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피의 자부심 '인프심'으로 충만한 삶을 꿈꾸며
MBTI를 향한 사랑 혹은 집착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유행인 줄 알았다. 이따금 다른 유형이 나올 땐 역시 절대적인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Because we're INFP"란 한 마디에. 일에 대한 열정은 싸늘해지고 내 것이라 믿었던 것들은 초라한 요즘을 토로하자 돌아온 말이었다. 게으름과 싸우며 겨우 접속한 화상영어 앱에서 오랜만에 만난 캐나다인 튜터가 불러준 잊혀진 이름. 단지 네 글자로부터 전해지는 위로와 공감이었다. 불현듯 그날이 떠올랐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수업시간에 뭐든 말은 해야겠어서 부끄럽지만 내겐 따뜻했던 그 시간을 설명했다. 가벼운 심리테스트인 줄 알았는데 결과에 대한 설명을 따라갈수록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는, 놀라움을 넘어선 경이로운 순간이었다고 말이다. 깜깜한 우주 속을 둥둥 떠다니다 비로소 나와 같은 사람들 속으로 안착하는 낯선 평화의 감각이었다. 보통의 하나이길 강요하는 '틀'을 최소 무시함으로써 인정하지 않았던, 그러기에 자주 불안했던 내게 찾아온 '자발적 소속감'. 격양된 어조의 말들이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시크한 척 비관적이던 그도 마침내 허물어짐을 느꼈다. 나무위키 통계에 따르면 MBTI 16개 성격유형 중 INFP 글의 별 (좋아요)이 가장 많다. 최초로 세 자릿수를 달성했다. 우리에겐 그리 쉽지 않았던 '이해받는 경험'은 생각보다 더 소중했고 강렬했다.
※ MBTI가 낯설거나 가물가물 하시다면
- 20세기 스위스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브 융'이 제시한 심리 유형론 기반의 성격유형검사
- 다소 논란은 있습니다만 온라인 기준 60개 문항으로 다음 4가지 기준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체적이며 이타적인 창조적 에고이스트
이 느닷없는 설렘은 블로그와 브런치와 구글의 연쇄적 디깅으로 향했고 '열정적인 중재자', '잔다르크형'으로 묘사되는 인프피의 형성 과정을 납득하고 싶다는 충동으로 이어졌다. 그 시작은 '왜 인프피는 이타적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내면에 집중하던 에너지가 '타자'라는 외부를 향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인프피적 사고와 행동의 근원으로, 결국 우리를 지배하고 마는 '신념'에서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고요한 인프피의 마음에 열정을 불어넣는 이 신념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거나 강제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신념은 인프피에게 아무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 관습과 강요, 꼰대와 마초는 인프피의 최대 빌런이다. 인프피는 객관적 사실 너머의 존재를 믿으며 보이지 않는 이면의 관계와 의미에 매혹당하는 존재다. 이 가공할만한 주체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조적 욕망을 발현시킨 그들만의 최초이자 최소 세계가 바로 '신념'이다.
신념의 탄생 이후 인프피는 이 신념에 입각한 세계의 건설과 확장을 꿈꾼다. 그 동력이 '나' 자신이라면 자원과 자재는 '내 밖'에 있다. 이렇게 상이한 위치의 인식으로부터 인프피는 내향형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탐색과 관찰에 꽤 많은 에너지를 분산 투자하는 전략적 이타성을 획득한 것이 아닐까. 내 세계의 자유를 위해 내면의 에너지를 힘껏 모아 외부세계를 들이마시고 신념이 승인한 세계를 내쉰다.
의미와 보람의 숭배자, 그래서 필요한 타인
친절하고 이타적인 평화주의자, 인간의 도적적 양심과 선을 믿는 낙관주의자, 헌신과 배려, 신뢰의 아이콘.
