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상실의 시대를 견디는 배달의 민족
동네 식당이 냉장고 속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베트남. 지난 5월부터 식당, 카페, 미용실의 영업이 제한되더니 7월부터는 마트, 슈퍼, 약국, 병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설이 셧다운 되었다. 원래도 대중교통이 미흡한 곳이었지만 이제 택시도, 오토바이 배달도 금지다.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외출은 주 2-3회 최소 인원으로 짜여진 출근표에 맞춰 텅 빈 오피스로 출근하는 것과 퇴근 후 슈퍼에 들려 물과 식료품 재고를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집으로 픽업을 오는 회사 차량에 올라 둘러보는 도시의 풍경은 매 길목을 가로막은 간이 검문소에서 외출 허가증을 두고 오가는 실랑이가 대부분이다. 이 동의한 적 없는 최소한의 생활에 무뎌져도 보지만, 결국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 서너 곳을 기점으로 한 약간의 서성거림이 매일 저녁의 소심한 탈출구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한국의 이태원을 닮았다. 도시 외국인의 30% 이상이 밀집한 곳으로 이국적 감성의 바와 브루어리, 와인샵, 수입 식료품 가게는 물론, 레바논, 이집트, 크로아티아 같은 한국에서도 흔치 않았던 다국적 오너의 동네 식당들이 즐비하다. 저녁 무렵이면 함께 어울리며 느슨해지던 동네 특유의 분위기는 이제 더는 없다. 가게를 닫고 배달마저 할 수 없게 된 이 오너들은 도시의 마지막 보루 '동네 슈퍼'로 향했고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남겼다. 내가 좋아한 아메리칸 스타일 피자는 2조각씩 패키징 되어 냉동고로 이사 왔고, 시도해보지 않았던 중동 식당의 후무스와 팔라펠을 냉장고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러자 젤라또와 조각케익 샵이 뒤를 이었다. 지루한 일상에 돌을 던지는 충동구매의 설렘 속에서도 일일이 손글씨로 적힌 제조 일자와 유효 기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 오프라인 플랫폼은 주로 외국계인 기업형 체인점이 아닌 로컬 주민의 개인 슈퍼였다는 점이다. 얼마의 커미션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위기의 순간에도 상생은 실현되고 있다.
다소 형평성에 어긋나는 듯 하지만 온라인 상거래에 대한 배달은 지속되고 있다. 올해 봄 문을 연 집 근처의 디자인 소품샵을 참 많이 아꼈다. 자주 방문하다 보니 패션 매거진 출신의 캐나다인 오너도 알게 되었고 급격히 나빠진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현실 고민도 나눴다. 곧 그녀는 자체 온라인몰을 런칭했고 나처럼 가까이 사는 고객에겐 직접 물건을 배달해주기도 했으며, 락 다운 기간 동안 구매조건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을 진행하고 있다. 실크 마스크, 비즈 마스크 홀더, 오가닉 손소독제 등을 모은 '락다운 서바이벌 키트'도 구성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서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는 친구들도 그들만의 예술창작 활동을 위한 온라인 구매를 멈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 기본형을 구매하여 본인의 취향에 맞게 채색을 하고, 점토 공예로 그릇과 귀걸이를 만들고, 1,000 피스짜리 퍼즐 그림을 완성하는 당연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상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유에 대하여
내가 있는 북쪽에 비해 남쪽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재 호치민은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식료품 구입에 한해 주 1회 외출만 허하고 있다. 확진자 숫자가 높은 지역은 이 마저도 불가하고 군에서 식량을 배급하는 상황이다. 지난 몇 달간 베트남 정부의 코로나 대응 지침은 주로 일요일 저녁 페이스북과 언론매체를 통해 공지하고, 다음 날 06시부터 바로 시행하는 급진적 소통이었다. 통제가 완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조한 주말을 보내지만 매 2주마다 늦은 저녁의 연장 공지가 반복되고 있다. 예측 불가의 상황 속에서 미처 갱신하지 못한 외출 허가증을 들고 월요일을 맞은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검문소가 가로막는 웃지 못할 불합리한 헤프닝도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 초년도였던 지난해 2020년의 베트남은 좀 달랐다. 한 달간 현 수준과 유사한 락다운 이후 기본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속되었지만, 국내선이 정상 운행되었고 유명 관광지와 호텔에서 일부 내국인들은 외국 관광객이 없는 특수기의 여유로움을 누리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 수가 급증하던 시기에도 한 동안 베트남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는 '0'이었다. 그러던 베트남이 올해 4월 연휴 이후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2년간의 베트남 생활에서 어쩌면 깊게 체감하지 못했을 사회주의라는 체제를 코로나 이후의 일상에서 통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 6월 탈북자로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공부했던 박연미 씨와 조던 피터슨 교수의 인터뷰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정치적 올바름 (PC, Political Correctness)의 선전수단이 되어버린 아이비리그 인문학계에 대한 그녀의 고백은 상상 이상이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말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그녀는 스스로를 검열하며 생각하는 방식을 주입하려는 대학에서 본인이 정말 자유로워진 것일까라는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탈출한 그녀는 말한다. 자유는 깨지기 쉬운 것이며 항상 그곳에 당연히 서 있는 것이 아님을. 그렇다. 베트남의 이방인으로도, 한국의 자국민으로서도 배달과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