 비슷하게나마 체험해보는 건 어떨까. 아, 식사 후 디저트로는 이태원 거리에서 판매하는 터키 전통 아이스크림을 추천한다. 터키 (칠면조)로 시작해서 터키로 끝나는 완벽한 하루를 보내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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