몰래 눈물은 훔칠지언정 제법 퉁명스럽게 퇴화된 내겐 너무 과분한 인프피의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형의 것들을 내 가치관의 최상단에 배치하여 제법 견고한 신념의 탑을 세웠음은 부정할 수 없다. 신념을 만들고 그 신념에 지배도 당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신념과 나 사이의 간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착함은 인프피의 기본값 (Default) 일까'라는 두 번째 질문이 생겼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수줍은 인프피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신념의 컬러가 이상적이고 실현하기 어려운 만큼 진정 이 세계에 입장이 허락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프피는 타인과 외부세계를 갈망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프피의 복잡함과 약간의 변태스러움이다. 인프피의 인프피에 의한 인프피를 위한 세계의 건설과 확장은 인프피의 지상 과제이자 최고의 놀이이다. 그러나 그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자재는 내 밖에 있기에, 인프피로서는 탐구 대상인 다수의 타인을 잡아둘 만한 일종의 트릭으로 '착함'의 이미지가 필요했던 건 아닐지 의심해본다. 유독 활발한 인프피의 온라인 활동과 책, 영화에 대한 깊은 몰입도 그 대안적 성격을 띠는 듯하다. 그렇게 인프피는 호기심 충만한 집순이와 집돌이가 된다.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두 가지 질문에 하루를 온통 쏟아내고 나니, 대체 나는 왜 이렇게 가볍고 쿨하지 못할까 라는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진절머리 날 지경의 진지함과 고집. 어쩔 수 없다. '대충, 적당히, 무난하게'가 죄악이 돼버리는 내 세계에서는. 스스로 자처한 고난과 노동에의 의미 부여와 보람. 그리고 많은 경우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타인이 존재할 때 도출되는 결괏값이다. 그래서 인프피는 또 타인을 갈망한다. 결국 신념과 의미야말로 인프피를 인프피로 살게 하는 본질적인 두 개의 축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자기만의 세계 형성에 이토록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는 인프피의 엉덩이는 꽤 무겁다. 실행력과 현실감각의 부족, 비판과 비난에 취약한 여린 가슴까지 안고 있다. 자본주의의 가치마저 등한시하는 인프피는 모든 성격 유형 중 가장 낮은 소득이 예상되는 캐릭터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인프피에게 추천되는 직업은 예술가다. 나 역시 그런 꿈을 꿨었고 여전히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인프피 운명의 잔인함이 있다. 인프피 유명인사의 리스트는 더없이 화려하다. 셰익스피어, 생떽쥐베리, 조니 뎁, 아이유, 조승우, 심지어 빨간머리 앤까지. 가장 본능에 충실한 삶으로서의 예술가를 품어보지 않은 인프피가 과연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인프피라도 안다. 재물의 부족보다 견디기 힘든 건 재능의 부족이라는 걸. 인프피도 다 같은 인프피가 아니라는 걸.
재능과 열정과 용기와 성실의 부족으로 나는 보통의 인프피라는 내 현실을 받아들였다. 월급에 저당 잡힌 시간 또한 살아내기 위해 내게 희박했던 외향 (E), 감각 (S), 사고 (T), 판단 (J)의 불씨를 조금이라도 살려야 했다. 그 몸부림이 어느 집단에서는 꽤 그럴싸한 논리와 전략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본성에도, 후성에도 어딘지 점차 애매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불안이 게으른 나를 브런치로 다시 이끌었다.
MBTI의 그녀도 인프피였다
위 사진 속 안경 낀 어머니는 캐서린 쿡 브릭스, 오른편의 아이는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로 MBTI (Myers-Briggs-Tye Indicator)를 만든 두 여인이다. 캐서린은 INFJ (인프피의 절친), 이자벨은 INFP였다고 전해진다. 다시 한번 처음 인프피 결과문을 탐독하던 환희의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 순간을 선사해준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물론 이자벨은 Another level의 인프피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도 지독한 자기애와 완벽에의 집착과 약간의 외로움 같은 본성의 그늘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려 애쓴 한 사람의 인프피라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특질과 극단성을 이해하고 세상과 조율하는 성숙함으로 내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MBTI를 남겼다. 진실한 글을 통해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언젠간 힐러'를 꿈꾸는 지금의 나도 아직 여물어 가는 과정 중에 있음을 믿는다. 섣불리 절망하기에 우린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만큼이나 아름다운 존재들이다.