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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석가 Apr 23. 2020

미석가 LAB 01. 달고나 커피

달콤한 일탈, 달고나 커피를 만들며 겪은 시행착오

SNS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빨리 피고 지는 유행들을 보며 덧없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태껏 SNS를 스쳐갔던 수많은 컬트적 음식들도 시큰둥하게 보며 지내왔다. 보기엔 예쁘지만 막상 직접 만들기는 어렵고 귀찮은, 소위 말하는 그림의 떡으로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유행한 달고나 커피는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커피, 설탕, 물, 그리고 우유라는 간단한 재료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혀가 매일같이 마시는 평범한 커피에서 벗어난 일탈을 원했기에.


하지만 달고나 커피를 만드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달고나 커피를 만들면서 겪은 시행착오에 대하여 써보고자 한다. 지금이라도 달고나 커피에 도전하시려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실수 1. 손으로 젓기


달고나 커피가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이유들 중 하나는 간단한 재료들을 손과 숟가락만 이용해서 꽤 그럴듯해 보이는 음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400번만 저으면 된다"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보며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했다.


무지이며 오만이었다.


저을 때마다 손목은 저려오고 정신은 아득해지는데, 그릇 안의 재료들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몇 번 저었는지는 이미 까먹은 지 오래. 젓기 시작한 지 30분 정도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개인적으로 달고나 커피를 일회성으로 만들고 끝내기보다는, 나의 요리 포트폴리오에 추가하여 주기적으로 만들어먹고 싶었기 때문에 만드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이토록 오래 걸린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작은 타협을 하기로 했다. 수플레 오믈렛을 만들어 먹을 때나 쓰던 핸드 믹서를 꺼내어 재료를 섞기 시작했다. 고작 2분 정도만에 재료들은 손으로 젓던 지난 30분간 도저히 볼 수 없었던 황갈색으로 변해있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라 했던가.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내 손목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핸드 믹서를 사용하자. (이미지 출처: KitchenAid 홈페이지)

실수 2. 커피 가루


달고나 커피를 만들기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커피 가루는 어떤 걸 쓰던 크게 상관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나 또한 마침 집에 있던 맥심 커피믹스를 사용했었다. (사실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사 오기 귀찮았다.)


결과는 실패. 커피믹스에 포함된 프림 때문인지 재료의 색은 변해도 내가 원하던 꾸덕꾸덕한 질감은 나오지 않았고, 재료가 컵 밑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린 "실패한 달고나 커피"가 되었다.


간 커피 (Ground coffee)는 어떨까? 인터넷을 살펴보니 간 커피로도 성공했다는 후기들이 보였다. 죽어도 밖에 나가 인스턴트커피를 사 오기 싫었던 나는 "이걸로도 되겠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간 커피와 다른 재료들을 넣고 섞기 시작했다.


어림도 없었다. 간 커피가루는 다른 재료들에 전혀 녹아들지 않았고, 결과물은 그저 커피가루가 둥둥 떠다니고 단 맛이 나는 정체불명의 검은색 액체였을 뿐이었다.


깊게 반성하며 곧바로 집 앞 슈퍼에 뛰어가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사 왔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커피, 설탕, 물을 넣고 섞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내가 원하던 색과 질감이 나왔다.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이 격하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 되는구나 싶다.

"유레카!" 인스턴트커피 가루가 들어간 순간 재료가 담긴 그릇은 아르키메데스의 욕조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medium.com/@vosai)

실수 3. 얼음의 양


달고나 커피 반죽(?)도 다 만들었으니, 이제 잔에 우유와 얼음을 넣고 위에 반죽을 얹기만 하면 완성이었다. 하지만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이 과정에서조차 나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아무리 반죽이 꾸덕해도 정말 우유에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컵에 얼음을 이 정도로 넣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넣었다. 혹시나 가라앉을 반죽을 얼음이 조금이라도 지탱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얼음이 중요하다는 몇몇 후기들을 보고 나니 더욱 그랬다.


완성된 달고나 커피에 숟가락을 꽂는 순간 실수란 걸 알았다. 얼음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반죽과 우유를 섞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실수 때문에 나는 반죽을 먼저 먹고 우유로 입가심을 해야 하는 기괴한 체험을 했다.


그래서 얼음을 한두 조각만 넣은 두 번째 잔을 만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드디어 내가 그토록 원하던 달고나 커피의 비주얼과 맛이 나왔다. 얼음은 그저 커피를 차갑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얼음을 아예 넣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완성된 미석가 표 달고나 커피. 구색을 갖추고자 달고나 맛 막대사탕을 올려보았다.

사실 커피 마니아들에게 달고나 커피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달고나 커피를 마셔보니 "질감이 다른 믹스커피"라는 생각이 들었고, 때문에 원두커피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평소 마시던 커피를 대체할 수 있는 음료라고 소개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커피"라기보다는 "커피맛 디저트"의 느낌이랄까. 나 또한 원두커피를 선호하기에 달고나 커피를 매일 아침 만들어 마시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직접 만들어보며 느낀 건 달고나 커피는 분명 매력적인 음료라는 것이다. 모두의 주방에 있을만한 간단한 재료들로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디저트 전문점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음료를 만드는 경험은 꽤나 재밌고 신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커피맛 디저트"는 항상 옳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상 (嘗: 맛볼 상)이다. 아직 달고나 커피를 맛보지 못한 분들은 한가한 주말 아침에 한 번쯤은 도전해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다.


아, 물론 핸드 믹서와 인스턴트커피가 준비되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P.S. 달고나 커피 만드는 법

1. 볼 (Bowl) 안에 인스턴트커피, 설탕, 뜨거운 물을 1:1:1 비율로 넣는다. 큰 숟가락 기준 2스푼씩을 추천.

2. 핸드 믹서로 반죽이 꾸덕해질 때까지 섞는다. 빠른 속도 기준 보통 2분에서 3분 정도면 된다.

3. 우유를 컵의 60-70% 정도 붓고 숟가락으로 반죽을 퍼서 나머지를 채우면 완성.

4.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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