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 보이는 것들

환경을 바꾸고 나를 바꿀 때 다가오는 생각들

by Ring finger



여성의 날 맞이 우리들의 약속


3월 8일과 10월 20일. 베트남 사람들에게 발렌타인데이보다 크리스마스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날이다. 한국인에게 꽤 생소하던 이 날은 다름 아닌 국제 여성의 날과 베트남 여성의 날이다.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이 곳곳에 모여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녀들을 위해 남성들은 정성스레 준비한 꽃과 선물을 전달한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경우 남녀의 성비가 1:9에 가까울 정도로 여성 직원들의 수가 압도적인데 10월 20일만큼은 남자 직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나를 포함한 사무실의 여성 직원들에게 밀크티를 돌렸고 케이크와 다과를 마련한 작은 파티를 열어주었다. 또한 회사에서 전 여성 직원들을 위해 준비한 화장품 선물이 도착하자 직원들은 환호성을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이번 주말 와인 잔을 마주하고 세 명의 친구들과 둘러앉아 외국인으로서는 여전히 새롭던 그날의 풍경을 회고했다. 회사마다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유사하게 연인 관계를 넘어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축하하고 기념하는 중요한 날임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모처럼 되찾은 외출의 자유를 찾아, 나의 마지막 추억들을 나누기 위해 찾았던 하노이 최대의 중심지, 호안끼엠이 생각났다. 외국인이 한복을 입는 어색함과 비슷하겠지만 베트남에 머물었던 지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둔 아오자이를 각자 꺼내 입고 친구들과 이곳에서 만났다. 호수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다 보니 많은 인파들 속에서 우리처럼 아오자이를 입고 사진을 찍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워낙 오랜만의 자유로운 주말에 날씨도 나쁘지 않으니 다들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은 것이라 어림짐작했던 그날은 곧 다가올 여성의 날의 전야제였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시선이 쏠리는 부담 없이 계획했던 아오자이 사진 촬영을 마칠 수 있었고 하나둘씩 영업을 재개한 호안끼엠의 상점들에 들려 베트남을 기억할 만한 작은 선물들을 구매했다.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지난 2년의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곳에 온 현실적 이유였던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은 기획업무가 마무리되고 있었고,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의 성장과 도약을 위한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나를 긴장시켰던 이곳의 생경함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질 무렵, 이대로 멈추려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발렌타인 데이 쿼런틴 해제를 축하하던 자리에서 이런 결심을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전했다.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중국에서의 1년을 제외하고, 베트남에서의 지난 2년은 내게 직장인으로서 살아보는 첫 해외 경험이었다. 이미 20대부터 유학을 하거나 해외취업을 통해 미국과 유럽, 홍콩, 말레이시아 등의 아시아권까지 경험한 뒤 이곳에 온 친구들도 베트남 생활의 즐거움과 한계를 공감하며 내 고민과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그러다 최근 7월부터 9월까지 강도 높게 진행된 도시 봉쇄는 계약 만료 시점을 앞두고 연장을 고민 중이던 두 친구의 귀국과 제3의 나라로 이직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미 이곳에서 4년을 보낸 두 친구까지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되자 또 한 명의 친구도 필수 주재기간인 3년이 도래하는 내년 중순 이후를 고민해보고 있다. 지난 시간 우리가 함께했던 여행지와 하노이 곳곳의 사진들을 휴대용 프린터로 출력해 테이블에 펼쳐 놓고 그 공간과 음식과 추억들을 회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 선명한 LED 액정 속의 화면이 조그마한 흑백의 음영으로 만져지자 그때의 우리들도 이렇게 한 발자국 멀어지는 듯했다. 이곳을 떠난다면 그다음 우리가 향할 곳은 어디일까. 지금 품고 있는 삶의 방향을 계속 이어가도 좋은 걸까. 잔을 따라 깊어져 가는 고민 끝에 서로의 선택을 응원하며 우리들의 마지막 약속을 나눴다. 좀 더 안정된 시기에 각자의 거점을 따라 베트남 바깥 세계를 탐험을 함께할 것 (파트너를 동반하면 더 좋을 것),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 여성들을 위한 고리 세대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




세 번째 버스가 보이지 않을 지라도


어느덧 10년 차가 되어버린 직장과 가족과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을 떠나 방황하고 표류하다 코로나라는 모두를 놀라게 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간신히 정신을 차리던 지난 2년이었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가벼움으로 시작된 베트남 생활은 뜻밖에 내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고 당연하지 않았던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두 번째 버스가 되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얻은 지점에서 그만 버스를 멈추고 미지의 다음 영역을 바라보고자 엔딩을 준비했던 지난 한 달은 기대만큼 극적이지 않았다.


나를 취준생에서 회사원으로 만들어 준 첫 직장인 지금의 회사를 좋아한 적은 없지만 싫어한 적도 없었다. 지난 2년 본사와 한국을 떠나 조금 멀리에서 바라보며, 회사원으로서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언제까지 지금까지의 방식을 반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본격화되었다. 싫고 좋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방식에 앞으로도 동의할 수 있는가의 관점으로 나의 업을 객관 해보려 노력했고 '이직'이라는 진지해본 적 없는 단어를 품게 되었다. 그 대상과 방식은 다르더라도 새로운 페르소나를 발견하고 구현해내야 하는 관점의 유사성으로 '브랜딩'이란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직무를 내 일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겨났다. 너무 쉽게 확실해진 확신을 경계하지 못한 어리석음일까. 꽤 오랜 기간 고민 끝에 적어냈던 곳들에서 서류 탈락이란 메일을 받았다. 그들이 원하는 직접적인 이력과 경력 기간과 내 상황의 상이함을 인지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경력 이직이란 바로 투입되어 레디 없이도 액션 할 수 있는 사람과 직무의 매칭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난날 와인잔을 기울이다 BGM으로 소개한 밴드 ADOY의 음악을 계속 듣고 있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받았다. 나조차 안 지 얼마 안 된 밴드였지만 세련된 음악뿐 아니라 '커머셜 인디'라는 당당한 컨셉에 호감이 갔다. 월급 독립만세를 외칠 수 있는 당당한 프리랜서 유공자가 되기 위해 갈구하는 경제적 자유. 그 자유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무수한 귀찮음과 절망, 무력감과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사투 끝에야 만져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지난 2년의 떠남이 내게 보여준 것은 '스스로를 양육할 권리와 책임'이었다. 혼자라고 해서 돌볼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성숙한 '어른의 내'가 무너지고 넘어지는 '아이의 나'를 달래고 보살피고 챙겨가며 외면과 내면의 균형을 맞추어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호기롭게 들고 왔으나 여전히 반도 읽지 못한 다윈의 종의 기원. 이렇게 계속 적응과 일탈을 반복하며 살아도 좋을 것인가 자문하던 어느 날, 이 두꺼운 책의 한 구절에서 의외의 위로를 얻었다. 그 힘으로 다시 코로나 이후 처음 만나는 한국에서 새로운 버스를 기다리려 한다.


복잡하고 때때로 변화하는 생활환경이라는 조건으로 아무리 경미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 유기체에게 이로운 변이가 나타나게 되면, 그 유기체는 더 좋은 생존 기회를 부여받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자연에 의해 선택될 것이다. 선택된 변종은 대물림이라는 강력한 원리를 통해 새롭게 변화된 형태를 널리 전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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